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한줄 어록/ ‘좁은 길'도 비집고 가라
CEO 한줄 어록/ ‘좁은 길'도 비집고 가라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3.22 2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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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화낙(FANUC) 창업주 이나바 세이우에몬(稻葉淸右衛門) 전 회장. photo=일본 일간공업신문

▶이름: 이나바 세이우에몬(稻葉淸右衛門)
▶경력: 산업용 로봇 분야 최강자 화낙(Fanuc) 창업자
▶태생: 이바라키현
▶생몰연도: 1925~2020년

지난해 10월 박용만 회장, 페이스북에 추모 글 올려
3월 24일 7년 8개월의 임기를 마치는 박용만(두산 인프라 코어 회장)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해 10월, 페이스북에 한 일본인 경영자의 별세를 아쉬워하는 추모의 글을 올렸다.  

“(...)아주 키가 작은 거인이었다. 이 분은 존경할 수 있는 좋은 분이었다. (...) 화낙 공장에 가면 내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창고에 데려가 조용히 말하며 필사 노트 등을 보여 주었다. (...)아버지를 다시 잃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추모 상대는 일본 화낙(FANUC) 창업주 이나바 세이우에몬(稻葉淸右衛門) 전 회장. 박용만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가 화낙에서 공작기계 제어 장치를 구입하면서 이나바 전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산업용 로봇 분야 ‘한 우물 판’ 화낙 창업자
‘후지산의 노란 왕국’을 거느렸던 이나바 세이우에몬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건 지난해 10월 2일(당시 95세). 카리스마를 갖춘 ‘원맨 경영자’ 이나바 전 회장은 로봇 기술 연구라는 ‘한 우물 파기’의 대표적 경영인이었다. 그의 경영 방식은 ‘좁은 길일지라도, 곧장 가라’(狭い路、真っすぐ)는 말로 정리된다. 이런 그의 경영 방식을 일컬어 ‘이나바류’(稻葉流)라 칭하기도 한다. 

후지산 기슭 야마나시현에 있는 화낙은 산업용 로봇 분야의 세계 최강자다. 공작 기계 제어 장치와 금속 굴삭 분야의 점유율은 세계 톱이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 자동차, 애플,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등이 화낙의 고객들이다. 이런 화낙의 출발은 6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6년 후지쓰 사내 벤처팀으로 출발
“이나바군, 앞으로는 3C의 시대가 반드시 올걸세. 자네는 NC(수치제어, Numerical Control) 개발을 해보게.”

1956년 후지통신기기제조(현 후지쓰)의 오미 한조우(尾見半左右) 기술 담당 상무는 입사 12년차 이나바 세이우에몬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무의 이 말은 도쿄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이나바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곧바로 회사 내에 NC 사업부가 발족했고 팀장으로 이나바가 발탁됐다. 당시 후지쓰는 사업 보고서를 구분하기 위해 색상을 달리했는데, NC 사업부는 ‘노란색’을 채택했다. 후지통신의 NC 사업부는 1972년 분리, 후지쓰화낙(富士通ファナック)이라는 회사가 되었다. 이나바가 전무로 임명되었고, 1975년엔 사장에 취임했다. 

그 7년 뒤인 1982년엔 후지쓰 앞머리를 떼어내고 화낙(ファナック, FANUC)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탈바꿈했다. 화낙(FANUC)은 후지 자동화 수치제어(Fuji Automation Numerical Control)의 약자다.

건물-직원복-작업 로봇 등 온통 노란색
‘노란색 보고서’에서 시작된 화낙은 회사의 건물에서부터 작업 로봇, 사원들의 직원복, 모자 등 모든 게 노란색이다. 기업의 상징색이 되어버린 것. 노란색은 시각적인 효과가 선명하기 때문에 공장의 위험한 기계(로봇)를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화낙은 ‘후지산의 숨은 기업’으로 불렸다. 상장 기업이면서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됐고, 경영진들은 그 흔한 인터뷰조차 하지 않았다. 놀라운 건 그들의 영업 이익률. 한때 ‘40%’를 기록하기도 했다. 1983년 도쿄증권 거래소 1부에 상장한 이후 평균 영업 이익률은 31%. 심지어 리먼 쇼크 이후 기계 메이커들이 일제히 적자로 내려 앉았던 2010년 3월기에도 21.7%라는 놀라운 영업 이익률을 자랑했다. 현재 화낙 홈페이지엔 24.2%로 나와 있다. 

화낙을 세계 톱기업으로 키운 ‘고집 경영’
화낙을 세계 톱기업으로 키운 이나바 세이우에몬이지만, 세습경영 강행은 흠으로 남는다. 2003년 기존 사장을 ‘팽’시키고 장남(이나바 요시하루)을 자리에 앉힌다든가, 2013년엔 장남 이외에 모든 임원을 강등시키는 징벌적 인사를 단행한 건 ‘원맨 경영’의 부정적 측면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두가 여러 우물을 팔 때, 이나바 전 회장은 로봇 연구라는 ‘한 우물’을 고집했다. 모두가 회사 알리기에 열을 올릴 때, 그는 화낙만큼은 베일 속에 가둬 두었다. 그의  이런 ‘고집 경영’이 오늘날의 화낙을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기술자는) 좁은 길일지라도 곧장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던 엔지니어 출신의 이나바 전 회장. 그의 말을 마음에 새겨 보자. 길이 좁더라도 되돌아 가지 말고, 길이 좁더라도 멈추지 말고. 뚜벅뚜벅 말이다.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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