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말 많고 탈 많은 ‘영주권 별곡’
생생 미국 리포트/ 말 많고 탈 많은 ‘영주권 별곡’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1.07.23 2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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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국 서류.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해본다. 살짝 고민을 했다. 그래도 글의 주제와 방향성을 위해, 또 독자들에게 생생한 경험담을 전달하기 위해 필자가 희생(?)하기로 했다. 희생='개인정보 오픈'. 나는 5대째 미국에 살고 있고, 현재 ‘재혼’을 10년째 꿈꾸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곳 코리아타운에서 상대를 찾기란 매우 힘들다. 미국에 먼저 이민 온 분들에게 늦은 이민을 온 사람들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 처음부터 미국 생활에 대해 가르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국(한국)에 거주하시는 몇몇 분들을 만나보고자 하였다. 그런데 공통적인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물론 내가 그다지 매력적인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퇴짜를 맞았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3가지 공통적 의견을 내놓았다. 

▲한국이 미국보다 ‘선진국’이라서 ▲오히려 미국에서 한국으로 역이민을 오는 시대라서 ▲미국에 가면 여자가 ‘죽도록’ 일을(이건 오해다. 딱 10년만 일하면서 ‘세금 보고’를 충실히 하면 죽을 때까지 연금 및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해야 해서였다. 그만큼 한국이 살기 좋아졌다는 이야기로 들리지만 한편으로 이곳 분들의 반응은 ‘공감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왜냐하면 지금도 많은 분들이 미국에 이민을 오고 있고 ‘아메리칸 드림’ 실현의 첫 관문인 ‘영주권’(GREEN CARD) 취득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번 주제는 바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미국 영주권’에 관한 파란만장한 스토리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미국에 오지만 그러나...

▲‘미국’이 유일한 탈출구이던 시절
미국에서 성공하신 분들을 보면 대부분 오는 비행기 표 정도의 돈을 가지고 맨주먹으로 이민오신 분들이 많다. 이분들은 정말 죽기 살기로 버텨내셨다. 1980~90년대는 특히 미국 이민의 절정기로 60~70년대 자격증(병아리 감별사 등) 취득에 의한 맞춤 이민에 비해 ‘편법이민’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합법적인 이민의 길은 좁았고 따라서 캐나다나 멕시코까지 와서 국경선을 통해 불법 월경도 서슴지 않던 시절이다. 자동차, 비행기 등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미국으로 들어오거나 심지어 배를 타고 해안가에 몰래 내려 무작정 타운쪽으로 뛰던 시절도 있었던 것이다. 탈북자들의 해외 탈북루트 만큼 미국으로 들어오는 경로도 많았고 브로커들은 넘쳐났다. 

따라서 당시 입국하여 세월이 지나 영주권 취득에 이어 시민권까지 취득한 분들에게는 전설적인 무용담이 넘쳐난다. 이런 분들에게 앞서 이야기한 한국 여자분들의 반응을 알려드린다면 십중팔구 “누가 자기더러 오랬나?”라는 반응들을 보인다. 

또 이분들이 이민 오던 시절에는 워낙 ‘이산가족’들이 넘쳐나서 미주중앙일보 등이 ‘이산가족상봉후원회’를 영사관과 미국 이민국 간 협의를 거쳐 결성하고 곧 미국에(합법적으로) 이민 올 자녀나 배우자를 1달간 초청, 견학하는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은 눈물바다였는데 이후 상봉한 가족들은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의 두 가지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영주권 디자인

▲행복하거나 혹은 불행하거나
무엇보다도 ‘영주권’을 취득하게 된 경로에 따라서 희비가 엇갈린 경우가 많았다. 당시만 해도 가장 영주권 취득이 빨랐던 케이스는 국제결혼이었다. 당연히 돈을 받고 결혼을 해주고 영주권 취득 후 이혼하는 전문 ‘결혼인’들이 있었다. 문제는 영주권 취득 후 마음이 바뀌어 본국에 있는 배우자는 초청하지 않고 자녀만 선택하는 경우가 생겨났는가 하면 아예 현지에서 새로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자녀의 연령(특히 남자의 경우 만 21세 미만)에 따라서 초청이 되거나 안되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민 온 가족과 후에 이민 온 가족 간의 갈등은 심각했다. 적응의 문제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먼저 미국 온 가족이 다른 가족을 초청하면서 물질적으로 착취하고 ‘텃세’를 부린 경우도 있었다. 어르신들의 경우 본국에 있는 자녀들과 미국에 있는 자녀들 간에 서로 부양을 하지 않으려 하여 졸지에 해체된 가족관계로 미아가 되어 버린 분들도 속출했다. 

그러나 대다수 가족들은 상봉을 했고 악착 같이 일했다. 중고등학생이라 할지라도 도착 다음날부터 시차도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본국에서의 삶보다는 더 나은 삶이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립학교들은 막 이민 온 학생들로 넘쳐났고 이들을 따로 모아 ‘A, B, C’부터 새로 가르쳤다. 온 가족이 일을 해야 했으므로 주말에 모여 ‘LA 갈비’를 구워 먹거나 교회를 가는 일 외에는 낙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가족이 다시 만나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했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영주권별곡
물론 영주권이 잘 나와주면 괜찮겠지만 불법체류를 감수하고서라도 가족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명제로 적게는 5년에서 길게는 20년까지 불편을 감수한 케이스들이 많다. 이들은 교포신문에 나오는 ‘영주권 문호’를 보면서 스폰서를 구하러 다녔고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했다. 

또한 한때는 미국의 특성을 감안 하여 무조건 아이부터 임신하고 보는 경향도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시민권이 자동 부여되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는 특히 관광비자로 들어와 그대로 눌러 앉은 케이스가 급증했는데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그때만 해도 비자전환 후 공립학교 입학이 가능하던 시절이라 많은 분들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모험을 감행했다. 

만약, ‘아메리칸 드림’이 1도 없다면 그토록 희생했을 것인가 하는 반문을 하고 싶다. 모두들 한국에서의 지위나 삶을 내려놓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지만 결국 정착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숱한 영주권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생겨난다. 이른 새벽부터 이민국 앞에 줄을 서 가며 이민법 전문 변호사들에게 ‘비싼 수임료’를 지불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취득한다. 

2010년대에 접어 들어 투자이민으로 들어오는 케이스가 증가했지만 교포사회의 속설인 “쉽게 취득한 영주권은 쉽게 버린다”는 말처럼 가져 온 돈을 다 쓰고 싫증이 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따금 미국에 와서 ‘유튜브’만 몇 년 하다가 ‘역이민’ 가면서 미국 욕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대다수 교포들에게는 ‘공공의 적’이다. 

2021년 7월 영주권 문호

심지어 몇몇 분들은 기존의 교포들을 무시하고 ‘하대’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이들에게는 그냥 이민도 ‘체험’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이래서 역이민을 생각한다...”는 말을 달고 산다. 왜 이민을 왔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다. 그저 여러 마켓을 돌며 ‘여기는 이게 좋다’, ‘저기는 저게 좋다’만 남발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끼리끼리 놀러 다닌다. 당연히 이들은 미련 없이 영어나 조금 배우다가 한국으로 떠난다. 

또 영주권이 끝은 아니다. 영주권자는 여러 가지 ‘추방’의 위험도 있다. 글자 그대로 합법적으로 체류를 허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권’ 취득을 해야 비로서 여러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는 ‘미국 시민 사칭’이다. 영주권자는 절대로 ‘사칭’을 하면 안 된다. 조그마한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시민권 취득 자격의 박탈은 물론 영주권 반납 후 그날로 본국으로의 추방이다. 

따라서 영주권자들은 시민권 취득을 위해 노력한다. 영주권과 시민권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시민권 시험에 합격하고 선서를 하는 순간 미국은 ‘남의 나라’가 아닌 ‘내 나라’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주권자들은 3~5년 내에 응시자격이 주어지는 ‘시민권’으로 말을 갈아탄다. 영주권을 어렵게 취득한 경우일수록 시민권 취득을 빨리하는 편이다. 

 

영화 '깊고 푸른 밤'

▲영화 ‘깊고 푸른 밤’은 진행 중
1980년대 배창호 감독의 걸작 영화 ‘깊고 푸른 밤’을 기억하는가? 백호빈(안성기 분)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부와 기회를 꿈꾸는 야망의 사나이지만 ‘영주권’이 없다. 그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 제인(장미희 분)과 위장 결혼을 하게 되는데 하필 제인이 호빈을 사랑하게 되고 만다. 호빈의 욕망과 제인의 사랑이 부딪쳐 대립한 그 끝은 무엇일까? 

제인은 계약을 위반하면서 까지 호빈에게 사랑을 진심으로 고백하건만 그에게는 본국의 부인과 아이에 대한 생각 뿐이다. 그리고 갈등 끝에 오른 이혼 여행 길. 사막 위에서의 선택지는 허망한 ‘죽음’뿐이었다. 이 영화의 리얼리티는 동일한 소재를 다룬 미국영화 ‘그린카드’(GREEN CARD)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이 영화가 아직도 곳곳에서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위장 결혼을 하는 ‘호빈’(남녀 공통)은 넘쳐나고 있고 이른바 ‘기러기 엄마’들이 새로운 남자를 만나게 되어 본국의 남편들과 이혼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꿈꾸는 것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다.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필자에게 물을 것이다. 과연 ‘아메리칸 드림’이 무엇이냐고. 나는 자신 있게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다 ▲자기 ‘국민’은 지구 끝까지 가서 구해 온다 ▲‘천조국’의 지위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에 오고 싶은 (한국)분들은 넘쳐난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영주권 페티션(petition)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는 (한국)분들 역시 넘쳐난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다만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놓는 것으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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