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한줄 어록/ 뭘 하든 목숨을 걸어라
CEO 한줄 어록/ 뭘 하든 목숨을 걸어라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5.28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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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노무라 도쿠시치(野村徳七)
▶경력: 노무라증권 창업자
▶평가: 일본 증권계의 거인
▶태생: 오사카
▶생몰연도: 1878~1945

노무라증권 창업자...“정지는 퇴보를 의미”
<에디터 이재우> 세상에 대충해서 얻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일이든 삶이든. 현상유지 역시 마찬가지다. 한 발 더 나아가지 않고선 얻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일본 최대 증권사 노무라증권(野村証券)의 창업자 노무라 도쿠시치(野村徳七)는 “정지는 퇴보를 의미한다”(停止は退歩を意味する。)고 했다. 또 그는 “뭘 하든 목숨을 걸어야 한다”(なんでも命がけでやれ。)고 역설했다. 

노무라 도쿠시치는 일본의 근대적인 증권업 시대를 연 인물이다. 노무라그룹의 출발은 그의 아버지(초대 노무라 도쿠시치:1850~1907)에서 비롯됐지만 노무라증권을 설립하는 등 그룹의 초석을 다진 건 아들 ‘2대 노무라 도쿠시치’(野村徳七:1878~1945)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름이 같아서 이름 앞에 ‘초대’와 ‘2대’라는 말을 붙인다. 

노무라증권 창업자 ‘2대 노무라 도쿠시치’. 그의 아버지는 '초대 노무라 도쿠시치'라 부른다. 

일본의 근대적인 증권업 시대를 연 인물
노무라증권의 시장점유율(계좌수 533만 개, 고객자산잔고 121조엔)과 영향력은 대단하다. 한국과 관련해 작은 예를 든다면, 노무라증권이 내놓는 보고서 한 줄이 한국증시와 한국기업 주가를 일희일비하게 만들기도 한다. 

일본 업계는 노무라증권의 가장 큰 장점으로 ‘정보의 신뢰도’를 꼽는다. 과거부터 ‘조사의 노무라, 정보의 노무라’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오사카의 중소증권사에서 도쿄를 넘어 글로벌 증권사로 도약하면서 ‘일본 증권업계의 걸리버’로 불리고 있다. 

오사카 태생의 사업가 ‘초대 노무라 도쿠시치’가 환전소 노무라상점(野村商店)을 개업한 건 1872년이다. 6년 뒤인 1878년, 그의 장남(2대 노무라 도쿠시치)이 태어났다.

1878년은 도쿄증권거래소(1878년 5월)와 오사카증권거래소(1878년 6월)가 설립된 해다. 일본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해에 ‘일본 증권업계의 거인’이 태어났다는 건 묘한 인연이다.

1906년 ‘조사의 노무라’라는 말 생겨
‘조사의 노무라’(調査の野村)라는 말이 처음 생긴 건 1906년. 그해 ‘초대 노무라 도쿠시치’는 오사카매일신문사의 민완기자 하시모토 키사쿠(橋本喜作)를 채용했다. 2배의 월급을 주고 전격 스카우트 했던 것.

그해 조사부를 만들어 책임자로 하시모토 키사쿠를 임명했다. 종전까지 증권 중개업은 ‘감’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노무라상점은 업계 최초로 ‘조사’에 힘을 실었다. 

노무라상점이 독자적인 조사를 전개하면서 발간하기 시작한 것이 ‘오사카노무라상보’(大阪野村商報)였다. 일반 고객들에게 배포했는데 전날의 시황, 이색 주식의 내용 분석, 경제 시사 문제 등 참신한 내용을 담았다.

당시로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고객 서비스였다. 독자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훗날 ‘조사의 노무라’라는 수식어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노무라상점의 기초를 닦은 ‘초대 노무라 도쿠시치’는 1907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들인 ‘2대 노무라 도쿠시치’가 가업을 이어받았다. 서른 살이 되던 1908년, 노무라 도쿠시치는 구미 열강들을 시찰(아사히신문 기획)하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다.

도쿠시치가 시찰에서 가장 관심을 가진 곳은 뉴욕 월가였다. “증권업은 금융기관과의 긴밀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실감하고 귀국 후 경영혁신을 단행했다. 

은행 증권부가 독립해 노무라증권 탄생
제1차 세계대전(1914년~1918)을 거치면서 재력을 비축한 노무라상점은 1917년 주식회사로 탈바꿈했고, 이듬 해 ‘오사카 노무라은행’(구 다이와은행, 현 리소나은행)을 설립했다. 은행 이름에 오사카를 붙인 것은 다른 동명의 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사카 노무라 은행은 사업을 넓혀가면서 증권부를 신설했다. 은행업에서 증권부라는 명칭을 사용한 최초의 사례였다. 1925년 증권부가 독립해 노무라증권주식회사가 설립, 다음 해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40년 뒤 노무라증권은 영역을 더 넓혀 나갔다. 1965년 조사부가 독립해 일본 최초의 민간 싱크탱크이자, 일본 최대의 경영 컨설팅 회사인 노무라 연구소가 만들어졌다.

1984년 교토에 노무라 미술관 개관
‘뭐든 목숨을 걸고 하라’고 했던 ‘2대 노무라 도쿠시치’는 일본 패전 7개월 전인 1945년 1월 66세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생전 다도 도구와 고미술품 수집이 취미였다.

그가 사 모은 컬렉션을 중심으로 1984년 교토에 노무라 미술관이 개관했다. 중요문화재 7점을 포함한 약 1700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봄, 가을 특별전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

노무라 도쿠시치는 갔지도 그의 컬렉션은 노무라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마치 한국의 이건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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