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㊴ / 황금기 감독열전(3)
이훈구의, 일본영화 경제학㊴ / 황금기 감독열전(3)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1.03.0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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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 감독

【예술을 위한 예술, 오즈 야스지로의 ‘藝術’】

<미국 LA 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영화를 감히 ‘예술’(藝術)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앞서 구로사와 아키라를 언급하면서 지다이게키(시대극, 時代劇)에 의한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의 잇따른 선전으로 인해 정작 오즈 야스지로 등 겐다이게키(現代劇) 감독들이 상대적으로 해외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음을 언급하였다. 

단지 영국과 미국의 일부 비평가들 중 도널드 리치(Donald Rich), ‘에세이 영화’에 주목했던 노엘 버치(Noel Birch) 감독 같은 이들만이 오즈 야스지로를 더 주목했을 뿐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영화의 황금기에서 그의 중요성을 생략할 수 없었는데 당시 일본영화계의 쌍벽은 쇼치쿠(松竹)의 간판이었던 오즈 야스지로와 도호(東宝)의 나루세 미키오(成瀨巳喜男)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상이한 양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멜로 드라마’나 ‘홈 드라마’ 등 당시 일본의 풍속이나 여성, 가족의 문제들을 스크린에 담아냄으로 일본 관객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았다. 도널드 리치의 경우 20대에 일본에 건너와 거주하면서 일본영화를 전 세계에 알린 인물이었다. 

그는 일본인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흥행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비교적 객관적으로 영미 비평가들에게 그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음으로 오즈 야스지로를 주목했다. 반면 노엘 버치의 경우는 기술적인 면에 관심을 가졌고 ‘영화의 실천’ 같은 자신의 저서에 상세히 이를 서술하여 세계에 알렸다.

▲오즈 바람(Mode Ozu)
“영화감독이라는 것은 다리 밑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창녀 같은 것”이라는 말을 남긴 그의 영화들은 정작 평범하고 재미가 없다고 여길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일본인 혹은 동양인의 시각에서 카메라에 담백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밥 먹고, 차 마시고, 술 먹고, 혼담이 오가거나 갈등하고 또 이런 모든 것들을 그들의 말로서 일일이 설명한다. 

그저 간간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정취를 담아 낼뿐이고 때문에 오즈 야스지로를 처음 입문한 사람들은 어리둥절 해 질 때가 많다. 포맷도 비슷하고 나오는 배우들도 ‘그 배우가 그 배우’이며 나누는 대사들이나 관심사들도(오즈 야스지로의 작품들 중)유사한 영화들이 많은데다가 심지어 자신의 영화를 리메이크 한 경우도 꽤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도 이따금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원래 보려던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이니 오죽하랴. 그냥 관찰자의 시점에서 바라보다가 그런가 보다 하고 공감하는 사이 끝이 난다. 거의 대부분의 영화들은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도 그 특징이며 때문에 감정과 대결을 하기보다는 서서히 감정을 사로잡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다 보니 흐름이 빠른 요즈음의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칫 수면제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잠깐 졸다가 일어났는데도 그 내용이 이해가 되더라는 우스갯 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하여 유럽 평단은 ‘오즈 바람’의 근원을 일본인의 마음이라는 ‘선’(禪, zen)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미묘하고 절제된 감정이지만 실은 마음을 감추고자 사용하는, 그 때문에 남을 배려하기 위해 일단 절제한다거나 혹은 ‘마음속의 평화’를 드러낼 때 바로 ‘선’(禪, zen)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프랑스 같은 경우는 실제로 배우들에게 감정을 표현할 때 감독들이 이를 남용하여 배우에게 주문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다.

▲‘다다미 샷’(たたみ shot, Japanese floor mat shot)
그가 이러한 미묘하고 절제된 감정을 담담하게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전매특허인 ‘다다미 샷’이라는 독특한 카메라 앵글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주로 침대나 의자 위에서 생활하기에 의자에 앉은 사람의 기준으로 카메라가 고정된다면 오즈 야스지로는 다다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인물의 눈높이에 맞춘다. 

약 60센티미터의 높이로 카메라 삼각대를 고정하고 수평과 수직이 맞도록 화면을 구성하게 되는데 좁은 공간에서도 왜곡이 적게 느껴지며, 카메라의 이동이 최소화되는 장점이 있다. 또한 대화자의 얼굴이 화면의 중심에 맞춰져서 표정연기를 잘 담아 낼 수 있고 영화적이기 보다는 현실이라는 느낌을 강조할 수 있다. 

따라서 오버랩(overlap, 한 장면이 사라질 때 다음 장면과 겹쳐지는 기법)같은 기술적 방법을 전혀 쓰지 않는다. 다만 카메라가 가까이에서 바라보거나 혹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본다의 차이만이 느껴질 뿐이다. 이 ‘다다미 샷’은 현대영화에서도 종종 차용된다. 인간의 시야와 친숙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깊이감을 주는 망원렌즈나 넓은 시야를 보여주는 광각렌즈보다는 표준렌즈를 사용했기 때문에 마치 정물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골목 씬이나 창문을 중심으로 방안의 정물과 밖의 풍경을 채워 보여줄 때 특히 두드러진다. 일상에 관한 섬세한 묘사에서 이 기법은 두드러지며 흔히 클로즈업을 자제하고 ‘먼발치’에서 관찰하는 시점의 장면들에서 발견된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侯孝賢, Hou Hsiao hsien), 미국의 짐 자무쉬(Jim Jarmusch), 한국의 이명세, 홍상수, 허진호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다다미 샷’은 오즈 야스지로를 ‘예술가’로 칭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던 반면 역설적으로 일본의 후배 감독들은 ‘오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때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이었던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스와 노부히로(諏訪敦彦), 구로사와 기요시(黒沢清) 등 많은 감독들은 오즈가 아닌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일본의 스타일 하면 ‘오즈의 다다미 샷’이라는 공식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심지어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는 대놓고 “나는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한 적이 없다”라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오즈 야스지로와 노다 코고(오른쪽)

▲오즈 사단(師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 있어서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인물들이 있다. 시나리오 작가인 노다 코고(野田高梧), 배우인 류 치슈(笠智衆)와 하라 세츠코(原節子)이다. 먼저 노다 코고의 경우 1927년부터 1962년까지 총 30여 편의 시나리오를 남겼는데 이중 25편을 오즈 야스지로와 작업했으며 15편의 전후 영화 중 13편은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오즈 야스지로의 첫 장편인 ‘참회의 검’(懺悔の刃, 1927)의 시나리오로 주목을 받았으며 최대 역작인 ‘도쿄 이야기’(東京物語, 1953)의 경우 자신의 작품 중 최고의 시나리오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1950년 ‘일본시나리오작가협회’(日本シナリオ作家協会)가 창립했을 때 이를 바탕으로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을 정도다. 

“그에게 있어 시나리오의 완성은 곧 영화의 완성을 의미했다”는 류 치슈의 말처럼 두 사람은 목욕, 식사, 산책, 낮잠, 음주(오즈 야스지로는 애주가였음)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호흡을 맞추면서 시나리오를 작업했다고 한다. 

류 치슈와 하라 세츠코

류 치슈는 ‘일본의 최불암’이라고 부르고 싶다. 1928년부터 1992년까지 155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특히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54편 중 무려 52편에 출연했다. 지금까지도 일본영화에서 자상한 아버지 하면 우선 떠오른다. 사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주목 받지 못했다. 그냥 틀에 짜놓은 무대의 인형에 불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배우들은 열연을 하지 않았다. ‘오즈가 딱 요구하는 만큼만’연기를 하면 되었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바로 이점 때문에 조감독을 사퇴한 것인데 이 속에서 화도 내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며 선량한 아버지가 등장해 눈길을 끈 이가 바로 그가 류 치슈였던 것이다. 그는 실제로도 성실한 사람이었고 극중 배역도 자신 그 자체였다. ‘의리로’ 인하여 단역으로라도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에 출연했다. 

류 치슈와 하라 세츠코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오즈 감독.

일본 남부 구마모토(熊本)의 사투리가 심한 그가 국민배우로 우뚝 서기까지 오즈 야스지로의 전폭적 지원이 컸고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이가 나지 않아 매우 친밀했다. 하라 세츠코는 국민 여배우로 일본영화계에서 ‘하라 같은 여배우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는 오즈 야스지로의 뮤즈였다. 평생 미혼으로 살아 ‘영원한 처녀’라는 별명을 얻은 그녀는 정신적 지주였던 오즈 야스지로 사망 후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 결국 은퇴를 했을 만큼 둘 사이는 각별했다. 

오즈와 여배우들 . 왼쪽부터 오카다 마리코(岡田茉莉子),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 츠카사 요코(司葉子), 마키 노리코(牧紀子)

역시 독신으로 살았던 오즈 야스지로가 죽기 얼마 전 친구에게 그녀를 향한 마음을 고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정도다. 특히 류 치슈와 모녀 사이로 많이 출연했는데 ‘자상한 모녀 관계’를 구현하여 서구세계에 일본인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존의 편견(일본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근엄하다)을 깼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 작품들
오즈 야스지로는 변화를 싫어한 감독이었다. 무성영화의 향수를 그리워해 유성영화로의 전환을 가장 늦게 했고 색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술이 충분히 발달 되지 않았다며 흑백영화만 고집했다. ‘피안화’(彼岸花, Equinox Flower, 1958년)를 촬영하면서 비로소 아그파 컬러(Agfa color)로 총천연색 컬러 영화를 만들었지만 사실 그는 기획단계에서도 이 영화를 컬러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피안화'

그러나 그의 별명이 있다면 ‘오후나(大船)의 서기(書記)’였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쇼치쿠의 간판다운 별명이었는데 1935년 가마타(蒲田)에서 오후나로 스튜디오를 이전한 것을 빗대어 회사 내 ‘오즈 야스지로’의 위상을 드러낸 말이기도 했다. ‘피안화’를 기획하면서 회사가 쇼치쿠에서 다이에이(大映)소속의 스타 야마모토 후지코(山本 富士子)를 기용하면서 그에게 컬러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도쿄이야기'

그는 코닥 필름보다 붉은빛의 아그파 필름을 더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또 오즈 야스지로 하면 아무래도 대표작 ‘도쿄 이야기’(東京物語, Tokyo Story, 1953)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즈 야스지로는 “부모와 자식간 관계의 변화를 통해 일본 가족제도가 어떻게 해체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를 제작하였으며 후기 모든 영화들의 주제로 삼았으며 훗날 ‘자신의 가장 대표적 멜로드라마’라고 자평했다. 

이 영화는 급속히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세대 간의 몰이해를 은퇴한 노부부(류 치슈, 히가시야마 치에코)의 도쿄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한 상경을 통해 그려내 세계 가족영화의 역사에 획을 긋는다. 이 영화는 지난 2012년 영국의 영화 잡지 ‘Sight & Sound’가 기획 한 세계의 유명한 감독들의 투표에서 1위에 선정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꽁치의 맛'

물론 오즈의 작품 중 가장 ‘오즈 다운’ 작품은 마지막 작품인 ‘꽁치의 맛’(秋刀魚の味, An Autumn Afternoon, 1962)을 꼽을 수 있다. 일본영화계 전체가 하향세에 접어들 즈음 오즈야스지로와 노다 코고 콤비가 만든 마지막 작품이자 감독의 유작으로 남아 있다. 사실 흥행 면에서는 그보다 앞서 만들어진 ‘고하야가와가의 가을’(小早川家の秋, 1961)을 드는 이가 많은데 두 작품 모두 감독 자신의 생애 마지막을 예감한 듯한 작품들이면서 가장 우수에 젖게 만든다. 

‘고하야가와의 가을’

‘꽁치의 맛’은 늙은 홀아비와 혼기가 꽉찬 딸의 결혼을 하는 과정을 애절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고하야가와의 가을’은 특이하게 쇼치쿠가 아닌 도호(東宝)에서 제작했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려움을 맞고 있는 한 양조장을 중심으로 역시 늙은 홀아비와 장성한 세 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19년 만에 만난 옛애인에게 푹 빠진 늙은 홀아비 만베이와 그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죽음을 앞두고 벌이는 의외의 행동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까마귀가 화장터에서 우는 마지막 장례장면은 가장 감동적인 시퀀스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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