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한줄 어록/ 독한 환경이 사람을 더 키운다
CEO 한줄 어록/ 독한 환경이 사람을 더 키운다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0.12.28 15: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름: 후지이 류타(藤井隆太)
▶경력: 일본 제약회사 류가쿠산(龍角散) 사장
▶태생: 도쿄
▶나이: 1959년 출생(62세)

중국 관광객들이 ‘싹쓸이 쇼핑’해 가던 제품
“OOO의 목캔디는 중국 입소문 사이트에 ‘신의 약’(神薬)으로 소개되는 등 일본을 방문하는 중국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2019년 8월 14일 니혼게이자이)

OOO에 들어갈 단어는 뭘까. 코로나 상황 이전, 일본을 찾던 중국 관광객들의 대량 구매를  ‘바쿠가이’(爆買い: 싹쓸이 쇼핑)라고 한다. 그 바쿠가이 리스트에 OOO도 빼놓을 수 없다. 

연륜으로 보자면 이젠 레전드급. 은색 동그란 용기(用器). 뚜껑을 열면 분말과 새끼 손가락만한 스푼이 들어 있다. 스푼으로 분말을 떠서 입에 털어 넣으면 도라지(길경:桔梗) 맛이 목구멍에 확 퍼진다. 그렇다. OOO은(는) 우리가 아는 진해거담제 용각산(龍角散)이다.

한국의 용각산은 일본 제약회사 (주)‘류가쿠산’(龍角散)에서 건너왔다. 1967년 한국의 보령제약이 (주)류가쿠산과 정식제휴를 맺고 가져다 팔기 시작했다. 글로벌 제약에 비하면 류가쿠산의 매출 규모는 작지만 브랜드파워는 대단하다. 지금도 일본에선 ‘콜록~하면 류가쿠산’(ゴホン!と言えば龍角散)이라는 광고로 유명하다. 

한국엔 ‘용각산’...일본에선 류가쿠산
일본에서 류가쿠산이 처음 제조된 건 18세기 중엽. 일본 동북부 아키타 지방 영주의 천식 치료용이었다. 일본에 갓 들어온 서양의학을 접목, 식물성 생약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기관지와 목 정화작용 효과를 노렸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1871년, 후지이(藤井) 가문이 류가쿠산을 처음 조제하기 시작했는데, 그 역사로 보면 150년 가까이 된다. 

이번 CEO 어록의 주인공은 이 (주)류가쿠산의 경영을 맡고 있는 후지이 류타(藤井隆太·61) 8대 사장이다. 후지이 사장은 음악가라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명문 사립 음대인 도호학원(桐朋学園) 출신으로 중학교 때까지 바이올린을 했고, 고등학교 때 플루트로 방향을 바꿨다. 

대학 졸업 후 1년간 프랑스 유학을 거쳐 귀국, 전공과는 무관한 고바야시제약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했다. 가족 회사가 아닌 고바야시제약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처음부터 엄격한 곳에서 비즈니스 경험을 단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후 미쓰비시화학으로 이직하면서 주로 ‘현장 영업맨’으로 뛰었다.

‘음악가 출신’ 류가쿠산의 8대 사장 후지이 류타
10년간 다른 곳에서 일하던 그가 아버지 회사 류가쿠산에 입사한 건 1994년이다. 그런데 입사 1년 만인 1995년 35세의 나이에 돌연 회사 경영을 맡게 됐다. 7대 사장인 아버지가 암으로 더 이상 회사를 이끌 수 없었기 때문. 

1995년 당시 류가쿠산은 빚더미의 총체적 경영 위기 상태였다. 매출은 40억 엔, 부채는 그와 맞먹는 40억 엔. 더 큰 문제는 임원들이었다. 신제품 출시로 매출 하락을 돌파하기는커녕 기존 제품에 얽매여 있었고, 생각 그 자체도 멈춰 있었다. 

“일본에서 류가쿠산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오래될수록 명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시 류카쿠산은 망해 가는 중이었어요. 정말 섬뜩 했어요. 고참 간부들은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류가쿠산처럼 전통이 오랜 회사일수록 변화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망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후지이 사장은 임원들의 이런 무사안일을 개혁하는가 하면 신제품(젤리 스타일 제품) 출시로 위기를 타개해 나갔다. 그가 회사를 적자에서 구해낼 수 있었던 성공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후지이 사장은 NHK 교향악단 수석 연주자를 역임한 자신의 플루트 스승의 말을 답으로 제시했다.

적자 상태-무사안일주의 회사, 개혁으로 V자 회복
“악기는 사무라이의 칼과 같다. 언제 실전(정식 연주)이 닥치더라도 컨디션을 조절해 둬야 한다.” 후지이 사장은 “스승의 이 가르침은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에 통하는 ‘프로의 마음가짐’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덧붙여 후지이 사장은 음악 명문 도호학원의 엄격한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미지근한 환경에서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生ぬるい環境で人は育たない)”고 강조했다. 힘들고 혹독한 환경일수록 사람(사업)을 더 강하게 단련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후지이 사장이 경영을 맡고 나서 류가쿠산은 어떻게 됐을까. 부채를 다 청산함은 물론, 2018년엔 매출이 5배 늘어난 200억 엔을 달성했다. 1995년 아버지 대신 구원투수로 등판한 후지이 사장이 25년 째 CEO 자리에 있는 이유다. <에디터 이재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