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윤여정 오스카 한국인 첫 후보
생생 미국 리포트/ 윤여정 오스카 한국인 첫 후보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1.03.01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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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사를 다룬 영화 '미나리'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74세의 배우 윤여정이 다음달 25일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MINARI)’로 한국 배우 사상 처음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102년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이다.

‘미나리’는 15일(현지시각)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유튜브를 통해 발표한 후보 명단에서 작품상·남우주연상(스티븐 연)·감독상·각본상(이상 정이삭)·음악상(에밀 모세리) 등 총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미나리’는 앞서 지난 3월 1일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미나리‘는 3월 3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한국계 정이삭 감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미나리'가 주목을 받는 것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한국인들의 파란만장한 이민사를 다뤘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Lee Isaac Chung: 한국명 정이삭) 감독 때문일 것이다. 미국 아칸소(Arkansas)주에서 1978년 태어난 정 감독은 완전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사실 미국에서 한인 출신이 하버드, 예일대학을 나와도 결국은 K-타운(한인타운)으로 돌아온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주류사회에 편입되기 힘든 현실 속에서 정 감독은 몇 안 되는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특히나 고단한 미국의 한인 이민사를 그려낸 까닭에 더욱 그의 영화가 미국인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지난 1월 13일 미주 한인의 날을 맞아 미 전역의 한인커뮤니티에서 특별시사회가 열리기도 했다.

▲‘미나리’가 ‘기생충’과 다른 이유
혹자는 ‘미나리’를 아카데미 4관왕 영화 ‘기생충’(PARASITE, 2019)과 비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 ‘미나리’는 혈통이 다르다. 미국인들이 느끼는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기생충을 한국의 자본으로 만든 ‘한류’로 본다면, ‘미나리’의 경우는 미국인이 미국에서 만든 영화라고 인정한다. 스토리 또한 지금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이민자들에 대한 여러 문제들을 접근해주는 영화이면서 초창기 설움과 아픔들을 밀도 있게 다뤘기 때문이다. 

게다가 19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일해던 아버지를 둔 아이작 정 감독은 아칸소주에서 자랐다.(다섯 살 때 콜로라도 덴버에서 아칸소로 이사) 아칸소주는 미시시피 강 유역의 작은 주로, 농장들이 많고 매우 보수적인 주이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하와이,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애틀랜타 등 비교적 대도시에 한인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인종차별의 잔재가 남아 있고 한인이라고는 찾기 힘든 아칸소에서 농장을 가꾸고 일자리를 찾는다는 스토리텔링은 매우 신선하다. 

대도시는 한국과 미국의 경계가 모호하며 불법체류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거주하는 데다가 한인 커뮤니티가 단단하여 인종차별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백인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일 정도다. 아칸소에서 자란 감독은 백인 중심 사회인 리얼한 미국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의 이력만 봐도 명문 예일대학교(생물학)를 나와 유타대학원 영화학을 전공했다. 필자는 ‘유타대학원’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놀랐다. 유타주는 매우 보수적인 주이며 미국 자생종파인 몰몬교(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한국명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색채가 강한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아칸소주와 유타주를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그는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가졌을 감정들을 영화 속에서 담담하게 풀어나갔을 것이다.

'미나리'의 배우들. 맨 왼쪽이 정이삭 감독.

▲‘미나리’는 어떤 영화인가?
‘미나리’는 한국인들의 대표적 향신료이기도 하지만 그 생명력이 대단하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잘 자라며 정화 기능이 있어 흔히 ‘정수기’의 원리를 미나리에서 찾기도 한다. 낯선 미국 그것도 1980년대(실제 영화의 설정)에 생소한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들의 이야기를 큰 틀로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당시 가장 미국 이민 오기 좋은 자격증 중 하나였다)로 일했지만 가족들에게 뭔가 성과를 이룩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여기까지는 여느 이민가정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맞벌이 국가이면서 아이 양육에 관하여 매우 철저한 나라. 그래서 아이들이 유학을 오고 싶어도 가디언(guardian, 아이의 후원인)이 없으면 입학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어린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한다. 완전한 미국 아이들인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과연 부모의 모국인 한국에서 온 낯선 외할머니와 과연 유쾌한 동거가 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갈등들이 존재한다.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모니카와 낯선 곳에서 자기 스스로 농장을 일궈 성공하고 싶어하는 제이콥, 그리고 개구쟁이 데이빗과 할머니는 수시로 문화적 충돌을 빚는다.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꿈꾸는 이 가족에게 순자는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씨를 계곡에 심으며 앞으로 잘 자라면 쌈도 먹고 약으로도 먹을 수 있다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한국영화들 속에서 한국인들의 이민사를 다루기는 했지만 이처럼 생동감 있고 처절한 작품은 드물 것이다. 이건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감정과 설움들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미나리'는 100% 미국 영화다.

▲제작사-배급사 모두 미국 회사...100% 미국 영화
제작사는 미국에 있는 A24, 배급사는 플랜B이다. A24는 우리가 잘 아는 배우 브래드 피트의 회사다. ‘노예 12년’ ‘월드워Z’ ‘옥자’ 등을 히트시킨 제작사로 알려져 있다. 플랜B 역시  ‘문라이트’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이디 버드’ 등의 개성 있는 영화를 배급한 회사이다. ‘A24’가 투자를 맡았고 100% 미국영화이지만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대부분의 대사를 한국어로 소화해 냈다. 캐나다에서 대히트를 치고 있는 장수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이 거의 모든 대사를 영어로 처리하여 리얼리티를 살리려 했다면, ‘미나리’는 한국어를 선택하는 모험을 택했다.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소개 되었다. 제36회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서 최고상인 극영화 부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선댄스 영화제는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이면서 가장 권위있는 국제영화제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필자는 수상 배경의 힌트를 얻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 영화배우 겸 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유타(Utah)주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에서 열리던 이름 없는 영화제를 후원하면서 출발한 역사답게 아이작 정감독은 ‘유타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선댄스 영화제 출품을 꿈꾸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제는 매년 1월 20일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Park City)에서 열린다. ‘미나리’는 이밖에도 46회 LA 비평가 협회상(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윤여정은 품격있고 재치있는 영어로 미국 기자들을 사로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윤여정...미국 연기상 13관왕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배우 윤여정이다. LA, 보스턴, 노스캐롤라이나, 오클라호마, 콜럼버스, 그레이터 웨스턴 뉴욕, 샌디에이고, 뮤직시티, 디스커싱필름 비평가협회와 미국 여성 영화기자협회, 선셋 필름 서클 어워즈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은 샌프란시스코, 세인트루이스 비평가협회에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거머쥐며 美 연기상 13관왕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그녀가 이런 영광을 거머쥐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력이 뒷받침 되었다고 생각한다. 윤여정은 물론 몇 안 되는 연기파 배우이면서 미국을 오래 경험한 이력이 있다. 바로 가수 조영남과의 결혼이다. 조영남은 1971년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가 주도한 여의도 평화집회에서 성악 쪽 담당자들을 수소문하고 직접 지휘한 후 추천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가 신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 바 있다. 

이때 배우자가 당대 최고의 배우 윤여정이었다. 10년 이상 지속된 유학 생활은 매우 고달프고 힘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지역이 미국 내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플로리다주였으니 아마도 그때의 경험들이 연기에 녹아 있지는 않았을까. 극 중 배우들의 지난한 80년대 이민 생활이 결코 낯설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그는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영어회화를 잘 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 내 여러 인터뷰에서 그녀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해 호평을 받았다. 조심스럽지만 다양성을 이슈로 하는 최근의 아카데미상 기조에 미뤄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버라이어티’등 미국의 영화 관련 잡지들은 ‘미나리’ 뿐만 아니라 배우 ‘윤여정’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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