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의 재팬토크/ 한 기업에서 배우는 ‘실패학’
정희선의 재팬토크/ 한 기업에서 배우는 ‘실패학’
  • 정희선 일본대표
  • 승인 2020.11.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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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정희선 기업 애널리스트(재팬올 일본대표)> 오츠카가구(大塚家具)라는 기업이 있다. ‘일본 가구업계의 풍운아’로 불리는 오츠카 가쓰히사(大塚勝久·76) 회장이 창업한 회사다. 그는 은행원 출신인 장녀 구미코(久美子·52)를 회사에 영입했다가 딸과의 경영권 다툼 끝에 밀려나 다른 회사를 차렸다. 아버지를 밀어낸 구미코 사장은 적자 부진의 회사를 살리려다 다른 회사의 먹잇감이 됐다. 가전양판업체 야마다전기의 자회사가 된 것. 그런 오츠카 구미코가 12월 1일부로 사장직에서 사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의 경질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오츠카가구가 야마다전기의 손에서 부활할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오츠카가구 창업가문으로만 보면,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 도쿄대 명예교수가 주창한 ‘실패학’의 한 케이스라 할 것이다. 전대미문의 '부녀 경영권 다툼' 결말 과정을 살펴봤다. 

“실적 부진 그대로 놔둘 수 없다” 사실상 경질
오츠카가구는 지난 10월 28일 “오츠카 구미코 사장이 12월 1일자로 사장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후임 사장은 모회사인 야마다 홀딩스의 미시마 츠네오(三嶋恒夫) 사장이 겸직한다. 야마다(홀딩스)전기는 2019년 12월 오츠카가구의 주식 51%를 취득하면서 자회사화 했다. 

올해 7월 야마다전기의 미시마 츠네오 사장은 오츠카가구의 회장에 취임했다. 그러면서 이사회 구성원의 절반 가량을 야마다 출신으로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당시 오츠카 구미코 사장은 유임됐는데, 결국에 이번에 사임하게 됐다. 

회사 측은 사임 이유에 대해 “과거 실적 책임에 대한 본인의 신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전직 임원은 “실적이 회복되지 않는 상황을 보다못한 야마다측이 최후통첩을 들이대며 사임을 재촉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경제매체 도요게이자이). 

이와 관련 야마다측의 한 관계자는 “더 이상 구미코 사장에게 맡겨둘 수 없다는 야마다 노보루(山田 昇) 야마다전기 회장의 의향이 강했다”고 전했다. 오츠카가구 사내에서는 “구미코 사장이 리더로서 구심력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왔었던 게 사실이다. 구미코 사장은 사임과 동시에 회사를 떠나지만, 야마다측은 “가구와 인테리어에 관한 조언을 해달라”는 주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창업주인 아버지 오츠카 가쓰히사와의 경영권 분쟁
피땀으로 일군 회사가 딸의 손에 넘어가고, 급기야 그 딸이 경질되는 상황을 지켜본 오츠카가구의 창업주 오츠카 가쓰히사의 심정은 어떨까. 오츠카가구(大塚家具)의 창업 역사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츠카가구는 한때 고급가구 분야 1위를 주도했다. 니토리와 IKEA 등 저렴한 가구가 주목을 받던 시절이었지만 가쓰히사 회장은 오히려 중고급 시장을 겨냥했다. 그런 그의 경영전략에 마찰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장녀가 회사에 들어오면서 였다.

은행원 출신인 딸 구미코는 1994년 오츠카가구에 입사했다. 15년 뒤인 2009년, 아버지 오츠카 가쓰히사는 구미코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딸은 아버지가 고수하던 고급화 전략을 버리고, 중저가 가구 판매에 주력했다. 또 회원제 판매 방식과 과잉 광고 투자를 비판하며 아버지와 대립했다.

아버지는 그런 딸이 못마땅했다. 경영권을 물려준 5년 뒤인 2014년, 아버지가 딸을 사장에서 해임하고 일선에 복귀했다. 그러자 이듬해인 2015년 3월, 딸이 주주들을 모아 거꾸로 아버지를 해임하고 사장 자리에 다시 올랐다. 회사에서 밀려난 오츠카 가쓰히사는 2015년 타쿠미 오츠카(匠大塚)라는 가구 회사를 별도로 창업했다. 

부녀간의 소동으로 오츠카가구의 브랜드 이미지는 악화됐다. 제품 구성 라인업의 신선함도 떨어졌다. 그러면서 고객 이탈이 심화됐다. 게다가 니토리와 이케아 등 저가 업체의 도전으로  2016년도부터 4분기 연속 영업 적자에 빠졌다.

여러 기업들이 ‘입맛’을 다시다가 결국 2019년 12월, 야마다전기가 지분 51%를 취득하면서 자회사가 되는 운명을 맞았다. 1년 뒤, 오츠카 구미코 사장은 실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장직에서 물러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자발적 사임이라기 보다는 등 떠밀린 경질에 가깝다.

<정희선 재팬올 일본대표>
-인디애나대 켈리 비즈니스 스쿨(Kelly School of Business) MBA
-한국 대기업 전략기획팀 근무
-글로벌 경영컨설팅사 L.E.K 도쿄 지사 근무
-현재 도쿄 거주. 일본 산업, 기업 분석 애널리스트
-‘라이프 스타일 판매중’ ‘불황의 시대, 일본 기업에 취업하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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