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흑인사회를 움직인 3가지 사건
생생 미국 리포트/ 흑인사회를 움직인 3가지 사건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0.12.10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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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흑인 모임인 ‘블랙 보이시스’ 

<미국 LA=이훈구 작가(팩트올 미국대표)> 공식적으로 미국의 대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6개 주에서 법리적 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가려지기 힘들어 하원 혹은 연방대법원에서 그 승자가 가려질 공산이 크다. 상당수 주류 언론들은 이미 조 바이든을 ‘당선인’으로 칭하고 있으나 경합주는 여전히 승자가 가려지지 않았다. 선거인단을 승인한 주에서도 법원 명령에 따라 인증이 중단됐다가 다시 뒤집히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아무래도 미국의 ‘흑인사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미국 대선의 가장 특징이 흑인사회의 표심 변화였기 때문이다. 전통적 지지당인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흑인들의 표심이 상당수 이동했다. 이변 중 이변이라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조지아주의 공화당 찬조 연설자는 민주당 하원의원인 버넌 존스(Vernon Jones)였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미국의 인종차별에 관한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오히려 흑인들의 표심이 대거 이동한 까닭은 뭘까?

민권법에 서명하는 린든 존슨 대통령

1. 흑인의 참정권 그 후
1964년 7월 2일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대통령은 흑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민권법에 서명했다. 그는 서명하면서 “나는 앞으로 200년 동안 그 ‘깜둥이’들이 민주당에 투표하게 할 거야”(I will have those niggers voting Democratic for the next 200 years)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흑인 차별 철폐를 위한 민권법에 서명하면서 흑인을 비하하는 ‘깜둥이’(Nigger)란 속어를 서슴없이 내뱉은 것이다. 

한참 앞서 공화당 대통령인 링컨(Abraham Lincoln)은 노예해방을 선언했지만 민주당 출신 부통령이자 후임 대통령인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이 그 의미를 후퇴시키는 정책들을 펼치면서 흑인들의 참정권 역시 물 건너갔다. 이에 따라 흑인들의 참정권 요구는 거세어져 갔으나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거의 무시에 가까운 정책으로 밀고 나갔다. 

심지어 J.F 케네디 대통령조차 인종차별에 관해서는 임기 말에 가서야 비로서 관심을 보일 정도였고 일각에선 "후임 린든 존슨이 흑인 민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의 성추문 의혹을 비롯한 여러 비위 사실을 덮는 조건으로 참정권을 허락했다"는 주장도 있다. 과격 시위를 흑인 커뮤니티가 자제하는 대신 참정권을 보장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타협에 반대하여 일어난 또 다른 흐름이 바로 ‘맬컴 엑스’ (Malcolm X)였다. 이 흐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급진 흑인민권 운동의 맥을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와 이른바 ‘안티파’(anti-fa) 세력이 연대하여 흑인, 여성,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 등 성소수자들의 권익을 위해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주류 흑인사회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펼치면서 흑인들이 주류사회로 진출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린든 존슨과 마틴 루터 킹. 

2. 인종우대정책 그 후
인종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은 오랜 민권운동의 결과로 얻어낸 열매이기도 했다. 이 정책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61년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평등고용기회위원회’를 설립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취지는 여성, 흑인, 장애인 등 구조적으로 외면받아 온 미국 내 사회적 소수자에게 대학 입학과 취업 진급 등 우대를 해주자는 일종의 ‘긍정적 차별’이었다. 

이에 더해서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는 2011년과 2016년 학교가 학생을 선발할 때 다양성을 위해 성적 외에 인종적 요소를 고려할 것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제는 지나치게 흑인 우대정책이 다른 소수민족 혹은 인종들에게 ‘역차별’이 될 뿐만 아니라 더 우수한 성적이라도 ‘우대정책’ 때문에 흑인들이 최우선 선발되는 결과가 초래하여 여러 차례 소송이 있었다는 점이다. 

흑인들은 이러한 ‘우대정책’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를 갖고 있다. 한편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하자는 쪽과 우대정책을 더 강화하자는 쪽이다. 그런데 문제는 흑인들이 과연 이 우대정책 프로그램의 수혜자냐는 것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주로 흑인 여성들이 수혜자라는 것이 정설이다. 흑인 여성들의 진학률에 비해 흑인 남성들의 진학률이 현저히 낮다. 그래서 아이러니컬 하게도 미국 곳곳에서 이민국 혹은 관공서 은행 등에서 흑인 여성들을 만나면 공공연히 ‘가진게 자존심 뿐’이란 이야기들을 하고는 했는데 근거가 있는 이야기로 흑인 여성들은 다른 인종을 극도로 싫어한다. 

게다가 흑인들은 인종차별로 인한 억눌린 감정을 애꿎은 동양인들에게 쏟아붓는 경우가 많다. 오랜 세월의 결과로 백인들에 대한 저항은 약한 편이지만 반대로 다른 소수인종들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앗아간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 민주당 하원의원인 버넌 존스(Vernon Jones)가 공화당으로 돌아선 이유도 그렇다. 흑인들에게 엄청난 복지 및 우대정책을 주어 나태하게 만들고 도태시키는 것이 미국의 좌파정책이라는 것이다. 흑인 커뮤니티들 역시 이 점에 대해 자각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이었지만 흑인 도태 정책에 항거하여 공화당으로 갈아탄 버넌 존스 하원의원

3. 낙태법 폐지 그 후
미국의 여성운동가이자 낙태 운동가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1879~1966)는 ‘우생학’을 지지했다는 점에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녀는 환경적으로 얻어진 특성이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우생학자들의 견해를 수용하여, 산아제한운동에서 생식자를 경제적 여건, 살고 있는 환경 등에 따라 출산 '적격'자와 '부적격'자로 나누어 부적격자의 출산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흑인사회에서 그녀에 대한 재평가가 일어났다. 보건소에서 무자비할 정도의 낙태가 자행되었는데 대부분 ‘흑인’들이었다. 물론 “흑인들의 60~70%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 운동으로 흑인들의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고 흑인 여성들은 흑인 남성들과의 결혼을 꺼리기 때문(흑인여성들의 학력 수준이 압도적으로 높다)에 앞으로 그들이 출산률이 월등히 높은 아시안계나 히스패닉계에 뒤쳐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 미국의 보수 흑인 여성운동가 캔더스 오웬스 

실제로 미국의 급진적 운동들과 민주당의 정책들은 오히려 흑인들을 도태시킬 수 있는 정책이 더 많았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 가장 스타덤에 오른 연사가 바로 흑인 여성리더인 캔더스 오웬스(Candace Owens)였다. 그녀의 주장은 이렇다. ‘민주당은 흑인들을 수당만 받고 정부에 기대기만 하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다’, ‘우린 논리적으로 똑똑해야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조지 플로이드 역시 신성화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일갈한다. 당연히 여성운동의 이면에 가려진 흑인 도태에 관하여 강력하게 어필했고 수많은 흑인여성들의 공감을 받았다. 

영화 ‘올 더 웨이’.

‘올 더 웨이’ (All the Way, 2016)라는 영화가 있다. 정치와 관련된 영화를 주로 만드는 제이 로치 감독의 작품인 이 영화는 HBO를 통해 방영되었다. 물론 같은 시기 제작되었던 로브 라이너 감독의 'LBJ'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영화다. 한 인물의 전기영화를 동시에 내놓을 수 있는 미국 할리우드의 저력이 부럽다. 

JFK의 서거로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린든 존슨(브라이언 크랜스톤 분)은 JFK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민권 법안을 계승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자신의 지지 기반이었던 남부 지역의 심각한 반발에 직면한다. 법안이 하원을 통과 하는 것 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자 마틴 루터 킹(안소니 마키 분)에게 투표권을 법안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흑인들의 지지를 호소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막후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결국 민주당 내 대표로 재선임되는 것부터 공화당 후보인 골드워터와 맞서 재선 대통령에 오른 것은 덤. 어쩌면 미국의 흑인 커뮤니티들과 민주당의 불안한 동거는 이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물론 판단은 독자 여러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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