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SriLanka Talk/ 어느 뱁새의 허영심
김성진의 SriLanka Talk/ 어느 뱁새의 허영심
  • 김성진 작가
  • 승인 2021.09.23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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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부터 손주들까지. 기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 걸까. 

스리랑카에 거주하는 김성진 작가가 ‘김성진의 SriLanka Talk’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센터를 10년 간 운영했습니다. 2018년 스리랑카로 건너 와 페라데니아 대학(university of peradeniya) 대학원에서 사회학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스리랑카 수도 외곽 호칸다라 사우스(Hokandara South)에 거주하다 지금은 나왈라(Nawala) 지역에 살고 있는 김 작가는 “인권, 노동뿐 아니라 스리랑카 문화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며 “기회가 되면 여기서 공부를 더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습니다.<편집자주>

한국에서 10년 일한 스리랑카 친구를 바라보며...
가끔 이스라엘에서 전화가 걸려 온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인연이 있어 알고 지내던 스리랑카 친구인데 얼마 전 러시아에 있다더니 지금은 이스라엘로 거처를 옮겼나 보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최장 4년 10개월이 한국 정부로부터 허락된, 일할 수 있는 기간이다. 같은 업종에 숙련된 일꾼을 구하기 힘들 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꺼리는 직종인 일자리의 회사 사장님들은 그다지 하자가 없는 외국인들과는 같은 기간으로 대부분 재계약을 희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재계약을 맺은 외국인들은 합하여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필자와 스리랑카 친구들.

성격도 좋고 성실했던 이 친구도 10년 동안 일을 하여 스리랑카에서는 만질 수 없는 거금을 모아 귀국을 했다. 집도 새로 짓고 멋진 승용차도 장만하였다며 사진을 보여주곤 했다. 잘 사는 줄 알았다. 한국에서 고생하며 일한 대가를 넉넉히 치르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까지였다.

사람은 남에게 보이는 자신의 체면을 더 크고 힘있게 보이려고 겉치레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적당하여 감당할 수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할 때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듣게 되며, 몸이 작아 다리가 짧은 뱁새가 자기보다 덩치가 열 배나 큰 황새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려 한다는 조롱을 받게 된다.

필자도 뱁새처럼 황새를 따라가는 어리석음을 겪지 않으려고 늘 마음에 새기는 말이 있다. 동양의 고전인 명심보감에 나오는 ‘知足可樂 務貪則憂’(지족가락 무탐칙우). 즉슨 “족할 줄 알면 가히 즐거울 것이요, 탐욕에 힘쓰면 곧 근심이 있느니라”라는 격언이다. 그저 나의 분수를 알아 편안하게 마음먹고 살고 싶은 것이다. 일부러 근심을 만들 이유는 없지 않은가?

입을 굳게 다문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그의 '노고'가 읽혀진다.

비싼 차에 상가 분양...이를 메우려 거액 대출까지
다시 이스라엘에 사는 그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자. 한국에서 일하여 돈을 많이 벌었고 성공하였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는 지나치게 큰 집을 짓고 게다가 자기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싼 자동차를 사들였다. 그야말로 부자 흉내를 내었다. 거기다가 더해 새로 짓는 버스터미널 상가까지 턱도 없이 비싼 가격에 분양받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벌어온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은행에 손을 벌려 거액의 대출금까지 끌어들였다고 하니 그의 능력으로는 감당이 어려웠지 않았을까. 

맨발이 이상하게 보이나요?

미국의 계몽주의자이자 정치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 흉내를 내는 것은 개구리가 황소처럼 보이려고 배를 부풀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 과시는 거지가 구걸하는 소리만큼 시끄럽고 훨씬 뻔뻔하기까지 하다”. 과시는 ‘열등감의 발로’라고 한다. 그 친구는 왜 그토록 열등감에 휩싸여서 허영심을 자제하지 못하였을까? 

보조개 소녀는 무슨 꿈을 꾸며 살고 있을까?

급기야 그는 파산하여 무일푼이 되고 말았다. 스리랑카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한국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무위로 그치고, 한국살이 하는 동안 10년 가까이 떨어져 살던 가족을 다시 뒤로하고 러시아로 떠나갔다. 욕심에서 비롯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허영과 과시의 결과였다.

가난해도 마음이 건강한 뱁새가 차라리 낫다
나를 아는 스리랑카 친구들은 자주 안부를 묻는 연락을 하곤 하는데 말을 맺는 끝자리에는 주저주저하며 부끄럽게 “한국에 다시 갈 수 없어요?”라고 물어온다. 가슴이 아리게 저려온다. 필시 무슨 변고가 났을 것이다. 

천국을 닮은 아이의 눈. 

주로 황새들이 사는 동네로 이사 온 나는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다니는데 빼꼼히 열린 육중한 대문 사이로 보이는 고급승용차를 보고 깜짝 놀라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흔히 아는 벤츠나 비엠더블유, 아우디 그런 차종이 아니다. 차종은 잘 몰라도 무슨 화살표가 달린 차도 보이고 어지간한 집채만 한 차도 있다. 그런 종류의 자동차가 집집이 한두 대가 아니다.

대문은 넘어야 할 벽이지만, 넘는 순간 경계의 벽이 되기도 한다.

답답해서 한 소리 해보련다. 친구들아~ 우리는 뱁새다. 절대로 황새를 따라 하지 말자. 불공평하고 의리 없는 자본주의 세상에 태어난 뱁새란다. 일 년 내내 허리가 휘도록 일해도 그들의 대문 안에 있는 자동차 문짝 하나라도 살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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