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도쿄 올림픽...그때는 말이야!
1964년 도쿄 올림픽...그때는 말이야!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7.26 16: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디터 이재우> 코로나 탓에 지구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희한한 올림픽이 치러지고 있다. ‘도쿄 올림픽 개최’를 착잡하게 바라보는 건 비단 일본인들뿐만 아니다. 1964년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하계)을 열었던 일본이다. 그런 일본은 지금 관중없는 올림픽 경기를 지켜보면서 ‘과거의 올림픽(1964년 10월 10일 ~10월 24일) 영광’을 회상하고 있다. 

1960년대 일본은 ‘황금의 60년대’로 불리며 연 11%~12%라는 경이적인 두 자리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과 인구 감소에 직면해 있는 일본이지만, 60년대는 태평양 전쟁으로 격감한 인구 회복을 극복하며 대폭적인 인구 증가의 시대를 맞았다. 도쿄 올림픽(1964년)이 열린 3년 후인 1967년에는 총인구가 1억 명을 돌파했다. 

패전 후 맥아더사령부(GHQ)의 점령하에서 겨우 벗어나 ‘경제성장의 맛’을 보기 시작했던 일본에게 도쿄 올림픽은 자신감 회복을 위한 장(場)이었다. 국제 사회를 향해 일본을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 도쿄 올림픽은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재임시기 1960년 7월 18일~1964년 11월 9일/ 58-59-60대 총리) 내각 시절에 열렸다. 

이케다 하야토 총리 ‘경제의 시대’로 전환
이케다 내각은 일본을 ‘정치의 시대’에서 ‘경제의 시대’로 전환한 혁신의 내각이었다. 지금이야 총리(수상)가 경제성장률과 GDP 목표액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게 당연하지만, 경제 정책을 정부 목표의 핵심으로 내건 건 이케다 내각이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케다는 1960년 취임하자마자 ‘소득 배증 계획’(所得倍増計画)을 내세워 ‘10년간 GNP(국민 총생산) 두 배’를 선언했다. 

올림픽을 앞둔 당시, 최대의 이벤트는 신칸센 개통이었다. 거기엔 영웅도 탄생했다. 도카이도 신칸센(세계 최초의 고속철) 건설을 견인한 제4대 국철 총재 소고 신지(十河信二:1884~1981)다. 올림픽 개최 9일 전인 10월 1일, 도쿄역 9번 홈에서 도쿄와 신오사카를 연결하는 신칸센 히카리 1호 개통식 행사가 열렸다. 신바시~요코하마 사이에 일본 최초로 열차가 개통된 이후 92년 만에 새로운 교통수단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신칸센의 아버지' 소고 신지. 그는 중국어로 ‘유파즈’(有法子)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소고 신지 기념관의 ‘유파즈’ 액자.

나이 71세이던 1955년 국철 총재로 취임
‘신칸센의 아버지’(新幹線の父)라 불리는 소고 신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에히메현 출신으로, 도쿄제국대학 법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철도원에 들어가면서 철도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철도원 총재였던 고토 신페이(後藤新平)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만주철도 중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소고 신지는 ‘전쟁 불확대’를 주장했지만 군에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일본 본토로 돌아온 그는 에히메현의 시장직을 잠시 맡았다. 그런 그가 제4대 국철 총재 취임 요청을 받은 건 1955년이다. 소고 신지는 이미 일흔을 넘긴 나이였다. 

71세의 소고 신지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처음엔 고사했다. 당시 국철은 잇따른 사고로 신뢰가 실추된 상태였으며, 강력한 리더십과 조직 쇄신이 필요했다. 소고 신지를 설득에 나선 건 1955년 자민당 창당을 주도한 거물 정치인 미키 부키치(三木武吉)였다.
 
취임식 날 “선로를 베게로 베고 죽겠다” 각오
미키 부키치는 취임을 거부한 소고 신지에게 “너는 조국을 지키지 않고 도망가는 것인가. 그렇게 목숨을 아끼는 겁쟁이였던가?”(君は祖国を守らずに逃げるのか。そんなに命を惜しむ卑怯者であったのか)라고 다그쳤다. 소고 신지의 강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미키 부키치가 일부러 자극적인 말을 던진 것이다. 결국 소고 신지는 총재직을 수락했다. 그는 취임식에서 “선로를 베개로 베고 죽을 각오다”(線路を枕に討死する覚悟である)라고 다짐했다. 

엄청난 건설 비용(3000억엔)과 국회 반대에도 70대 노인 소고 신지는 전국을 순례하며 신칸센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그가 좋아했던 말(좌우명이기도 하다)이 하나 있다. 중국어로 ‘유파즈’(有法子). 만주철도 시절 중국에서 배운 말인데 ‘포기는 아직 이르다. 방법은 아직 있다’는 의미다. 

도카이도 신칸센

당시 전국 역장실에 소고 신지의 자필 ‘유파즈’(有法子)가 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노력 끝에 1959년 신칸센 기공식이 열렸고, 5년 뒤인 1964년 10월 1일(도쿄 올림픽 개최 9일 전) 도카이도 신칸센 개통식이 열렸다. 훗날 ‘유파즈’(有法子)는 소고 신지의 자서전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총리 폐막식 다음날 사의...아베 작은외할아버지가 새 총리 
그렇게 신칸센 개통 이벤트를 앞세우고 도쿄 올림픽이 열렸다. 그런데 당시 총리 이케다 하야토는 폐막식(10월 24일) 다음날 돌연 총리직 사임을 표명했다. 후두암 때문이다. 2주 뒤인 11월 9일, 이케다 하야토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사토의 장기 집권(61대-62대-63대 총리/ 재직시기 1964년 11월 9일~1972년 7월 6일) 시작이었다. 사토 에이사쿠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작은외할아버지’다.(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56-57대 전 총리의 친동생)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일본을 경제대국 무대에 올려놓은 이케다 하야토는 올림픽 이듬해인 1965년 8월 세상을 떠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