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운의 포토&워킹/ 제주친구 사귀는 법과 ‘동백화방’
노운의 포토&워킹/ 제주친구 사귀는 법과 ‘동백화방’
  • 노운 작가
  • 승인 2021.05.16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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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세화읍의 다랑쉬오름. '오름의 여왕'으로 불린다. 

#. <작가 노운> 페친(페이스북 친구)인 림태주 시인이 5월 1일, 제주 관련 글을 페북에 하나 올렸다. 글 쓰는 공간 ‘브런치’에 게재했던 내용을 다시 페북에 올렸는데, 읽고 나니 잠시 가슴이 쏴~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제주에 친구 한 명 없으면 인생 잘못 산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제주에 친구 한 명 없는 사람은 인생을 잘못 산 거라고. 만약 당신이 정말로 제주에 친구가 없다면 심각하게 생각이란 것을 해보면 좋겠다. 물론 당신은 ‘제주 친구’라는 게 하나의 은유라는 걸 알 것이다. 그리워할 대상,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가슴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다르지 않겠는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불쑥 제주에 가고 싶을 때 떠오르는 친구가 하나 정도 있으면 괜찮은 인생 아닐까.>

시인의 말 대로라면, 필자 역시 인생을 잘못 살았다. 현재도 잘못 살고 있다. 시인은 ‘제주친구 사귀는 법’에 대해 “제주에 왔다가 생각나서 들렀다고 말하면 안 된다”며 “여기가 자꾸 생각나서 참다가 왔다고 말해야 한다”고 친절히 가르쳐준다. 

시인은 다시 말한다. “나는 운 좋게도 제주에 친구가 몇 있다. 새로 사귈 필요도 없이 그들이 제주로 가서 정착을 했다.” 필자가 보기에도 ‘정착 친구’라도 둔 시인은 인생을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감 100%.

커피 마시며 그림 그리는 드로잉카페 '동백화방'

위미항 인근 빈티지 드로잉카페 ‘동백화방’
이젠 필자 얘기. ‘운 좋은’ 림태주 시인처럼 필자도 앞으론 운이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건너 건너’(?) 알게 된 친구 하나가 제주에서 ‘빈티지 느낌’ 빵빵 나는 드로잉카페를 열었기 때문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항 동백군락지 근처에 있는 ‘동백화방’이라는 이름의 카페다. 커피 마시며 자유롭게 혼자 그림 그리는 힐링 공간이다. 

미대 출신 화가 주인장의 감각이 돋보이는 빈티지 카페다.

미대를 나와 목판화 작업을 오랫동안 했던 화가 주인장. 역시 제주토박이는 아니다. 어렵게 정착했고, 더 어렵게 가게를 개업했다. 혹시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그곳 올레길(5코스)을 걷다 우연히 이 가게를 발견할 지도. 멀리서 가게 이름이 보이면 서슴없이 들어가 보라. 그러고 나서, 주인장에게 필자의 이름을 대보라. 커피 주문하면 뭘 덤으로 줄지 아는가. 암튼, 주인장 마음이다.  

큰지그리오름과 맞닿아있는 교래자연휴양림. 원시림 같은 초록숲이다.
큰지그리오름 정상 앞, 쭉 뻗은 나뭇길

“제주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지요”
#. 필자는 이번 제주 출장길에 이 지인의 가게를 잠시 들렀고, 미뤄 두었던 제주오름 두 코스를 이틀에 걸쳐 올랐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의 큰지그리오름과 서귀포시 세화읍에 있는 다랑쉬오름이다. 

첫날 오른 큰지그리오름은 교래 자연휴양림과 맞닿아있다. 정상으로 가려면 원시림 같은 휴양림을 지나 약간의 산행을 해야 한다. 오르내리는 데 2시간 30분~3시간 정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름 아래로 광활한 초록 산야가 펼쳐졌다. 

큰지그리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본 들판
큰지그리오름 전망대 데크

“어디서 오셨소? 마치 아프리카 초원 같지 않습니까?”
“아, 네. 서울요. 얼룩말 몇 마리만 풀어놓으면 영락없는 세렝게티군요.”

큰지그리오름 정상. 함께 주위를 둘러보던 한 탐방객이 필자에게 말을 건넸다. 연세가 좀 있는, 등산복 차림에 스틱까지 갖추고 올라온 걸 보면 산행을 열심히 즐기는 사람인 듯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일일이 오름의 이름들을 알려주었다. 저 멀리 바다에 떠 있는 섬 이름까지.

“혹시 제주엔 오름이 몇 개나 되는지 아세요?”(탐방객)
“글쎄요. 200~300개 정도 되나요?”(필자)
“모두 368개 있다고 합니다. 그중 8개는 통제(휴식년)로 탐방을 할 수 없어요”(탐방객)
“아~ 그렇군요.”(필자)

그와 잠시 다시 오름 전경을 조망했다. 문득 ‘오락실 두더지 게임’이 생각났다. 두더지가 머리를 내밀었다 뿅망치를 맞고 후다닥 들어가는 그 게임. 높고 낮은 오름들의 리듬 타는 모습이 꼭 그러했다. 필자는 탐방객 덕에 ‘운 좋게’ 공짜로 오름 공부를 한 셈이 됐다.  

다랑쉬오름 표석
다랑쉬오름 능선

‘오름의 여왕’ 다랑쉬오름 분화구에서 아찔
다음 날, 다랑쉬오름(월랑봉, 해발 382.4m) 정상 분화구에 섰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났다. 큰 아귀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 까딱하면 분화구 밑으로 빨려들어 갈 뻔했다. 몸을 가눌 수 없는 강한 바람 때문이었다. 발에 힘을 주며 무게중심을 낮춰 겨우 한 바퀴를 돌았다. 오름 전체 둘레는 1150미터. 분화구 깊이는 115m로, 한라산 백록담과 비슷하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3월 올랐던 백록담과 비교해 보니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다. 

다랑쉬오름 분화구는 백록담 깊이와 맞먹는다. 
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본 다끈다랑쉬오름.

제주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다랑쉬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라 불린다. 허언이 아니었다. 걸어보니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분화구 주위를 천천히 걸으며 눈으로는 수려한 풍광을, 몸으로는 강한 바람을 맞았다.

이래저래 ‘운 좋은’ 출장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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