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경제학㊻/ 닛카쓰의 액션과 성의 혁명
일본 영화 경제학㊻/ 닛카쓰의 액션과 성의 혁명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1.10.06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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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바야시 아키라.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1950년대 이른바 ‘태양족’(타이요조쿠, 太陽族) 영화로 일본영화 황금기에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었던 닛카쓰(日活)는 1960년대 역시 폭력과 무절제, 섹스가 난무하는 영화들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1971년 한 차례 제작이 중지되는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이른바 ‘로망 포르노’(ロマンポルノ) 이후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다른 영화사들과 달리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1960년대 닛카쓰를 대표하는 ‘닛카쓰 액션’과 스크린 상의 ‘성(性)의 혁명’ 때문이었다. 

1960년대의 세계사가 프랑스와 한국 등에서 정치적 혁명이 일어났다면 닛카쓰의 새로운 시도들은 스크린을 통한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경쟁사였던 도에이(東映)가 ‘찬바라’영화(チャンバラ, 닌자 사무라이 등의 칼싸움이 등장하는 협객영화)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었던 반면 닛카쓰는 초반에는 개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따라서 닛카쓰가 주목한 것은 프로그램 픽처(プログラムピクチャー)계에서 B급 영화를 만들고 있는 무림의 고수들을 영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무국적(無國籍)액션 혹은 무드 액션(ムードアクション)을 창조해 내고 로망 포르노의 원조격인 영화들을 통한 성의 혁명이라는 결과물들을 내놓게 된다.

▲현대를 긍정적으로 인식
사실 1960년대 일본은 혼란기 자체였다. 경제적으로는 급속한 성장을 가져오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패전국’이라는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쟁 이후의 현대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측과 부정적으로 보는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특히 미군정시절 성적 평등을 드러낸다고 남녀 간 애정 행위를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것 역시 권장 되었는데 기성세대(戰前世代)들에게는 흔한 키스 장면조차 ‘서구식 퇴폐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을 정도였으니 당연히 의협(義俠)영화가 대유행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미군정 시절 서구식민주주의를 옹호했던 제작자나 감독이 종종 아시아에서 일본의 군사적 팽창주의를 미화했던 사람들이 많았기에 미국식 생활방식에 대한 반작용으로 공산주의 혹은 공산당이 성장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닛카쓰는 1960년대 전반을 거치면서 전쟁 이후의 현대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할리우드의 서부극, 프랑스의 누벨바그, 이탈리아의 네오 레알리즘 등을 차용하여 일본식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따라서 ‘쇼치쿠 누벨바그’에 비교하여 ‘닛카쓰 누벨바그’로 부르는 평론가들도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러한 닛카쓰의 경향은 한국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만주 서부극’ 같은 영화들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기타를 멘 철새’(1959)

▲무국적 액션영화와 ‘철새’시리즈
무국적 액션영화라는 수식어가 생겨난 것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할리우드 웨스턴 혹은 이탈리아의 마카로니 웨스턴이나 프랑스의 누벨바그, 이탈리아의 네오 레알리즘을 노골적으로 차용하면서도 배경은 ‘일본’으로 하였기에 생겨난 말이다. 서부극의 무대는 홋카이도(北海道)나 아소산(阿蘇山) 같은 시골, 갱 영화들은 고베(神戸)나 요코하마(横浜) 등 국제적 무역항이 주요 무대로 쓰였다. 

시조 격인 에자키 미오(江崎実生), 와세다대학교 출신의 실력파 사이토 부이치(斎藤武市), 훗날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로 유명해진 마스다 도시오(舛田利雄), 태양족의 계승자 구라하라 고레요시(蔵原惟繕), 장인 기질의 나카하시 야스시(中平康) 등이 적극적으로 무국적 액션영화를 지지하고 만들었다. 이들의 영화는 서부극, 네오레알리즘, 누벨바그 등 서구의 영화 스타일을 자유롭게 끌어들여 기묘한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영화 ‘대초원의 철새’(1960)

이들의 영화는 일본을 무대로 하면서도, 일본 같지 않은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젊은이들은 당연히 열광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무국적 액션영화는 오리엔탈 누와르의 원조격인 홍콩과 합작하고 한국에서 리메이크되면서 아시아 지역 영화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중에서 ‘철새’(渡り鳥)시리즈는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과거 형사였던 주인공 타키(小林旭, 고바야시 아키라 분), 이제 기타 하나를 등에 메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도시의 뒷골목으로 흘러 들어 온 그는 자신의 싸움 실력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악당들과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야쿠자들과 갈등한다. 미모의 여인들이 등장하는 것은 양념이다. 

‘기타를 멘 철새’(ギタ?を持った渡り鳥, 1959)와 ‘대초원의 철새’(大草原の渡り鳥, 1960)에서 그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야쿠자들을 상대로 맨주먹과 총 한 자루로 응징한다.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기타와 노래로 시름을 달래는 타키는 방랑과 고독에 대해 카우보이처럼 노래한다. 시리즈에서 여주인공으로는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인 아사오카 루리코(浅丘ルリ子)가 등장하는데 이 역시 큰 화제를 모았다.

영화 ‘밤 안개여 오늘 밤도 감사'(1967)

무드액션(닛카쓰 B급 누와르)과 걸작들
닛카쓰의 간판이자 청춘스타였던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郎)는 청춘스타를 탈피하기 위해 ‘무드액션’ 영화에 출연하여 새로운 이미지 구축에 대성공한다. 에자키 미오(江崎實生)의 ‘밤 안개여 오늘 밤도 감사’(夜霧よ今夜も有難う, 1967)는 주제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무엇보다도 마이클 커티스(Michael Curtiz)의 걸작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 1942)를 번안하여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선원 사가라 토루(이시하라 유지로 분)는 연인인 기타 아키코(아사오카 루리코 분)와 고베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교통사고로 행방불명이 되었고 4년이 지나 토루는 요코하마에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밀항을 알선하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앞에 혁명가인 ‘구엔’(二谷英明, 니타니 히데아키 분)이 나타나 싱가포르로의 밀항을 의뢰하는데 아키코가 그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요코하마에서 그 두 사람을 밀항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시하라 유지로에 관객들은 열광했고 흥행에도 성공한다. 

배우 시시도 조(宍戸錠)

그 외에 ‘시시도 조’(宍戸錠)의 영화들이 닛카쓰 무드액션을 빛내 주었다. 그는 B급 액션영화의 거장 감독 스즈키 세이준(鈴木清順)의 페르소나로서 관객들은 ‘에이스 죠’(JOE THE ACE)라고 불렀다. ‘세계 제3의 총잡이’(世界第3のガンマン)라는 카피로 화제를 불러 일으킬 만큼 하드보일드 한 작품들에서 여러 종류의 총들을 난사하는 호쾌한 액션을 선보였다. 

스즈키 세이준의 ‘야수의 청춘’(野獣の青春 1963년)에서 폼생폼사의 캐릭터를 보여준 시시도 조는 온갖 총을 난사하면서도 술집에 가서 아가씨들과 고독한 듯 술잔을 기울이는 고독한 킬러의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빛나게 한 작품은 노무라 다카시(野村孝) 감독의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拳銃は俺のパスポート, 1967)다. 전형적인 닛카쓰 B급 누와르의 걸작 중 걸작으로 그는 웃지도 않고 언제나 냉정한 얼굴에 눈에 힘을 주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를 사랑하는 여인이 앞에 서도 무뚝뚝하기만 한 킬러로 등장한다. 

영화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1967)

경쾌한 음악, 휘파람 소리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모방했지만 주인공은 백발백중에 절대 총에 맞지 않는 총격전은 훗날 주윤발의 ‘영웅본색’ 시리즈에 지대한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총에 맞더라도 주인공은 그저 쿨하게 미소를 지으면 그만이다. 권총이 곧 ‘여권’(旅券, passport)이라는 제목에서 말해주듯 권총 한 자루로 어디든 가는 이 남자는 거칠 것이 없으며 여자보다 권총과 의리를 더 믿으며 자신을 지켜나가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다.

스즈키 세이준 감독

▲스즈키 세이준 그리고 스즈키 세이준
1954년 입사한 스즈키 세이준은 이른바 ‘닛카쓰 누벨바그’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자극적이고 비순응적인 상상력과 비도덕적인 성적(性的) 대담함과 폭력의 엘레지 그리고 B급 영화계의 대부 등 그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는 많다. 처음 닛카쓰에서 멜러드라마와 야쿠자영화들을 감독하였지만 ‘육체의 문’(肉体の門, Gate of Flesh, 1964)을 계기로 점차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화 ‘육체의 문’(1964)과 ‘작부 이야기’(1965)

이 영화는 스즈키 세이준의 페르소나인 노가와 유미코(野川由美子)가 등장하는 이른바 플래쉬 3부작(Flesh Trilogy)중 첫 번째 작품이다. 이후 ‘작부 이야기’(春婦傳: Story Of A Prostitute, 1965), ‘카와치 카르멘’(河内カルメン, Carmen from Kawachi, 1966)이 만들어 지면서 ‘여성영화’ 혹은 에로틱 영화의 서막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데 특히 대담한 성적 묘사와 모든 규칙을 무시한 연출로 주목을 받게 된다. 

‘육체의 문’은 시시도 조가 마초 근성의 태평양전쟁 참전용사로 등장하며 미국에 대한 패전으로 인한 원망으로 가득찬 인물군들과 미군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창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타무라 타이지로(田村泰二郎)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며 1948년, 1964년, 1977년, 1988년에 4번에 걸쳐 영화화 되었고 2008년에는 TV아사히(テレビ朝日)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배우 노가와 유미코와 영화  ‘카와치 카르멘’(1966)

스즈키 세이준은 빈약한 스토리라 할지라도 그걸 영상으로 보완할 줄 아는 스타일리스트였다. 특히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시대를 맞이하면서 그는 시각적 영역을 십분 활용하였다. 전과자, 킬러, 야쿠자, 형사, 탐정, 비행 청소년 등을 주인공으로 한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창조해 나갔다. 그러나 기이한 발상으로 영화인들의 우상이 되기는 했지만 자극적 원색 사용, 극단적 허무주의와 종말관, 극도의 클로즈업을 빈번하게 사용하고 회화(繪畵)화 된 기이한 살인장면 등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야쿠자 3부작’으로 불리는 ‘꽃과 성난 파도’(花と怒涛, 1964), ‘우리들의 피가 용서치 않는다’(俺たちの血が許さない, 1964), ‘문신일대’(刺青一代, 1965)중 ‘문신일대’와 ‘도쿄 방랑자’(東京流れ者, 1966), ‘살인의 낙인’(殺しの烙印, 1967)등이 당시 사장인 호리 큐사쿠(夢野久作)를 놀라게 해 “결코 관객이 이해 할 수 없다”는 선언과 함께 해고의 계기가 된다. 그는 이후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1977년 ‘슬픈 가을 이야기’(悲愁物語)를 연출 할 때까지 10년간의 강제적 휴지기를 가지게 된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와 성의 혁명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조감독 출신이었지만 영향을 받지 않은 눈에 띄는 젊은 영화인이 닛카쓰에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바로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1958년 그는 세 작품을 동시에 내놓으며 데뷔하는데 ‘니시 긴자 역 앞에서’(西銀座驛前, 1958), ‘도둑맞은 욕정’(盜まれた欲情, 1958), ‘끝없는 욕망’(果しなき欲望:, Endless Desire, 1958)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닛카쓰에서 주문 제작한 ‘니시 긴자 역 앞에서’를 자신의 영화로서 ‘부인’(否認)하는 동시에 다른 두 영화를 내놓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예고한다. 물론 당대의 뛰어난 촬영감독인 히메다 신사쿠(姫田真佐久, 일부 한국 번역서에는 히메다 마사히로로 표기됨)와 공동으로 창조해 낸 것이었으나 본인의 인터뷰 내용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인간 육체의 열등함과 일본의 일상적 현실의 끊임 없는 바탕이 되고 있는 사회구조의 열등함을 결합’시킨 문제작들을 내놓게 된다. 사실 그의 영화는 이른바 닛카쓰의 훗날 ‘로망 포르노’ 계열의 영화에도 영감을 준 작품들이 많다.

닛카쓰의 대중 영합적 노선에 의하면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를 상업영화와 오락영화에 기용해 ‘시리즈 물’을 만들되 뮤지컬, 로맨스, 갱스터, 서부극(웨스턴) 등 서구 장르 영화들을 뒤섞어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런 닛카쓰의 상업적 공식에서 벗어나 성의 혁명을 꾀했다는 점이다. 영화윤리위원회의 엄격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성행위를 마치 밥 먹는 것이나 숨 쉬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묘사하면서 사회적 메시지도 담고자 했다. 

영화 ‘일본곤충기’(1963)

‘일본곤충기’(につぽん昆蟲記, 1963)는 걸작 예술영화이지만 초기 로망 포르노(eroduction, 에로덕션) 장르에 큰 영향을 끼쳐 널리 인용됐다. 잡초 같은 여주인공(左幸子, 히다리 사치코 분)이 가난한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도쿄로 상경 한 후 일개 창녀에서 포주가 되기 까지의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미, 일 안보조약 반대 시위’ 같은 실제 사건을 삽입함으로써 그녀의 이야기를 역사적 맥락 안에 매치 시킨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정사 씬들로 인해 큰 화제를 낳았으며 히다리 사치코가 제1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여자연기자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1950년대 닛카쓰가 ‘해녀 영화’들을 내놓으면서 발굴한 ‘육체파 여배우’들을 활용할 좋은 기회라는 기대와 달리 ‘니혼 타테’(二本館, 2편 동시 상영), ‘산본타테’(三本館, 3편 동시 상영)프로그램에 채우기에는 너무나도 ‘예술성’과 ‘실험성’이 강한 그의 이후 영화들로 말미암아 역시 닛카쓰를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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