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입국이 까다로운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당연히 ‘미국’이라고 답할 수 있다. 방문비자(B1/B2 VISA)를 취득하면 합법적으로 10년 동안 미국을 왕래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입국심사 때 이민국(이미그레이션)에서 찍어주는 스탬프에 찍힌 날짜가 진짜 체류기간이 된다.
보통은 90일에서 최장 6개월을 찍어주지만 미심쩍으면 1~2개월도 찍어준다. 복불복이다. 이런 까다로운 미국의 출입국심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와이로 갈 때는 ‘Hawaii only’라는 도장도 찍히고 미국령 괌과 사이판에 다녀왔다고 하여 본토에 쉽게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입국심사 중 구금’을 당하기도 하며 심지어 미국 영주권을 빼앗긴 뒤 다시 돌려보내기도 한다. 최근 민주당의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경이 헐거워지리라는 ‘뇌피셜’에 의해 중남미 국가는 물론 이란사람들까지 미국의 남부국경지대로 몰려들고 있다.
모두의 목표는 ‘불법 월경’. 세계 최고의 부강한 나라이면서 합법적 이주와 입국심사가 매우 까다로운 미국이기에 일어나는 해프닝들이다. 오늘의 주제는 비록 합법적 이민자라 할지라도 입국이 ‘파란만장’하며 수많은 변수들이 기다리고 있는 ‘미국 입국’이야기다.
▲조선 청년 이승만?
조선 청년 이승만이 미국 출입국심사 때 받았을 압박은 엄청났을 것이다. 이미 자신의 조국은 일본에게 강제로 병합되어 버린 상황에서 미국에 입국한 ‘사라진 나라의’ 청년이 국적을 어떻게 표기 했을지 뻔한 일이다.
게다가 여권은?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애석하게도 ‘임시정부’다. 여권발급도 영사업무도 할 수 없는 ‘임시’정부인 것이다. ‘폴란드 망명정부’와도 결이 다르다. 그런데 가끔 심심치 않게 청년 이승만이 자신의 국적을 ‘일본’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하여 비판을 하는 분들을 본다.
그렇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냥 웃고 넘어간다. 청년 이승만이 만일 자신의 국적을 ‘조선’으로 표기하고 자신의 직업을 ‘임시정부간부’로 표기했다면 당연히 구금 후 추방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는 일본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일본을 미국의 종복국(従僕國)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아시아 지역의 영향력을 확대시킨 인물이다. 그 시절 나라 잃은 청년 이승만의 ‘미국 입국’은 어떠했겠는가.
▲CASE BY CASE
미국 입국에 관한 기본적인 룰은 있다. 그러나 험악한 후기들이 종종 올라 온다. 특히 한국인들 사이에 이러한 케이스들이 많다. 한국은 ‘미국전자여행허가제’(Electronic System for Travel Authorization, ESTA)로 전환된 국가다. 2008년 이전에는 미국에 방문하기 위해서 반드시 주한미국대사관을 방문, 인터뷰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지만,
2008년 11월 17일 이후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VWP: Visa Waiver Program)”에 가입하여 ‘ESTA’를 발급 받는 것만으로도 미국을 방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관한 폐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빈번하게 악이용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인들은 70~90년대까지 미국에 불법입국을 가장 많이 주선하는 국가 중 하나였다. 영화 ‘깊고 푸른 밤’의 안성기처럼 ‘결혼’을 가장하여 입국하기도 했고 캐나다나 멕시코 등지를 통해 국경을 넘는 브로커들이 많았다.
때로는 캐나다에서 배에 싣고 출발하여 미국의 외진 해안에 내려 준 후 알아서 도망치라던 시절도 있었다. 이중 50~70년대 이민자 중 상당수가 ‘기지촌 여성’ 출신들이었으니 한국인들은 ‘결혼’이라는 방법을 통해 손쉽게 영주권을 받는 방법을 택했다. 한국 출신 여성들 중 일부는 결혼과 이혼을 수차례 반복한 경우가 있었고 이렇게 영주권을 취득한 남자들 중 일부는 고국에 남겨진 가족을 초청하지 않았다.
이러한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OECD 국가라는 위상이 높아져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것인데 이를 악이용하니 폐지론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미국은 법이 매우 엄격하다. 합법이 쌓이면 관용을 베풀고 불법이 쌓이면 폐지해 버린다.
▲줄을 잘 서야 한다?
‘ESTA’로 입국할 수 있다고 해도 이민국 심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비자를 발급해주는데 무턱대고 입국하려다가 추방당한 사례가 굉장히 많다. 심지어 시행 초기에는 미국 공항에서 ‘환승’하는 경우에도 ESTA가 필요(공항도 미국영토임)한데도 그냥 도착했다가 억류된 사례도 있었다.
지금은 출발할 때부터 비자나 ESTA를 몇 번이나 체크하지만 초창기에는 무작정 비행기를 타려는 헤프닝이 많았다. 또한 여성 혼자 입국하는 경우가 빈번했는데 상당수 매춘 등을 목적으로 브로커에게 속아 입국한 경우들이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 미국 내에 거주 하고 있는 한국계 불법체류자의 수는 통상 교민 숫자 대비 최대 3분의 1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20년 이상 불법체류자들도 많다. 이 때문에 점점 한국인들의 입국이 까다로워지고 있다. 게다가 영주권을 취득하고도 한국에서 마냥 눌러 있다가 기한을 넘겨 재입국 때 추방 당한 사례도 빈번하다. 과거에는 나라가 힘이 약해 심사가 까다롭고 지금은 편법을 너무 많이 쓰는 국가로 낙인 찍혀 까다로운 셈이다.
따라서 미국 ‘입국심사’ 때 이민국 심사관의 관상을 살피는 한인들을 종종 본다. 운이 좋으면 별말 없이 통과 운이 나쁘면 하루 종일 억류된다. 특히 흑인여자 이민국 심사관에게 걸리면 꼬투리 잡힐 각오를 해야 한다. 흔히 미국에서 ‘가진 건 자존심 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녀들은 융통성 없이 바로 돌려보낸다. 그래서 ‘사람은 인생이나 미국 입국 때에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더 팁이 있다면 타인종에게 동양인은 다 똑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때문에 포토샵 처리된 한국인 여성들의 여권 사진과 실물이 달라 종종 ‘열외’ 후 재조사가 벌어진다. 입국심사관에게 방문목적, 정확한 체류지, 연락처, 방문일정 등을 정확히 밝혀야 하는데 허위 진술이 드러나거나 영어가 짧아 순식간에 엉뚱한 대답을 하게 되면 입국이 거부되거나 자진출국을 요구받을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쫓는 중남미인들
이처럼 까다로운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 가장 쉬운 유혹이 있다면 ‘불법 월경’이다. 지금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불법 이민자들의 문제라 하겠다. 특히 중남미에서 무작정 미국으로 불법 월경하려는 사람들의 숫자는 엄청나다. 중남미 국가 출신 이주자 행렬인 ‘캐러밴’은 유명하다.
민주당 조 바이든이 집권하자 이미 수천명의 이 행렬이 미국을 향해 출발했다는 기사가 일제히 떴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사이에 장벽을 쳤다. 많은 호응이 뒤따랐다. 물론 한국의 일부 좌파 언론들은 ‘야만’이라고 규정 했지만 장벽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경이 워낙 방대한 데다가 멕시코에서의 여정이 매우 험난하고 막상 국경을 넘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자주 이용하는 사막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죽는 사태가 속출했다.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멕시코 국경의 폭력 조직과 마약 카르텔은 수시로 ‘목숨값’을 징수하며 통과시키기도 하고 심지어 납치나 살해도 서슴지 않았다.
멕시코 북쪽 국경에 닿은 여성 이주자들에 대해 실시된 한 연구에 의하면 이들 중 85%가 강간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질문 자체가 갖는 민감성을 고려할 때, 85%는 최소한의 수치일 것이다. 이들이 운 좋게 미국에 입국했다고 하더라도 같은 중남미인들이 이들을 수시로 고발한다. 자신들이 도맡아 온 일거리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중에는 마약운반책들이 다수 섞여 들어온다. 오히려 국경의 장벽설치가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따라서 국경도시에서는 버스로 태워 매일 ‘미국’의 직장으로 출근했다가 멕시코로 퇴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조건을 갖추게 되면 ‘영주권신청’도 가능하다. 불법이주를 막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가 함께 만들어 낸 제도이기도 하다.
▲영화 ‘터미널’이 주는 교훈
영화 ‘터미널’(The Terminal. 2004)은 미국 입국의 해프닝을 다룬다. 동유럽 작은 나라 ‘크로코지아’의 평범한 남자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가 뉴욕 입성의 부푼 마음을 안고 JFK 공항에 도착한다. 그러나 입국 심사대를 빠져 나가는가 싶었는데 그가 미국으로 날아오는 동안 고국에선 쿠데타가 일어나고, 일시적으로 ‘유령국가’가 되어버린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뉴욕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된 빅터는 결국 JFK 공항에 체류하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현실과 달리 아름다운 승무원 아멜리아(캐서린 제타 존스)와 로맨스까지 키우고 친구들도 사귀며 매우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까다롭고 엄격한 미국 입국의 과정들과 규정들만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영화 속 빅터 나보스키는 행운아였다. 원래 자신이 뉴욕에 왔던 목적(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색소폰 연주자인 베니 골슨의 사인을 받는 것)을 달성하고 다시 상황이 정리된 고국으로 무사히 출국한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미국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이민법을 손질하고 출입국규정이 바뀐다.
현실에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서 돌려 보내지고 있으며 어떤 분들은 미국 입국을 마치 ‘고시 패스’ 한 것처럼 자랑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들어 공항에서 입국거부로 돌려 보내지거나 추방 대기자 비율을 살펴보면 한국인들이 압도적이라는 점에서 미국 내 한인사회가 역시 크게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