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백신 편견을 버려야 하는 이유
생생 미국 리포트/ 백신 편견을 버려야 하는 이유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1.06.06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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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맞은 모더나 백신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백신관련 기사로서 말이다. 필자는 기자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기자의 생명은 ‘팩트(fact)’다. 그런데 그 팩트가 상실되면 오늘날 기자는 ‘기레기’가 된다. 게다가 요즘 언론은 ‘진영논리’가 조미료로 작용한다. 취재원 역시 천차만별이다. 한국의 경우 특히 그렇다. 미국에서 기사를 쓰기 위해 한국의 취재원들에게 질문을 하면 정반대의 답변이 돌아온다.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이후 남은 상처로 인해 주별로 그리고 정당 지지별로 취재원들의 대답은 다르다. 

따라서 백신에 관한 생생한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 자신 스스로 백신을 접종하고 그 결과와 체험을 담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의 페친(페이스북 친구) 중에는 백신 접종을 했다는 후기를 남긴 사람은 친구 사이를 끊고 차단하겠다는 열혈 백신반대론자도 상당수 계신다. 한국의 취재원들 역시 반반이다. 어느 한쪽에서는 정부대응을 칭찬하며 여기는 문제 없으니 너나 잘하라는 측과 백신 대응을 심히 잘못하여 억울한 죽음이 많으니 이걸 좀 알아달라는 쪽이 팽팽히 맞서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모더나(Moderna)’ 백신을 2차 접종까지 마쳤지만 멀쩡하다. 그러나 후회는 남았다. 이번 주부터 미국에서는 백신 접종을 장려하기 위해 걸었던 복권의 당첨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나는 한 주 차이로 흑심 없이 접종했기 때문이다. 

백신 드라이브 스루를 알리는 도로 안내판

▲백신을 대하는 K-타운
‘타운 백신 접종률 53%… 평균치 미달’. 이것이 현재 코리아타운의 유력 일간지 헤드라인 기사다. 이건 그나마 5월 하순의 수치이고, 지금은 더 낮다. 물론 65세 이상 ‘시니어’의 경우 82.9%로 탑을 달린 적도 있었고 한때 높은 접종률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이때는 백신 관광을 한국에서 많이들 오셨다. 

그때 이곳의 유력한 여행사 대표가 이를 의식하여 라디오에 출연해 “저희들이 관광은 책임질 수 있으나 코로나 백신은 책임질 수 없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표 값은 만석에 평상시 두 배 이상이었다. 미국은 어떤 종류든 신분증만 제시하면 자국민이 아니어도 무료접종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 관광객들이 줄기 시작하더니 ‘노쇼’가 시작되었다. 5월 말을 지나면서부터 한국도 코로나 백신 보급 상황이 나아져서 예약이 재개되어 굳이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였다. 참고로 미국에서 가장 백신 접종률이 낮은 것은 어느 주를 막론하고 흑인커뮤니티들이다. 꾸준히 남자는 10%, 여자는 20% 선이다. 그들은 “백인들이 자신들을 영구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백신 안에 뭔가를 주입했다”고 의심하거나 “흑인들의 신체는 위대해서 백신 안 맞아도 된다 그러니 안심하라”는 것이 요지다. 

그 다음으로 접종율이 낮은 곳이 코리아타운이어서 하루 종일 방송에서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다. 이유를 분석한 기사들도 쏟아져 나오는데 타운 내 유력한 대형교회에서 백신과 관련한 종말론적 주의(666 짐승의 표, 베리칩 등)를 주었다는 설부터 이미 상당수 접종을 마쳤기 때문에 더이상 확산되지 않으니 마스크만 써도 괜찮다는 낙관론자까지 다양하다. 한국에서 건너오신 분들의 접종이 확률을 높였기 때문에 거품이 빠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미 6월부터 식당이나 그 밖의 장소들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더 이상 접종율이 늘 가망성이 보이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백신 접종을 반대하는 흑인들 시위

▲험난했던 백신별곡
이곳 캘리포니아주는 한때 온화한 기후로 인해 확진자 수가 최고치를 기록한 적이 있을 만큼 심각한 지역이었다. 1년 365일 한파가 없어 홈리스(노숙자)들의 낙원이다. 틈만 생기면 우후죽순 그들은 거리 곳곳에 살림을 차린다. 심지어 수거를 해가기 위해 안쓰는 소파나 기타 가구류를 내놓으면 100% 홈리스들 차지가 된다. 

필자 역시 낡은 소파를 밖에 내놓고 시에 수거해가라는 전화를 했음에도 2~3일의 공백기를 거치는 동안 홈리스가 아늑한 보금자리로 개조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급기야 주정부는 물론 시정부까지 나서서 우선 홈리스들을 쉼터로 격리시키고 무조건 접종을 했다. 그렇게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확진자 수는 줄지 않았다. 워낙 불법체류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통계조차 알 수 없었다. 

이때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였고 시니어 우선주의였다. 이때는 대부분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가 선호되었는데 각 가정마다 차가 2~3대가 기본인 미국의 상황을 고려한 것이었다. 체육관, 스테디움, 디즈니랜드 등 주차장이 넓은 곳이라면 내리지 않고 최고 반나절 이상 대기 후 접종을 했다. 화장실 인심이 후할 일이 없어 ‘요실금 패드’를 지참하거나 소변처리용 깡통을 지참하는 일이 있었다. 

모더나(Moderna)와 화이자(Pfizer)외에 얀센(JOHNSON & JOHNSON) 등 세 가지 종류가 존재했는데 그나마 한번 접종만 가능하다는 얀센은 남들이 두 번에 나눠 맞을 걸 한번에 끝낸다는 특유의 특성 때문에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후유증이 나타나서 한때 접종을 중단하기도 했다.

필자의 백신 접종 카드

▲나의 백신 후기(모더나)
어렵사리 예약을 마친 우리 가족 중 나이가 어린 학생들은 지침상 ‘화이자’를, 나머지 인원들은 ‘모더나’를 접종하였다. 물론 선택의 여지란 없다. 내가 고를 수 있는 환경은 있었는데 예약 때 백신 종류별로 접종소를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예약을 시도했던 4월 초에서 중순의 경우에는 종류 따지지 않고 집에서 가까운 장소에서 접종만 할 수 있다면 감사 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나는 ‘모더나’를 접종했고 1차 접종 후 대략 3일간 왼쪽 팔(접종 부위)이 아팠다. 좀 피곤했고 땀을 많이 흘린 것 외에 별다른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2차 접종에 대한 걱정은 있었다. 이곳 시니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모더나 2차 후기는 심각한 체력한계를 호소하고 치아가 내려앉거나 이명현상 및 오한, 발열 등의 증상이 대부분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한 교포사회에서 ‘추어탕’과 ‘삼계탕’이 2차 접종 후 회복에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확산되었다. 체력보강을 위해 2차 접종 1주 전부터 꾸준히 고기를 먹어 체력보충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화이자가 3주의 공백기를 갖는데 반해 모더나는 4주 후 2차 접종을 한다. 5월 25일 오후 1시가 필자의 예약 시간이었는데 5월 중순 이후 예약을 하지 않아도 접종을 할 수 있다는 질방예방센터(CDC)의 발표가 있었기에 허탈한 마음으로 접종했다. 

1차 때와 다른 점은 접종소 분위기였는데, 한결 여유로웠고 질문도 느슨했으며 무엇보다도 한산했다. 나는 코리아타운을 벗어난 곳에서 접종을 했기 때문에 다를 수도 있다. 접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피곤함이 몰려 왔다. 우선 오한과 근육통을 경험하면서 권고대로 ‘타이레널’을 복용했다. 약 3일간 피로, 근육통을 경험하며 수면제를 먹은 듯 낮밤 가리지 않고 잠을 잔 이후 나는 드디어 회복되었다. 

특이한 것은 다른 주사들과 달리 백신접종의 경우 당일에도 샤워가 가능했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렸지만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원고를 쓰는 시점은 열흘을 훌쩍 넘겨서이다. 서론이 거창했던 데 반해 의외로 백신 체험기가 빈약하다는 점이 의아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다.

▲에필로그
필자는 크리스천이면서 신학을 전공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백신접종을 해도 괜찮느냐는 종교적 질문들을 하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독감주사를 맞는데 종교적인 해석이 따를 이유가 없거니와 ‘짐승의 표’. ‘666’, ‘음모론’은 성경 요한계시록 이후 꾸준히 제기되었고 버전도 자주 바뀌었던 다소 식상한 논리다. 

지금은 보편화 된 ‘바코드(barcode)’가 등장했을 때도 어김없이 예수님이 곧 재림하실 증거라고 하지 않았었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백신접종은 개인의 자유이며 모든 상황은 ‘복불복’이다. 서울의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듯 접종의 후유증 역시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다. 

하지만 전염병과 종교를 연관 짓지는 않았으면 한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대유행할 때 그걸 막아보자고 각 교회마다 모여 기도하였지만 오히려 그 집회가 확산의 통로가 되었던 것처럼 질병은 ‘기적’으로 치유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감염마저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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