한국 반도체 거인 가다/ ②이건희와 영화
한국 반도체 거인 가다/ ②이건희와 영화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0.10.26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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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가장 좋아했던 영화로 알려진 '벤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78)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타계했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5개월 만이다. 1988년 아버지 이병철의 뒤를 이어 수장에 오른 이건희 회장은 병상 기간을 포함해 32년간 회장직에 있었다. 이 회장의 타계는 개인적인 죽음을 넘어 한국재벌 ‘2세 경영’의 막이 내렸음을 의미한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세습 과정에서 삼성의 ‘명암’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건희의 경영철학이 ‘비즈니스 교과서’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년기부터 회장 시절까지 ‘인간 이건희’를 만든 3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의 마지막 삶을 되돌아 본다. <편집자주> 

<글 순서>
①편 이건희와 논어(이재우 에디터/ 재팬올 발행인) 
②편 이건희와 영화(이훈구 작가/영화 제작자 겸 재팬올 미국대표) 
③편 이건희와 일본(정희선 애널리스트/ 재팬올 일본대표)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오랫동안 영화업을 해오고 있는 필자에게 삼성 이건희 회장의 별세 소식은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가 ‘지독한 영화광’이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가슴에 와닿는다. 이건희 회장의 별세를 두고 미국의 언론들도 분주하다. 

뉴욕타임스는 “1990년대 초 삼성은 일본과 미국의 경쟁사를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페이스 세터(pace setter)’가 되었다”며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전략적 방향을 제공하는 큰 사상가로 남아 있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류 전자부품 회사를 세계 최대 스마트폰, TV 제조사로 변모시켰다”면서도 “삼성 경영권 승계에 대한 새로운 의문도 제기될 것”이라고 전했다. 

신성일과 ‘TBC 이건희 이사’의 비하인드 스토리
필자가 내막을 잘 아는 영화 한토막 이야기를 소개한다. 고(故) 신성일의 회고록 『청춘은 맨발이다』에 “대박 꿈꾸던 ‘러브 스토리’ 카피작 수모 당하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책에 따르면, 1971년 ‘연애교실’로 감독 데뷔한 신성일은 새로운 작품을 찾고 있었는데, 막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당시 TBC(동양방송) 이건희 이사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건희는 신성일에게 토크쇼 MC 제안을 했다. 이 자리에서 이건희는 미국에서 본 영화 ‘러브 스토리’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7번이나 훔쳐가며 봐야 한다는 뜻에서 ‘Seven Handkerchief Movie’라고 불린다는 설명을 들은 신성일은 비디오 테이프를 구하기도 힘든 시절에 일본 시나리오를 번안하여 본 후 곧바로 영화제작에 돌입했다 

신성일이 이건희(당시 동양방송 이사)와 만난 후 제작한 영화 '어느 사랑의 이야기'.
메가폰을 잡은 고 신성일 감독.

표절 개념이 없던 시절이다. ‘어느 사랑의 이야기’(신인 신영일과 문희 주연)란 제목으로 국도극장에 예고편까지 내보낸 후 개봉을 앞두고 있었는데, 국제영화사의 항의를 받고 말았다. 당시 국제영화사가 7억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내고 영화 ‘러브 스토리’를 수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공보부에서 상영 불허 판정을 받았는데, 일부 기자들은 미국의 ‘러브 스토리’가 오히려 신성일 감독의 작품을 표절한 것으로 착각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친분이 있던 JP(김종필)의 배려로 1971년 9월 재상영 허가가 났고, 국도극장에 내걸렸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 일주일만에 종영되었다.

찰턴 헤스턴 주연 영화 ‘벤허’ 수십 번 봤다는 이건희
이런 이건희 회장의 비즈니스 마인드 저변에는 ‘시네마 천국’(영화 제목 아님)이 자리잡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평들도 있다. 영화를 통해서 사업에 필요한 입체적인 사고와 다각적인 접근을  배웠다는 것이다. 영화에 대해 언급한 『삼성가의 사람들 이야기』(2014, 이채윤), 『이건희 27법칙』(2012, 김병완)을 참고해 보려 한다. 

초등학교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이건희는 일본말이 서툴러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혼자 영화 보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다고 한다. 그 무렵 소년 이건희가 본 영화는 1300편이 넘는다고 전해진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하루 종일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며 지냈다고 한다. 『삼성가의 사람들 이야기』를 옮겨 보면 이렇다. 

<소년시절부터 엄청나게 많은 영화를 본 이건희는 영화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남달랐던지, 만약 자신이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면 아마 영화사를 했거나 감독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건희는 찰턴 헤스턴(Charlton Heston: 1923~2008) 주연의 1959년작 ‘벤허’(Ben-Hur)를 수십 번이나 봤다고 한다. 이 영화를 통해 경영 교훈을 얻었다고 하는데, 길지만 그의 책 『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 내용을 인용해 본다. 

<말은 훌륭한 조련사를 만나야 좋은 말이 될 수 있다. 조련사도 그 기술이나 능력에 따라 여러 등급이 있는데, 2급 조련사는 주로 회초리로 말을 때려서 길들이고, 1급 조련사는 당근과 회초리를 함께 쓴다고 한다. 못할 때만 회초리를 쓰고 잘하면 당근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특급 조련사는 회초리를 전혀 쓰지 않고 당근만 가지고 훈련시켜서 훌륭한 말을 길러낸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벤허’라는 영화의 전차 경주 장면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벤허와 멧살라(벤허의 맞수)는 말을 모는 스타일부터 전혀 다르다. 멧살라는 채찍으로 강하게 후려치면서 달리는데, 벤허는 채찍 없이도 결국 승리했다. 경주는 한마디로 2급 조련사와 특급 조련사의 경기나 다름없었다. 특히 벤허는 경기 전날 밤 네 마리의 말을 한 마리씩 어루만지면서 사랑을 쏟고 용기를 북돋워주기까지 한다.>

이건희, 영화 통해 사물의 본질 꿰뚫는 힘 키워
비단 ‘벤허’뿐이겠는가. 구체적으로 이건희 회장이 봤던 영화의 리스트는 알 수 없지만,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그 속엔 삶과 비즈니스적 가치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경영 전문가들은 이건희 회장이 감성적이면서도 본질을 꿰뚫어보는 사고가 남다르다고 평가한다.

『이건희 27법칙』은 “이런 사고는 이건희가 수천 편의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터득한 입체적 사고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이 책은 "다각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결국 사물의 본질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사고의 틀이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책은 계속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입체적 사고를 할 줄 아는 경영자와 그렇지 못한 경영자는 표면적으로는 그 어떤 차이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날마다 선택과 결정이 더해질수록 경영 성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게 되어 있다. 평범한 직장인 사이에도 입체적 사고를 할 줄아는 사람은 일을 매우 효율적으로 한다. 그래서 일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완수한다.>

이건희는 사물의 본질까지 포착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영진들에게도 주문했다. 이건희 자신은 “나는 사물의 본질은 그것에 대하여 최대한 다각적으로 접근할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이 찰턴 헤스턴 연기에 감동을 받았을지 모르나, 스크린 밖 논란도 없잖아 있다. 찰턴 헤스턴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총기보호 권리를 주장하는 전미총기협회(NRA)의 회장을 지냈다. 그런 이유로 1999년 콜로라도주 콜럼바인고교 총기난사 사건 땐 비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Anyway, RIP(Rest In Peace) Kun-Hee Lee Chai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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