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SriLanka Talk/ 복권 한 장에도 행복한 그들
김성진의 SriLanka Talk/ 복권 한 장에도 행복한 그들
  • 김성진 작가
  • 승인 2021.09.12 2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리랑카의 복권 판매상인. 

<스리랑카=김성진 작가>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복권 사기를 좋아한다. 거액에 당첨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재미 삼아 복권을 사러 가는 사람도 있지만, 복권에 당첨된 거주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받았다는 헛소문이 돌고 난 뒤부터 복권에 관한 관심은 더 많아졌다. 

한국은 현행법상 복권에 당첨된 거주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는 사례가 없다. 그런데도 한국의 법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외국인들은 주말만 되면 복권을 파는 가게로 모여든다. 특히 당첨자가 많이 나온 ‘복권 명당’이라 불리는 매점 앞에는 복권을 사기 위해 한국인과 섞여 길게 줄지어 늘어선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시작됐다는 복권
복권(福券, 영어: Lottery)은 조세 저항 없이 구매자들로부터 쉽게 재원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주로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발행한다. 복권의 발행 역사는 길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있었는데 도시 정비, 교회, 학교건립 등 공공사업의 재원 마련을 위해서 복권을 발행하기도 했고 네로 황제와 같은 ‘못된 황제’들은 황실의 사치 비용을 마련하는 도구로 쓰기도 했다. 

2차 대전 중 러시아는 전쟁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복권을 발행하였다고 하며, 한국은 런던 올림픽(1948년)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으로 ‘올림픽 복권’을 판매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미국의 하버드 대학 기숙사 건축비도 복권발행으로 조달되었다. 

깔끔한 복권판매소?. 시장 입구, 버스정류장(아래 사진) 등 허름한 임시 판매소가 대부분이다. 

이곳 스리랑카도 여러 종류의 복권을 발행하는데 국립복권위원회(NLB)라고 하는 정부 기관에서 관장한다. 복권의 수익금은 대개 사회기반시설 확충, 공공안전, 공공보건, 교육과 같은 공공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리고 복지 사회 구현과 문화 예술 분야의 진흥기금으로 제공한다. 

최근에는 COVID-19 팬데믹에 따른 의료 시설 및 사회 보장 기금, 장애아동이나 고아를 위한 특별교부금 마련, 콜롬보 국립 병원의 COVID-19 예방 및 정형외과 의료 장비를 구매하는데 제공했고 일부 금액은 코로나 백신을 사들이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행복한 '복권 아저씨'

최고 당첨금은 한화 1100만원...5년치 평균 월급
복권을 사는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복권 수익금의 사용처와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들의 관심은 혹시 가난한 환경을 벗어나게 해줄 수도 있는 큰 당첨 금액일 뿐이다. 힘겨운 현실의 탈출구이자 지루한 일상의 한 줄기 희망이다. 팔자를 고치고 싶은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복권은 사람들에게 ‘일확천금’이란 공허한 꿈을 꾸게 하며 현실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현실에서 벗어나 도망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되묻고 싶다. 

심지어 기차에서도 복권 판매상이 짠~하고 나타난다.

스리랑카는 매일 저녁 아홉 시 복권 추첨을 하고 국영방송에서 중계한다. 매일 판매하니 매일 매일 복권을 살 수 있고, 매일 저녁 텔레비전 앞에 모인 사람들은 설레며 행복하다. 오늘 안되면 내일이 있으니까 행복하다. 복권 한 장에 20루피이다. 한국 돈으로 따지면 120원이 채 안 된다. 

그리고 최고 당첨금은 보통 2백만 루피(현재 환율로 한화 1100만원)다. 이 사람들의 한 달 평균 임금이 3만5000 루피니까, 당첨금이 한 5년 치 월급 정도 된다. 한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수십억, 어떤 때는 수백억에 달하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당첨금이 아니다. 팔자를 고칠만한 금액이 아니다. 

부자들은 복권 사지 않아...판매상인, 부자동네 접근 금지
스리랑카 정부는 신체나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는 가구에 복권 판매권을 주었다. 일종의 사회복지 차원의 배려이다. 그런데 복권 판매를 위한 근사한 부스를 제공하지 않아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버스정류장 옆, 시장 입구 임시 건물에서 판매하기도 하고 자전거, 수레 등을 이용하여 돌아다니면서 팔기도 한다. 버스나 기차간에 나타남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차림새가 추레하다. 가난한 사람 그대로의 모습이다. 

부자 동네에 복권 판매상들은 얼씬도 못한다. 
철조망까지 두른 부잣집.

스리랑카 부자들은 복권을 사지 않는다. 아니 살 기회가 없다. 그들은 복권을 파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다. 대부분 부자는 자가용을 가지고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시장보다는 서구화된 대형마트에서 먹거리, 쓸거리를 사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높은 담을 쌓고 그 위에다 철조망을 두르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복권을 파는 자전거나 수레는 아예 접근할 수가 없다. 동네 입구부터 경비원 아저씨가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그 동네 사는 부자들은 대부분 정부의 관료들이나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과 그들의 친인척들이다. 이들에게는 복권의 수익금으로 배분되는 사회복지나 문화 혜택, 코로나 예방 관련 혜택을 주지 않아야 마땅하다. 복권을 사지도 않았고 평소 복권에 관해서 관심이 없었고 자의든 타의든 복권판매자를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얄밉게도 일찌감치 백신을 접종했고 요즘같이 코로나가 심할 때는 집 밖으로 절대로 나서질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두려운지 복권을 파는 사람처럼 가난한 이들이 무서운지 모를 일이다.

→<김성진 작가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센터를 10년 간 운영했다.△ 2018년 스리랑카로 건너 와 페라데니아 대학(university of peradeniya) 대학원에서 사회학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스리랑카 수도 외곽 호칸다라 사우스(Hokandara South)에 거주하다 지금은 나왈라(Nawala) 지역에 살고 있다. “인권, 노동뿐 아니라 스리랑카 문화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여기서 공부를 더하고 싶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