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의 동양 여성들...윤여정과 우메키 미요시
오스카의 동양 여성들...윤여정과 우메키 미요시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4.26 13: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우 윤여정(75)이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아시아 배우로는 일본 재즈가수 겸 배우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두번 째 수상. 윤여정의 수상을 계기로, 지금으로부터 63년 전 1958년 제30회 아카데미에서 우메키 미요시가 수상하던 순간을 되돌아봤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포토=TV조선 캡쳐.

“미요시 우메키(Miyoshi Umeki)”

1958년 3월 26일, 제3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던 할리우드 팬타지 극장(Pantages Theatre). 훤칠한 키의 미남배우 앤서니 퀸이 오스카 여우조연상 시상자로 등장했다. 그는 수상자로 ‘미요시 우메키’(Miyoshi Umeki)의 이름을 호명했다. 

앤서니 퀸이 여우조연상 일본배우 호명
곧바로 기모노를 입은 작은 체구의 여성이 객석에서 무대로 달려 나왔다. 미국에선 낸시 우메키(Nancy Umeki)로 더 알려진 재즈 가수 우메키 미요시(梅木美代志). 그녀가 아시아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는 순간이었다. 

윤여정과 일본 재즈가수 겸 배우 우메키 미요시.

영화 ‘사요나라’(Sayonara)에서 말론 브란드와 공연한 우메키 미요시는 미군 현지처로 동반자살을 택하는 비련의 여인을 맡았다. ‘사요나라’는 여우조연을 포함해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당시 시상식은 그 유명한 영화 ‘콰이 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의 독무대였다. 알렉 기네스(Alec Guinness)의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작품상, 감독상, 작곡상 등 7관왕에 올랐다. 

우메키 미요시는 1929년 홋카이도 오타루에서 태어났다. 가수의 꿈은 오빠 덕에 이뤄졌다. 제2차 대전 직후, 일본에 주둔한 미군장교 클럽의 연예 담당자가 영어노래를 부를 가수로 그녀의 오빠를 고용했다. 오빠는 “노래 잘하는 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했고, 그게 우메키 미요시의 가수 인생 첫발이었다. 

미요시는 미군 캠프에서 재즈를 불렀다. 열아홉 살이던 1948년 프로 재즈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도쿄로 입성했다. 여성 보컬로 인기를 누리던 1955년, 음악 공부를 위해 돌연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해 머큐리 레코드에서 ‘How Deep Is the Ocean’이라는 곡으로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미국에서 어느 정도 지명도를 가진 그녀가 할리우드에 데뷔한 건 1957년이다. 

미국에서 재즈가수-뮤지컬 배우로 활약
말론 브란도 주연의 영화 ‘사요나라’에 출연한 것. 이 영화는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에게 ‘아시아 최초 오스카 배우’라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 영화뿐 아니었다. 우메키 미요시는 1958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The Flower Drum Song’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듬해 토니상 뮤지컬 부문 주연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그렇게 1950~1960년에 걸쳐 미국에서 국제적인 배우로 인정 받았다. 

그녀는 1968년 미국 방송사 간부와 결혼했지만 곧 이혼하고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와 재혼했다. 그러다 1972년 당시 42세의 우메키 미요시는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했다. 1976년 남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땐 ‘작은 사건’도 있었다. 남편을 잃은 슬픔에 오스카 트로피를 스스로 부숴버렸다고 한다. 그의 아들 마이클은 “어머니는 트로피를 부수면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그녀는 쇼비즈니스 세계와 완전히 거리를 두었다. 오랫동안 언론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하와이에서 잠시 거주하다 미주리에서 아들 부부, 손자와 살던 우메키 미요시는 2007년 8월 28일 한 요양원에서 암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당시 78세) 미국 뉴욕타임스(아래)는 그녀의 사망소식을 뒤늦게 보도했다. <에디터 이재우>

(Miyoshi Umeki, an expressive actress of innocent charm who in 1957 was the first Asian performer to win an Oscar, as best supporting actress in her first Hollywood film, “Sayonara,” died on Aug. 28 in Licking, Mo. She was 78. The cause was complications of cancer, said her son, Michael Hood.)

영화 '사요나라'는 '굿바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수입됐다. 포스터=원로 영화연구가 정종화씨 제공

☞ Tip: 영화 ‘사요나라’ 1969년 한국 수입 개봉
영화 ‘사요나라’는 1969년 3월 2일 한국에 ‘굿바이’라는 이름으로 수입, 개봉됐다. 원로 영화연구가 정종화씨의 말이다. “당시 중앙극장에서 상영됐는데, 탤런트 김자옥의 아버지 김상하가 중앙극장의 선전부장을 하고 있었다. 시인이기도 한 그가 ‘굿바이’ 포스터의 문구를 다 썼다. 영화는 당시 25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지금으로 치면 엄청난 숫자다. 다른 제작수입사들이 상당히 부러워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