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SriLanka Talk/ 옆집 할머니의 ‘50 루피 인심’
김성진의 SriLanka Talk/ 옆집 할머니의 ‘50 루피 인심’
  • 김성진 작가
  • 승인 2021.07.2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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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의 '망중한'. 

한때 ‘사장님 나빠요’라는 개그 코너의 멘트가 유행한 적 있다.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블랑카(가상의 인물)를 내세워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차별을 개그로 꾸몄다. 당시 블랑카 역을 맡은 개그맨 정철규는 어디가든 진짜 스리랑카인으로 오해 아닌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사장님 나빠요’ 이후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이 제법 바뀌었지만, 그들(이주노동자)을 위해 오랫동안 일해 온 김성진(55) 작가의 눈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스리랑카에 유학하고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 김성진 작가가 스리랑카의 사람, 풍경, 일상, 인권, 노동 환경 등 경험담을 '스리랑카 토크'(SriLanka Talk)라는 제목으로 기고한다. <편집자주>

한국에서 비영리단체 이주노동자센터 10년간 운영
나는 한국에서 비영리단체 이주노동자센터를 10년 가까이 운영한 경험이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 다문화 결혼 이주민, 유학생 등과 소통하며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외면받는 그들의 권익 보호와 복지 향상을 위해 일했다. 지난 일이지만 뿌듯하고 자부심을 느낀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때론 사업주 멱살을 잡고 싸우기도 했고, 욕도 제법 했던 것 같다. 사업주들은 당연히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센터를 10년간 운영했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한 모습. 오른 쪽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필자. 

한국에서의 내 경험을 잠시 되돌아본다. 외국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얻고 있는지에 따라 거주국에 대한 바른 인식과 정치·경제 ·문화를 이해하는 지표(barometer)가 되며, 허가된 체류 기간에 따라 정보의 욕구 강도도 달라진다. 

이주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 당연히 일자리 관련 정보와 그 처우에 관한 것이다. 유학생의 경우, 졸업 후 다시 맞게 되는 비자 지위 변경에 관한 것이며 결혼 이주민의 경우엔 아이들의 취학 문제와 쓰레기 분리수거와 같은 종류의 정보이다. 외국인들은 정보가 필요하면 외국인 지원센터를 찾거나 같은 국가 출신 주변인을 찾게 된다. 

그들은 센터에서 일하는 거주국 사람들과 인간적인 친분을 맺고, 그들을 통해 필요한 고급정보를 얻기도 한다. 또 언어소통의 능력이 뛰어나고 장기간 살아온 같은 국가 출신 결혼 이주민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들이 원하는 정보가 차고 넘치는 관련 웹사이트가 다수 있으나 접근이 쉽지 않다. 그럴뿐만 아니라 사용이 불편하다. 영어를 지원하는 사이트도 있지만, 일부 유학생을 제외하면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국기. 인구의 다수인 싱할라족(불교)이 사자의 자손임을 상징한다.

이젠 내가 멀고 먼 스리랑카에서 ‘낯선 외국인’
세월이 지나 이제 처지가 바뀌었다. 내가 외국인으로서 스리랑카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지나간 일을 생각해 볼 때 그 감회(感懷)와 회포(懷抱) 또한 남다르다. 그러한 추억 때문인지 외국인으로서 여기 살게 되니 그들이 한국에서 겪었을 일을 생각하며 비교하게 된다. 어떠하냐고? 그게 ‘너무나 비슷하여’ 깜짝 놀랐다. 

빨래를 말리는 소박한 동네의 한 어귀.

사람들은 언어 사용의 숙련도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원초적인 태도를 보인다. 고급학교 과정을 마치고 지식이 충만하여 아무리 아는 것이 많다고 하여도 거주하는 나라의 언어를 잘 알지 못해 버벅대거나 빙긋이 웃고만 있다면 어떨까? 외국인을 대하는 거주민들은 그들을 볼 때 무시하여 만만히 여기기도 하고 오히려 도와주고 싶은, 측은한 마음도 가지게 된다. 그럴 때 외국인은 그저 주눅이 들고 자신이 없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한국에 살러 온 그들이 그랬고 지금은 외국인으로서 여기 스리랑카에 사는 필자가 그렇다. 

활동성이 좋은 삼륜차. 뒤쪽 우산 쓴 여성들도 '마스크 필수'.

한국에서 멀고 먼 스리랑카로 건너오자고 마음 먹을 때 넉넉히 오랫동안 지내리라 결심을 하였기에 차근차근 조심스럽게 이 사회에 젖어 들려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 좀 바보스러우면 어떻고 불쌍하게 보여서 돕고 싶은 마음을 유발한다면 또 어떠리. 

스리랑카에도 코로나 여파...교통편-공공장소 통제
세계적으로 도래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나라 전체의 기능이 멈춰 선 느낌이다. 정부는 도시와 도시, 지방과 지방간 왕래를 통제하였기에 전국 구석구석까지 얽혀있는 철도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스리랑카 아재들의 패션. 아재들은 어디 가실까? 

모든 기차는 멈추어 섰고,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내달리던 버스들은 사람이 다니지 않게 된 터미널과 주차장에 무리 지어 서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부터 통행을 제한하기 시작한 터라 학교와 학원은 문을 닫은 지 이미 5개월 째 접어든다. 

그나마 큰 슈퍼와 동네 구멍가게, 상점과 식당들은 코로나 감염자 수의 추이에 따라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고,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어야 할 터이다.

스리랑카의 동네 시장은 한국 시골과 다름없다. 

옆집 할머니가 생선값 ‘오십 루피’ 선뜻 내줘
그럼에도 내 주위의 일상은 평온하다. 우리 동네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생선 장수 아저씨가 나타난다. 독특한 억양으로 ‘말~루~’(스리랑카 말로 생선임)라고 외치는 소리가 가까워지면 집집마다 그릇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든다. 

평소 생선을 즐겨 먹는 편이라 이번에도 욕심을 내어 이것저것 집어 들었는데 아차 오십 루피가 부족하였다. 스리랑카어가 ‘좀 달려’ 주저주저하고 있는데 뒤를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뒤돌아보니 옆집 할머니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오십 루피(한국돈 300원 정도)짜리 지폐를 슬그머니 내 손에 쥐여준다. 이게 ‘스리랑카의 인심’이다. 

 

→<김성진 작가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센터를 10년 간 운영했다. △2018년 스리랑카로 건너 와 페라데니아 대학(university of peradeniya) 대학원에서 사회학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스리랑카 수도 외곽의 호칸다라 사우스(Hokandara South)에 거주하고 있다. “인권, 노동뿐 아니라 스리랑카 문화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여기서 공부를 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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