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한줄 어록/ ‘아수라장’을 경험해 보라
CEO 한줄 어록/ ‘아수라장’을 경험해 보라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7.12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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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위기는 어떤 기업도 피해갈 수 없다. 때론 리더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이, 때론 조직의 자만심이 기업을 위태롭게 만든다. 또한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외부요인 탓에 기업이 흔들리거나 곤경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요한 건 이런 위기에 빠졌을 때 '구렁텅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계 최대의 전기메이커 히타치 제작소(日立製作所)는 ‘경영 위기 극복’에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로 꼽을 만하다. 이번 시리즈에서 소개할 CEO 한줄 어록은 ‘침몰하는 거함’ 히타치를 구한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전 사장 겸 회장이다. 
나카니시는 최근까지 ‘재계의 총리’인 경단련 회장직을 맡았다. 일본 언론들은 "6월 27일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전 회장이자 히타치 제작소 전 회장인 나카니시 히로아키가 림프종으로 숨졌다”고 7월 2일 보도했다.(75세) 나카니시 전 회장은 2019년 림프종 진단을 받고 요양 중이었으며, 치료를 위해 경단련 회장직을 사임했었다.<에디터 이재우>

▶이름: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경력: 히타치 제작소(日立製作所) 전 사장 겸 회장
▶태생: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생몰연도: 1946~2021

“수라장을 경험해야 경영자는 성장한다”
추억의 일본 SF 애니메이션 ‘마징가 Z’를 기억하는가. 이 애니메이션엔 오른쪽 몸은 여자, 왼쪽 몸은 남자인 기괴한 악역 ‘아수라’(일본에선 아수라 남작, 한국판에선 아수라 백작으로 표현)가 나온다. 악당역의 아수라는 불교에서는 호전적인 악귀(惡鬼)다. 이 아수라에 대항해 싸우는 게 제석천(帝釋天)으로, 부처를 수호하고 불법(佛法)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이 제석천과 아수라의 싸움터가 아수라장(阿修羅場)이다. 일본에선 보통 수라장(修羅場:슈라바)이라 한다. 

히타치 제작소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전 회장

참혹한 전쟁터, 혼란 상태에 빠진 현장을 의미하는 불교용어 수라장(아수라장). 이 수라장이 들어간 어록을 남긴 이가 히타치 제작소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전 회장이다. 그는 “수라장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경영자는 성장하지 않는다”(修羅場を経験しなければ経営者は育たない)고 했다.(닛케이비즈니스) 

‘침몰하는 거함’ 히타치를 구한 구원투수 경영자
한때 제조업 사상 최대 적자에 빠졌던 히타치 제작소. 이 회사가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상대없는 전쟁터였다. 나카니시 전 회장은 ‘구원투수 경영자’로 활약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치열한 싸움터에 직접 뛰어들어 패배든, 성공이든 뭐든 경험해 보라고 주문했다. 경영권을 세습받아 꽃길만 걸었거나, 공격보단 수성으로 자리만 보전했거나, 그 흔한 전쟁 한번 치러보지 않은 리더라면 눈여겨 볼 일이다. 

히타치 제작소는 1920년 설립된 ‘100년 기업’이다. 가전제품부터 건설, 철도, 원자력 발전 등 중후장대 사업의 대명사다. 이름은 이바라키현 히타치시에 있는 히타치 구리 광산에서 유래했다. 이 광산 사업소에서 일본 최초로 5마력 모터를 자체 개발한 것이 히타치 제작소의 출발이다.

‘기술의 히타치’(技術の日立)라는 캐치프레이즈에서 알 수 있듯이 줄곧 기술직 출신이 CEO를 맡아왔다. 그런 탓에 ‘노부시’(野武士)라는 기업문화로 유명하다. 들판(업계)의 무사처럼 싸움터를 누비던 히타치도 ‘2008년 리먼 쇼크’를 피해갈 순 없었다. 당시 히타치는 사상 최대 7800 억 엔이 넘는 거액의 적자에 빠졌다. 그때 입에 오르내리던 말이 ‘침몰하는 거함’(沈む巨艦)이다. 

 

실적 악화의 책임을 지고 쇼야마 에츠히코(庄山悦彦) 회장과 후루카와 카즈오(古川一夫)사장이 2009년 4월 동시에 사임했다. 이들을 대신해 회장 겸 사장에 취임한 이가 자회사에 몸담고 있던 가와무라 다카시(川村 隆)이다. 가와무라는 1년 후인 2010년 4월, 미국 자회사 재건에 힘쓰던 나카니시 히로아키 부사장을 본사 사장(임기 2010~2014)으로 파격 등용했다. 

‘기술의 히타치’에서 ‘강한 히타치’로 슬로건 변경
경영의 키를 잡은 나카니시 사장(도쿄대 전기공학과 졸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업 슬로건 변경이다. ‘기술의 히타치’에서 ‘강한 히타치’로 바꿨다. 살아남아 거함을 물 위로 다시 띄워올려야 했던 것. 그는 디지털화를 축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그룹 사업 재구축에 나섰다. 

기업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2011년 4월 가동했던 ‘스마트 트랜스 포메이션 프로젝트’라는 비용 절감 대책도 큰 힘을 발휘했다. 이를 통해 2015년 3분기에는 3200억 엔(누계)의 코스트 절감을 이뤄냈다.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0년에 걸쳐 상장 자회사 수를 22개에서 4개로 줄여 나갔다. 그렇게 히타치는 재건에 성공, 마침내 V자 회복을 달성했다. 그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다. 아래는 언론의 평가다. 

<“이렇게 개혁해야만 합니다”라는 논리를 한번 굳히면 쉽게 구부리지 않는 성격이어서 적(敵)도 많았다. 히타치의 사업 구조 개혁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고, 수익이 크게 개선된 것은 나카니시 히로아키의 담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경제매체 다이아몬드)

2014년 사장에서 회장으로 물러난 나카니시는 2018년 5월,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회장에 취임했다. 1년 후인 5월 악성 림프종이 발견돼 경단련 회장직을 잠시 쉬었다가 복귀했다. 그러다 2020년 7월 림프종이 재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직에서 물러났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7월 2일 나카니시 히로아키 전 회장의 사망을 두고 “일찍이 일본 사회의 디지털화 필요성을 지적하고, 탈탄소화를 제창했다”며 “미래를 내다보는 넓은 시야의 제안들이 주요 정책으로 내각에 반영되었다”고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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