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의 인생 좌표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의 인생 좌표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7.19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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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빈 대장이 장애인으로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그는 18일(현지시각)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제3고봉인 브로드피크(8047m)를 등정했다. photo=김홍빈 페이스북

두 손이 있을 땐 나만을 위했습니다
두 손이 없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보였습니다~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57). 그의 페이스북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다. 2009년 남극을 다녀와서 쓴 글(‘남극에서’)의 일부다. 그는 당시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4897m)를 마지막으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다. 1991년 북미 최고봉 데날리(매킨리)를 단독으로 오르다 동상을 입고 열 손가락을 잃은 아픈 경험이 있는 사내. 이 사내는 30년 째 손가락 없이 등정을 하고 있다. 

장애인으론 세계 최초 14좌 완등 후 실종
그런 김홍빈이 장애인으로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18일(현지)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제3고봉인 브로드피크(8047m)를 등정하면서다.(히말라야 8천미터 14개 봉우리 중 5개가 파키스탄에 있다.)  하지만 6명의 대원 중 일원이었던 그는 안타깝게도 그는 하산 중 실종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은 19일 연합뉴스에 "김홍빈 대장이 정상 등정 이후 하산 과정에서 실종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현지에 있던 해외 등반대가 구조에 나섰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대한산악연맹 등에 따르면 김 대장은 정상 정복 후 캠프3(7100m)을 향해 하산하다 해발 7900m 부근에서 조난, 19일 오전 9시 58분(현지시각) 경 구조 요청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장은 크레바스에 빠졌고, 주마(등강기)를 이용해서 올라오는 도중 줄이 끊어져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이번 14좌 완등 도전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컸다. 그만큼 원정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김 대장이 2019년 가셔브룸1봉을 정복했을 당시, 파키스탄 한국대사관에 주재했던 한 외교관도 그 중 하나다. 지금은 미국에서 근무하는 이 외교관은 재팬올에 김홍빈 대장과의 인연을 이렇게 말했다. 

<2019년 7월 20일이죠. 당시 13좌인 가셔브룸 등반에 성공하고 나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한인교회 목사님 댁에서 김홍빈 대장과 저녁을 같이 했습니다. 일종의 13좌 등반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였죠. 당시 김홍빈 대장이 말했어요 “내년, 그러니까 2020년에 14좌 도전을 하기 위해 다시 오겠다. 많이 응원해 달라”. 김홍빈 대장은 소박하고 인간적이며, 수수한 인상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김홍빈 대장은 1991년 북미 최고봉 데날리(매킨리)를 단독 등정하다 동상을 입고 열 손가락을 잃었다. photo=김홍빈 페이스북

파키스탄 주재 한국 외교관이 본 김홍빈
김홍빈 대장은 원래대로라면 14좌 도전을 위해 지난해 출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등으로 1년이 늦어졌다. 계속해서 외교관의 말이다. 

<열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손바닥을 오무려 숟가락을 잡던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멀쩡한 사람들도 하기 힘든 등반을 계속하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진짜 고수’는 티를 잘 내지도 않았습니다. 13좌 등반에 성공했는데도 차분하고 가식적이지 않았어요.. 장애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당당함’이랄까. 현실을 초월한 강한 내공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목계지덕(木鷄之德: 나무로 만든 닭처럼 작은 일에 흔들림이 없다는 뜻)이라는 말이 그에게 잘 어울릴 겁니다.> 

산악인에게 열 손가락이 없다는 건 목숨을 내놓고 등반하는 것과 같다. 산에선 자신의 손으로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그였지만 ‘의지’가 그의 손가락을 대신했다. 그런 김홍빈 대장의 ‘삶의 나침반’은 자신에게 맞춰져 있지 않다. 그는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작은 좌표’가 되려 한다. 파키스탄 매체에서 찾아 본 김홍빈의 ‘미래 계획’은 이렇다. 

김홍빈 대장의 과거 등정 과정을 담은 KBS 다큐멘터리 '열 손가락의 눈물'을 권한다. photo=김홍빈 페이스북

“나는 꿈이 있고 그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파키스탄 현지 매체 돈(Dawn)은 2017년 7월, ‘악마의 산’ 낭가 파르밧(Nanga Parbat: 8125m)을 등정한 김홍빈 인터뷰를 실었다. 이 매체는 파키스탄 알파인 클럽 대변인 카라르 하이드리(Karrar Haidri)의 말을 인용해 “보통 낭가 파르밧을 오르는 데는 한 달이 걸리지만 한국 산악인은 단 15일 만에 정상에 올랐다”고 말했다.

이 매체는 김홍빈에게 ‘미래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꿈이 있고 그것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난 5년 연속적으로 스키에서 금메달을 땄고 패럴림픽에도 진출합니다. 제 꿈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젊은이들, 특히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열 손가락이 없어진 후 도움이 필요했던 그런 방식으로 그들(신체 장애 젊은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기사 원문: I have dreams and I have no intentions of giving them up. I have won gold medals in skiing consecutively for the last five years and I have also qualified for the 2018 Paralympics. My dreams don’t end there. I want to be a role model for the young, especially the physically challenged and help them the way I needed help after my injuries.

김홍빈은 산악인이면서 자전거 레이서이자 스키 선수이기도 하다. 최근엔 배드민턴까지 한다. ‘어쩌다 장애인’이 된 그다. 그런 자신의 장애를 김홍빈은 유쾌하게 받아들인다. 페이스북에서 찾은 그의 말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모든 것이 순탄하다면 인생이 재미있었을까요? 내가 손가락을 잃지 않고 14좌를 완등 했다면 명예와 사회적 지위는 쉽게 얻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은 저를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p.s. 김홍빈 대장의 실종 소식을 접한 한국 외교관은 “그의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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