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정희선 기업 애널리스트(재팬올 일본대표)> 소니(SONY)가 ‘콘텐츠 비즈니스’로 부활했다. 단순한 부활로 평하기엔 부족하다. ‘완벽하게, 멋지게’라는 말을 달아줘야 할 듯하다. 한때 ‘일본 제조업계의 대명사’로 통했던 소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전자산업이 죽을 쑤면서 거의 ‘만신창이’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2년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가 경영 전권을 잡으면서 조금씩 부활의 방향을 잡아 나갔다.
‘플레이스테이션 5’+‘귀멸의 칼날’ 쌍끌이
시간이 지나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郎) 회장 체제인 지금의 소니는 ‘완전 새로운 소니’로 탈바꿈했다. 그 중심엔 콘텐츠 비즈니스가 있다. 특히 영화와 게임이 양축을 받치고 있다. 지난해 소니 계열사 애니플렉스가 기획·제작을 맡은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영화시장에서 상상하기 힘든 대박을 쳤다.
또 지난해 11월, 7년 만에 내놓은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5’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대인기다. 이를 반영하듯, 2월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니는 창립 75년 만에 한해 순이익 1조엔(12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소니의 완벽 부활을 지켜보는 안팎의 심정은 만감이 교차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선 처참했던 과거를 교훈으로 삼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 외국인 CEO 하워드 스트링어(Howard Stringer)가 소니를 이끌었던 시절이 그랬다.
스트링어는 소니 최초의 외국인 CEO(최고 경영자)다. CEO로 낙점받은 건 2005년. 소니 공동 창립자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은 당시 스트링어에게 “나는 일선을 물러날 터이니 소니의 CEO를 맡아달라”고 주문했다.
영국 출신으로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하워드 스트링어는 ‘언론인 출신’이라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미국 3대 네트워크의 하나인 CBS에서 30년 이상 TV기자를 했고, 1988년~1995년까지 CBS 사장을 지냈다. CBS를 그만두고 인터넷 텔레비전 회사의 CEO로 있을 때, 당시 소니 사장이던 이데이 노부유키에 의해 스카우트됐다.
2005년 언론인 출신 하워드 스트링어 CEO 취임
1997년 미국 소니 사장, 1998년엔 회장 겸 CEO에 올랐다. 영화와 음반 등 미국 사업을 키운 실적을 인정받아 1999년 소니 본사의 이사로 옮겨왔다. 2003년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2005 년 6월엔 마침내 회장 겸 CEO로 취임했다. 2009년부턴 사장도 겸하면서 전권을 손에 쥐었다.
취임 당시, 스트링어는 닛산자동차를 V자 회복시킨 카를로스 곤 전 회장에 비유되기도 했다. 그렇게 화려하게 등장했던 스트링어는 시장의 기대를 완전히 무너트렸다. 먼저, 주가와 시가총액이 이를 증명한다.
스트링어가 CEO에 취임한 건 2005년 6월 22일. 그날 소니 주가(종가)는 3890엔, 시가총액은 3조 8791억엔이었다. 스트링어가 CEO에서 물러난 건 7년 뒤인 2012년 4월 1일이다. 그 전날인 3월 30일의 주가는 1704엔, 시총은 1조 7119억엔이었다. CEO 재임 중 시총이 무려 2조 1672억원이나 감소했다. 실로 ‘소니의 흑역사’라 할 만하다.
CEO 재임 동안 주가-시총-매출 동반 추락
매출도 급전직하했다. 스트링어가 톱으로 재직한 7년 중 4년간 소니는 연속적자를 기록했다. 영업 적자의 원흉은 주력 사업인 TV의 부진에 있었다. TV사업 재건 없이는 소니의 재건은 요원했다.
스트링어는 ‘TV 사업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길을 보여주지 못했다. 급기야 소니는 2012년 3월 분기(연결 결산)에서 4566억엔이라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몇 개월 뒤 스트링어는 CEO에서 물러났다. 이후 이사회 의장으로 잠시 있으면서 소니와 작별을 고했다.
스트링어가 물러나면서 CEO로 발탁된 이가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전 회장이었다. 소니는 현재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郎) 회장이 이끌고 있다. 그런 소니는 오는 4월, 회사 이름을 소니그룹(ソニーグループ)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한번 더 변신을 도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