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거인 가다/ ①이건희와 논어
한국 반도체 거인 가다/ ①이건희와 논어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0.10.26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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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78)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타계했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5개월 만이다. 1988년 아버지 이병철의 뒤를 이어 수장에 오른 이건희 회장은 병상 기간을 포함해 32년간 회장직에 있었다. 이 회장의 타계는 개인적인 죽음을 넘어 한국재벌 ‘2세 경영’의 막이 내렸음을 의미한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세습 과정에서 삼성의 ‘명암’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건희의 경영철학이 ‘비즈니스 교과서’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년기부터 회장 시절까지 ‘인간 이건희’를 만든 3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의 마지막 삶을 되돌아 본다. <편집자주> 

글 순서
①편 이건희와 논어(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에디터) 
②편 이건희와 영화(이훈구 작가/ 영화 제작자 겸 재팬올 미국대표) 
③편 이건희와 일본(정희선 일본 기업 애널리스트 겸 재팬올 일본대표) 

삼성 이건희 회장은 경남 의령 출신인 아버지 호암(湖巖) 이병철(1910~1987)이 1987년 11월 세상을 떠나면서 2대 회장직에 올랐다. 지금의 삼성그룹은 창업주 이병철이 1939년 3월 1일, 대구시 수동(竪洞)에 세운 무역회사 삼성상회(三星商會)가 모태다. 이건희는 그 삼성상회 설립 3년 후인 1942년 1월 9일 출생했다. 아버지 이병철과 어머니 박두을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 아들로는 막내였다. 이건희는 어릴 적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 이병철에게 ‘논어 경영’ 배운 이건희
이병철은 아들 이건희에게 “일본을 배워야 한다”며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본으로 유학 보냈다. 중학교에 들어간 이건희는 ‘조센징’이라는 말을 들으며 외로움을 심하게 탔다고 한다. 서울로 돌아와 서울사대부중, 사대부고를 졸업한 그는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와세다대 상과대학을 졸업한 이건희는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수료하고 귀국, 삼성에 입사해 아버지로부터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건희는 큰형 이맹희(CJ 이재현 회장 부친)와 작은형 이창희(새한그룹 창업주)를 제치고 경영권을 승계 받았다. 이병철은 1986년 출간된 자서전 『호암자전; 湖巌自傳』에서 “후계자 선정에는 덕망과 관리 능력이 기준”이라며 “그것은 단순한 재산을 상속하는 것보다는 기업의 구심점으로서 그 운영을 지휘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세간에 후계 과정과 관련된 말은 무성하지만, 여기서는 호암의 입장만 들어보기로 하자. 호암은 맹희와 창희, 두 아들의 후계 탈락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처음에는 주위의 권고도 있고 본인의 희망도 있어, 장남 맹희에게 그를 일부의 경영을 맡겨 보았다. 그러나 6개월도 채 못 되어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본인이 자청하여 물러났다. 2남 창희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했으므로 본인의 희망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결국 삼성 후계자의 몫은 이건희에게 돌아갔다. 그런 이건희는 그룹을 이어 갈 ‘무기’로 『논어』를 꼽았다. 낡은 동양의 고전이 그룹 총수에게 무슨 쓸모가 있었을까.

“(선대 회장에게) 경영 수업은 어떻게 받으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이건희는 이 질문에 주저없이 “논어를 보라고 해서 본 것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답치곤 너무 간단했다. 아버지 이병철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이병철은 『호암자전』에서 '논어경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병철 “가장 감명받은 책은 논어”

<어려서부터 나는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가장 감명을 받은 책 혹은 좌우에 두는 책을 들라면 서슴지 않고 『논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바로 이  『논어』다. 『논어』에는 내적 규범이 담겨 있다. 간결한 말 속에 사상과 체험이 응축되어 있어, 인간이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호암은 『논어』를 인간 형성의 기본철학이라고 봤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경영에 관한 책에는 흥미를 가져 본 적이 별로 없다. 책 이론을 전개하여 낙양의 지가(洛陽紙貴)를 높이는 일도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지엽적인 경영의 기술면을 다루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경영의 기술보다는 그 지류에 흐르는 기본적인 생각, 인간의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다. 그러한 뜻에서 ‘논어’와 함께 인간 형성의 기본 철학이 있는 전기(傳記)문학에도 나는 더 큰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호암자전』 418~420쪽)> 

‘인재제일, 사업보국’을 강조한 아버지 이병철이 『논어』를 그룹의 대들보로 삼았다면, 아들 이건희는 도덕심을 내세운 ‘삼성헌법’(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의 삼성 가치관)을 글로벌기업의 기둥으로 삼았다.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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