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카네이션 이야기
피카소와 카네이션 이야기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5.0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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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을 손에 든 니코스 벨로야니스(Nikos Beloyannis). 이 사진을 바탕으로 피카소는 스케치 그림을 그렸다. 

<에디터 이재우> 감사의 꽃, 카네이션.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카네이션은 세계 근대사의 여러 사건들 속에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유럽 지성사회를 들끓게 했던 ‘벨로야니스의 재판’(the trial of Beloyannis)이다. 

나치 점령에 저항했던 그리스 공산주의 레지스탕스 니코스 벨로야니스(Nikos Beloyannis:1915~1952). 그가 사형 선고를 받은 군사재판을 말한다. 당시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벨로야니스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한 송이 카네이션을 그렸다. 왜 그랬을까.

공산주의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니코스 벨로야니스
#. 1930~1940년대 그리스는 철권통치, 내전, 독일 나치 점령이라는 ‘3종세트’의 시련에 허덕이고 있었다. 독재자 요안니스 메탁사스(Ioannis Metaxas:1871~941)는 이탈리아 무솔리니를 추종한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하고, 그리스 국민들의 삶을 억압했다. 

그 무렵 그리스는 이웃 이탈리아와 전쟁(1940~1941)을 치렀는데, 독일은 이탈리아를 지원했다. 그 명분으로 독일 나치는 1941~1944년 중반까지 그리스를 군사적으로 점령했다.

이런 시대적 환경 속에서 활동했던 이가 니코스 벨로야니스다. 아버지는 호텔 소유주였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법률학교에 다니던 벨로야니스는 그리스 공산당(Communist Party of Greece: KKE)에 입당했다. 당시 KKE는 정부가 허락하지 않은 불법 조직이었다. 

벨로야니스는 법률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메탁사스 정권에 의해 투옥됐다. 나치가 그리스를 점령하면서 그의 신병은 나치에 인도됐다. 1943년 탈옥한 벨로야니스는 게릴라 조직인 그리스 민중 해방군(Greek People‘s Liberation Army:ELAS)에서 무장 활동을 전개했다.
 
위험을 피해 그리스를 떠난 그는 KKE 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1950년 6월 그리스로 돌아왔다. 그해 12월 당국에 체포된 벨로야니스는 군사법원에 넘겨졌다. 재판은 이듬해인 1951년 10월부터 시작됐다. 

그런데 유럽이 들끓었다. 벨로야니스를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피카소, 채플린, 사르트르 등 저명한 좌파 지식인들은 석방 청원에 가세했다. 하지만 재판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벨로야니스의 재판’...사형 집행 전 ‘카네이션 사진’ 유명
#. 1952년 3월 1일, 판결을 받으러 가는 벨로야니스에게 한 여성이 다가왔다. 카네이션을 건냈다. 그 모습이 사진에 찍혔고, ‘카네이션을 손에 든 남자’(The Man with the Carnation)라는 사진은 이내 널리 퍼져 유명해졌다. 

피카소는 이 사진에 영감을 받아 카네이션을 들고 웃고 있는 벨로야니스의 초상을 스케치(‘카네이션의 남자’:L'homme d'oiellet) 했다. 그런 벨로야니스의 심장 박동이 멈춘 건 1952년 3월 30일. 이날 오전 10시 우익 왕당파에 의해 총살, 처형됐다. 

피카소(1881~1973)가 벨로야니스 구명운동에 나선 건 그도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했던 피카소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공산당에 다가갔다. 실질적으로 나는 항상 그같이 해왔기 때문이다. 공산당 입당은 나의 삶과 작업의 논리적 귀결이다.”(I have come to the Communist Party without the least hesitation, since in reality I was with it all along. My membership of the Communist Party is the logical consequence of my whole life, of my whole work.)

70년 전 카네이션을 들고 웃던 남자는 이제 잊혀졌다. 일부 사람만 기억하는 인물로 남았다. 그를 흠모했던 피카소는 때마침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관객(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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