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님 제국’ OTB 렌조 로소 회장의 바보 철학
‘데님 제국’ OTB 렌조 로소 회장의 바보 철학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3.09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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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 제국' OTB를 건설한 렌조 로소 회장. photo=렌조 로소 페이스북

일본은 팔고 이탈리아는 다시 사들였다. 한국인에게도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패션 브랜드 질 샌더 (Jil Sander) 얘기다. 지난 5일 이탈리아 패션그룹 온리 더 브레이브(이하 OTB)가 질 샌더를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질 샌더는 독일 디자이너 질 샌더가 론칭한 브랜드로, 절제된 미니멀 디자인으로 유명했다. 

디자이너 질 샌더는 1999년 지분 75%를 프라다그룹에 넘겼다. 그러면서 브랜드는 프라다 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 일본 패션그룹 온워드홀딩스가 2008년 프라다로부터 질 샌더를 인수했고, 이걸 다시 OTB가 사들인 것. 독일(독자 브랜드)→이탈리아(프라다 산하)→일본(온워드홀딩스 소유) →이탈리아(OTB 인수)로 질 샌더의 행보를 정리해 볼 수 있다. 

질 샌더를 품게 된 OTB는 데님 브랜드 디젤(Diesel)을 소유하고 있는 이탈리아 명품 패션그룹이다. OTB라는 패션제국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렌조 로소(Renzo Rosso·66) 회장.

그는 브랜드들을 통합해 2002년 OTB그룹이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했다. △2002년 프랑스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2008년 암스테르담에 기반을 둔 빅터 앤 롤프(Viktor & Rolf) △2012년 이탈리아 브랜드 마르니(Marni)를 차례로 사들였다. 이번에 질 샌더를 다시 인수함으로써 패션그룹 명성을 더 탄탄하게 굳히게 됐다. 

렌조 로소는 청바지를 재발견한 ‘패션계의 콜럼버스’, ‘데님(denim)의 아버지’로 불린다. 늘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스니커즈를 신고 다니는 ‘괴짜 경영자’ 렌조 로소  회장은 바보 철학을 강조한다. <에디터 이재우> 

그룹 OTB는 Only The Brave 약자...1978년 디젤 설립
#. 그룹 OTB는 Only The Brave의 약자로, OTB의 핵심 브랜드인 디젤(Diesel)의 철학이자 렌조 로소 회장 개인의 모토이기도 하다. 로소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려면 용감해야 한다”며 “성공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You have to take risks to succeed, right?)라는 말로 그룹 이름을 설명했다. 

1955년 이탈리아 북부의 브루지네(Brugine)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렌조 로소는 인근 미군 부대에서 버린 물품들을 팔아서 용돈을 벌었다. 그는 “당시 내겐 아메리칸 드림이 있었다”(That, for me, was the American Dream)고 했다. 그런 그의 꿈은 사업으로 이어졌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1978년 로소는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자신이 일하던 회사 ‘몰텍스(Moltex)’의 지분을 매입, 회사명을 디젤(Diesel)로 바꿨다. 디젤의 출발엔 공동창업자가 있었다. 1970년대 ‘데님계의 전설’로 통했던 아드리아노 골드슈미드(Adriano Goldschmied: 이니셜 AG진으로 유명)였다. 창업 7년 뒤인 1985년, 로소는 골드슈미드 브랜드를 인수해 디젤의 1인자에 올라섰다. 

하필 왜 회사 이름이 디젤이었을까. 그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발음되는 이름을 원했다(I wanted a name pronounced in the same way all over the world)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부터 나는 국제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사람들은 디젤이 이탈리아 회사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재미있지 않느냐. 1978년 회사 디젤을 설립했을 때는 석유 위기가 한창이었고, 디젤이 가솔린의 대체 연료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것처럼) 기존의 제품을 대신하는 새로운 라인업을 창조하고 싶어서 디젤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데님’은 프랑스 동네 드 님므(de Nimes)의 영어식 발음
#. 여기서 잠깐 호흡을 좀 쉬고 가자. 우리가 흔히 말하는 데님은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 데님은 프랑스의 작은 동네 님(Nimes)에서 작업복으로 출발한, 아주 보잘 것 없는 원단에 불과했다. 『패션의 유혹』 (조안 핑겔슈타인, 청년사)이라는 책을 인용해 본다. 

<진(jeans)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미국으로 이민한 프랑스 사람 모리스 레비 스트로스(Levis 상표 창시자)가 프랑스 님므(Nimes)에서 생산된 튼튼한 인디고 염색 무명으로 만든 옷감(데님: de Nimes, 드 님므의 영어식 발음)을 팔기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공하려면 '바보가 되어라'고 말하는 렌조 로소 회장. photo=렌조 로소 페이스북.

디젤 브랜드가 급성장하던 1980~90년대는 데님(denim)이 패션계에선 가장 낮은 수준으로 취급됐다. 로소는 그런 청바지의 이미지를 최고급 빈티지 스타일로 부활시켜 나가면서, 메종 마르지엘라, 빅터 앤 롤프, 마르니를 연달아 인수했다. 

그런 로소는 ‘바보 경영’을 성공 철학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2011년 <‘바보가 되어라’(Be Stupid : For Successful Living)>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그는 “우리는 대개 남을 따라가기에 급급하지만 바보는 한 발 먼저 간다”는 등 바보와 관련된 다양한 어록을 남겼다. 

사업 이외에 로소는 열렬한 미술 수집가다. 엔디 워홀, 쟝 미셸 바스키아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들을 구입해 종종 박물관에 대여한다. 기부에도 결코 인색하지 않다. 와인 메이커이기도 한 로소 회장은 ‘디젤팜’(Diesel Farm)이라는 이름의 와이너리를 직접 운영하면서 고품격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참 재미난 경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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