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한 줄 어록/ '모난 돌'이 되어라!
CEO 한 줄 어록/ '모난 돌'이 되어라!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09.25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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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堀場雅夫(호리바 마사오)
▶경력: 호리바(堀場:HORIBA) 제작소 사장, 회장
▶태생: 교토
▶나이: 1924~2015년

계측 분야 일군 일본 벤처기업의 선구자
<에디터 이재우>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차라리 모난 돌(직원)이 되어라”. 일본의 괴짜 경영자 호리바 마사오(堀場雅夫:1924~2015)가 상식적인 세계에 비상식적으로 내던진 말이다. 호리바 마사오는 일본 벤처기업의 선구자로 불린다. 대학 시절 벤처회사를 만들어 훗날 호리바제작소라는 계측분야 선두 기업을 일군 카리스마 경영자였다. 

그런 그는 경영철학, 사고방식, 스타일에서 일본의 여느 경영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하얀 꽁지머리’를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벤처기업가답게 자유로우면서도 튀는 옷을 선호했고, 늘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에너제틱했다. 

호리바제작소 창업자 고 호리바 마사오. photo=호리바제작소 페이스북

특히 그의 경영어록은 거의 독설에 가까웠다. 달리 말하면, 역발상의 대가였다. 『일 잘하는 사람 일 못하는 사람』(仕事ができる人,できない人), 『싫으면 관둬라!』(イヤならやめろ!), 『모난 돌이 되어라!』(出る杭になれ!) 등 비즈니스맨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준 경영서가 즐비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는 직장문화의 보수성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말이기도 하다. 다른 직원보다 더 튀려고 하거나, 더 잘난 체 하거나, 더 독단적인 행동을 할 경우 대개 보수적인 직장에선 곧바로 태클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일본의 직장 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대기업 경영자들의 경영철학 또한 비슷한 경향을 띤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덩치가 가벼운 벤처기업의 경우는 그런 보수성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벤처만의 색깔을 더 드러내 존재감을 알리는게 중요하다. 

괴짜 경영자 호리바 마사오는 '역설의 대가'였다. photo=호리바제작소 페이스북

역설적, 비상식적 어록으로 비즈니스맨들에 유명
호리바 마사오 역시 그런 전략을 택했다. 그는 거기서 더 나아갔다. 훨씬 더 튀었고, 훨씬 더 ‘모났다’. 그의 벤처 특성을 잘 드러난 책이  『모난 돌이 되어라!』이다. 리츠메이칸대학 경영학부 모리야 타카시(守屋貴司) 교수는 호리바 마사오의 이런 스타일과 관련해 “호리바 마사오의 비즈니즈 서적이 인기를 끈 비결은 ‘역설의 진리’에 있다”고 평가했다. 호리바 마사오는 왜 ‘모난 돌(직원)’이 되라‘고 했을까. 그가 책에서 밝힌 일화는 다음과 같다. 

<일찍이 내 뜻을 거슬러 마음대로 신제품 개발을 추진한 직원이 있었다. 그는 호흡을 측정하고 심폐 기능을 검사하는 의료기술을 응용하여, 자동차 배기가스를 측정하는 기계 연구를 무단으로 실시했다. 그 연구는 통산성(경제산업성)이 우리 회사에 타진해 왔었는데, 내가 딱 잘라 거절한 ’과제‘였다. 그래서 내가 격노해 시말서를 쓰라고 했더니 그 직원은 “화내지 마십시오. 몇 대가 팔리고 있습니다”라며 반박했다. 이 '모난 돌' 같은 인재가 개발한 배기가스 측정기는 그후 우리 회사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주력 상품이 되었다. 회사에 필요한 것은 이런 ‘모난 돌’이다. 그는 나중에 내 뒤를 이어 호리바제작소의 사장이 되었다.>

호리바제작소(HORIBA)는 일본 계측 분야의 선두주자다. photo=호리바제작소 페이스북

카리스마 경영자였지만 ‘50세 정년’ 약속 지켜
호리바 마사오는 카리스마 스타일의 원맨 경영자였지만, 스스로 내뱉은 약속을 지켰다. ‘사장 50대 정년’이다. “장기집권을 하면 추종자들이 생깁니다. 하물며 창업자인 내게 ‘그만두면 어떻겠느냐’고 의향을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맨 사장’의 목을 자르는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된 겁니다.” (1992년 10월 31일자 아사히 신문 인터뷰)

원맨 사장의 폐해를 걱정했던 그는 1978년 53세 때 사장에서 퇴임, 회장으로 깨끗하게 물러났다. 3년이 더 지체된 건 당시 오일 쇼크 때문이었다. 그는 은퇴 후엔 최고 고문으로 일했다.

모노즈쿠리(もの造り)를 강조하는 교토기업 호리바제작소는 전후 일본에서 최초로 성공한 벤처기업이다. 분석 계측(자동차, 환경프로세스, 의료용,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특히 자동차 배기가스 측정기 부문은 세계 시장 80%를 점유하고 있다. 

1924년 교토에서 태어난 호리바 마사오는 교토대학 물리학과 재학 중 작은 상가에 ‘호리바 무선연구소’를 창업했다(1945년 10월). 일본 최초로 유리 전극식 산성도 측정기(pH미터)를 개발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키웠다. 1953년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현재의 ‘호리바제작소’의 문을 열었다. 

'호리바마사오상'(堀場雅夫賞) 시상식 장면. 계측 기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낸 연구자에게 수여된다. photo=호리바제작소 페이스북

‘재미있고 즐겁게’를 사훈으로...“하고 싶은 걸 하세요”
호리바 마사오는 물리학도였지만 학문 열정이 대단했다. 의학 공부에 도전, 1961년 의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당시 쓴 혈액분석 박사학위 논문은 제품 구상으로 이어졌다. 1997년엔 ‘블랙 잭 프로젝트’라는 독특한 제도를 통해 업무 효율성, 비용 절감, 인재 육성, 조직력 강화를 이뤄냈다. 

호리바제작소는 직원들을 ‘호리비안’(전 세계적으로 8000명)으로 부른다. 회사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가장 잘 드러난 게 바로 사훈이다. 호리바 마사오는 ‘재미있고 즐겁게’(おもしろおかしく:Joy and Fun)라는 독특한 사훈을 내걸고 즐거운 직장을 지향했고, 그의 사후에도 그 사훈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호리바 마사오는 2015년 7월, 간세포암으로 별세했다.(당시 91세) 2003년 호리바제작소는 계측 기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낸 연구자에게 ‘호리바 마사오상’(堀場雅夫賞)을 제정해 수여해 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호리바 마사오의 인생을 관통한 인터뷰 하나를 소개한다. 

“인생은 한 번뿐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십시오. 당신은 어쩌면 내일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사세요.”(2009년 벤처통신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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