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하는 '91세 경영자'의 조언...“걷고 또 걸어라”
퇴임하는 '91세 경영자'의 조언...“걷고 또 걸어라”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2.26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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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골프를 47번을 했어요. 팔팔합니다. 안심하세요.”(去年はゴルフを47回やってピンピンしています。ご安心ください)

일본 자동차·오토바이 제조회사 스즈키(SUZUKI)의 스즈키 오사무(鈴木修·91) 회장은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42년간 최고 경영자 자리에 있었던 그는 24일 밤 갑작스레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올해 6월 퇴임하겠다”고 발표한 것. 

1978년 사장에 취임했고, 1983년엔 일찌감치 인도로 진출해 스즈키의 해외점유율을 높였던 그다. 4년 전엔 도요타 자동차와 업무 제휴를 단행했고, 재작년에는 자본 제휴까지 맺었다. 

그는 퇴임 이유에 대해 “임원 체제를 새롭게 하고, 후진에게 길을 양보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건강엔 문제가 없는데 용퇴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그의 아들 스즈키 도시히로가 사장을 맡고 있다. 

스즈키 회장은 자신의 인도 진출 경험을 거울로 삼으라고 충고했다. “지구상에는 시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걷고  또 걷고 행동해라. 행동하고 발견하면 거기에 시장이 있을테니까.”(地球上には市場が無限にありますから、歩いて歩いて行動。行動して発見したら、そこにマーケットがありますから。)

스스로 ‘중소기업의 아버지’라고 칭했던 스즈키 오사무 회장에 대해 소개한다.  

23일 밤 온라인 기자회견을 갖고 '6월 퇴임'을 밝힌 91세의 스즈키 오사무 회장 photo=NHK 

은행원하다 데릴사위로 스즈키 집안과 인연
마츠다 오사무(松田修)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후현 태생으로 주오대(中央大)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은행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 5년 후인 1958년, 은행원이던 그의 인생에 일대 큰 변화가 찾아왔다. 스즈키 자동차 실질적 창업주 스즈키 슌조(鈴木俊三)의 데릴사위가 된 것이다.

마츠다 오사무는 스즈키 슌조의 장녀와 결혼해 양자가 됐고, 그의 이름은 마츠다 오사무(松田修)에서 스즈키 오사무(鈴木修)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큰 변화가 닥친 것은 1977년 무렵이다. 그의 말이다.

<"1977년에 창업자인 스즈키 미치오와 2대 회장인 스즈키 슌조, 3대 회장인 스즈키 지츠지로 등의 경영자가 잇따라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데릴사위인 내 어깨에 회사의 운명이 지워진 절박한 순간도 있었다.">(스즈키 오사무 저 ‘작아서 더 강한기업 스즈키’(김소운 옮김, 리더스북)

일본 경차의 대명사 스즈키. 스즈키자동차의 슬로건은 ‘작게(小), 적게(少), 가볍게(輕), 짧게(短), 아름답게’(美)이다.

1978년엔 얼떨결에 사장 자리에 올라
전임, 현직 CEO가 동시에 쓰러지면서 스즈키 오사무는 순식간에 사장 자리를 맡았다. 입사 20년이 지난 1978년의 일이다. 닛케이비즈(2009년 3월 2일)는 당시 스즈키 오사무의 심정을 이렇게 보도했다.

<“아, 내가 사장이야”- 스즈키 오사무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등골이 오싹한 생각에 사로잡혀,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쉴 때도 사장이라는 무게감이 덮쳤다.>

스즈키 오사무 회장은 이렇게 큰 변화를 두 번(데릴사위, 사장) 겪었다. 그는 경차의 대명사인 스즈키를 ‘위대한 중소기업’(偉大な中小企業)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즈키 오사무는 2000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스즈키의 차는 차체만 작을 뿐, 회사는 이제 더 이상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 있다. 스즈키자동차의 슬로건은 ‘작게(小), 적게(少), 가볍게(輕), 짧게(短), 아름답게’(美)이다. 경차는 이익을 남기기가 어렵기 때문에 생산원가 절감이 생명이다. 오사무 회장은 공장 바닥에 나사 하나가 떨어져 있으면 “공장 바닥에 돈이 떨어져 있다”며 한 푼의 돈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즈키 집안은 방직기계업으로 출발
스즈키 자동차는 창업주 이름에서 비롯됐지만, 처음부터 자동차업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다. 목화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스즈키 미치오(鈴木道雄:1887~1982)가 스즈키 방직기계(주)를 설립한 건 1920년이다. 그의 아들 스즈키 슌조(鈴木俊三)는 모터가 달린 자전거를 내놓으면서 업종을 변경했다.

1954년 ‘스즈키자동차공업’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스포츠바이크와 경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1990년 10월에는 현재의 스즈키로 사명을 바꿨다.

“우물을 파려면 제일 먼저 파야 한다”
스즈키의 역사에서 인도 진출을 빼놓을 순 없다. 오사무 회장은 “우물을 파려면 제일 먼저 파야 한다”며 일본 자동차 메이커 중 가장 먼저 인도 시장에 눈떴다. 그가 사장 4년차이던 1982년(당시 52세), 스즈키는 자동차 기업으로서는 일본에서 꼴찌였다. 그래서 그는 “국내에서 1등하기 어렵다면 해외에서 하자”고 마음 먹었다. 모두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인도 시장 진출 선언이었다.

인도 정부와 공동으로 합작사‘ 마루티 우도요그’(Maruti Udyog)를 설립, 이후 자회사로 만들었다. 2007년에는 ‘스즈키 마루티 인디아’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마루티는 인도에서는 ‘국민차’로 불린다. 스즈키는 한때 인도 시장 점유율 70%를 웃돌기도 했지만, 이후 50%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유지했다.

퇴임의 변으로, ‘걷고  또 걷고 행동하라’는 말을 전한 오사무 회장. 이 말은 가보지 않은 곳(미지의 분야)을 향해 '늘 움직이고' 현재의 일을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일터.  

'가벼운 차'(오토바이)에 평생을 바친 91세 노경영자의 조언은 오히려 묵직하다. 계산기 두드리지 말고, 일단 걷자.<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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