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바꾼 '세기의 편집장' 이야기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바꾼 '세기의 편집장' 이야기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9.07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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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사진 위주'의 유명잡지로 만든 길버트 그로브너.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의류를 미국 브랜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아니다. 더네이처홀딩스라는 한국 회사가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부터 라이센스만 받아서 상표를 붙여 생산,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밝은 노란색 직사각형 테두리’ 로고에 익숙하다. 직사각형 테두리 옆에는 대문자 산세리프체(sans serif: 고딕체)가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로고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 표지에서 영감을 받았다. 매거진은 창간(1888년 10월) 초기부터 가장자리에 노란색 테두리를 하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National Geographic Society: 미국 지리학협회)에 의해 탄생한 매거진은 상업적으로는 2019년 3월 21세기 폭스(21st Century Fox) 영화·TV부분을 인수한 디즈니(월트디즈니컴퍼니) 산하에서 운영되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을 오늘날처럼 유명한 ‘상징적 출판물’로 만든 건 길버트 그로브너(Gilbert Hovey Grosvenor)였다. 한 편집자의 순간적인 영감이 어떻게, 세계적인 매거진을 재탄생시켰는지 그 스토리를 소개한다.<에디터 이재우>

1888년 1월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 설립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National Geographic Society: 미국지리학협회)가 설립된 건 1888 년 1월. 학자, 탐험가, 후원자 등 33명의 창립 회원이 워싱턴 DC의 코스모스 클럽에 모여 ‘지리학 지식 연구와 보급을 위한 협회’를 만든 것이다. 그해 10월, 협회는 평범한 갈색 표지에 98 페이지의 칙칙한 과학 간행물을 발간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 창간호였다. 

창간 당시 매거진은 기상 지도 몇 장과 기사만 가득한 밋밋한 잡지에 불과했다. 당연히 독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기사만 가득했던 이 ‘대책없던’ 잡지는 이후 16년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 1904년 12월 대변혁을 맞게 된다. 거기엔 편집자 길버트 그로브너(Gilbert Hovey Grosvenor:1875~1966)가 있었다. 

기사만 가득했고 밋밋했던 ‘전문가들만의 잡지’
그로브너는 터키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지 9년 만인 189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첫 정규직 직원으로 고용됐다. 당시 협회장이자 전화기 발명가로 알려진 알렉산더 그라함 벨(Alexander Graham Bell)의 덕이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의 편집자가 된 그로브너는 4년 후엔 편집장이 되었다. 그라함 벨은 그로브너에게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평범한 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출판물이 되어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로브너가 협회에 들어간 지 5년이 되던 1904년 12월 말, 잡지 발행이 큰 난관에 부딪혔다. 이듬해 1월호에 11페이지 가량의 공백이 생긴 것. 인쇄 마감은 촉박했고, 마땅한 원고는 없었다. 서둘러 공백을 메워야 했던 편집자 그로브너는 큰 고민에 빠졌다. 고민은 한 소포에서 풀렸다. 러시아 제국 지리학협회(Imperial Russian Geographic Society)가 보내온 소포였다. 다음은 그로브너의 말이다. 

1905년 1월호 티베트 라싸 사진 11페이지 파격 게재

<크고 다소 부피가 큰 봉투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잡지 페이지로 거듭 고민하던 나는 멍하니 포장을 개봉했다. 그러곤 봉투에서 튀어나온 내용물을 흥분할 정도로 쳐다보았다. 내 앞엔 러시아 탐험가가 찍은 티베트의 신비한 도시 라싸의 아름다운 사진 50장이 펼쳐졌다. 그 탐험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에 내용물을 무료로 제공했다. 티베트 수도의 생활을 처음으로 묘사한 ​​사진은 너무나 특별했고, 나는 그걸 잡지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원문: A large and rather bulky envelope lay on my desk. Still brooding about the unfilled pages, I opened the package listlessly...then stared with mounting excitement at the enclosures that tumbled out. Before me lay some 50 beautiful photographs of the mysterious city of Lhasa in Tibet, taken by a Russian explorer. He offered them to the National Geographic Society free for publication. The photographs, the first depicting life in Tibet capital, were so extraordinary that I decided to use them.>(코스모스 클럽에서 발췌)

그로브너 ‘현대 포토저널리즘의 아버지’로 불려
그로브너는 1905년 1월호에 티베트 라싸 사진 여러 장을 넣어 인쇄하기로 했다. 파격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사진에 캡션을 달고, 글이  아닌 이미지(사진)로 스토리의 중심을 잡았다. 당연히 내부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발행 이후 일반 대중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라함 벨의 예상이 적중했던 것이다. 

그로브너는 계속해서 사진 위주로 잡지의 정체성을 바꿔 나갔고, 새로운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불과 2년 만에 협회 회원 수는 3000명에서 2만 명으로 불어났다. 그로브너는 훗날 1920년부터 1954년까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장을 지냈다. 그후 재미없고 가독성 떨어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을 사진 기반의 획기적인 출판물로 변화시킨 그로브너는 ‘현대 포토저널리즘의 아버지’(Father of Modern Photojournalism)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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