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역사와 만나다...한 추억극장의 뜻깊은 행사
한국영화의 역사와 만나다...한 추억극장의 뜻깊은 행사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10.10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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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림극장서 정종화 영화연구가 포스터 전시회
극장측, 행사 마치고 정 연구가 팔순 생일 잔치 마련
인천 미림극장에서 영화 포스터 전시회를 열고 있는 정종화 영화연구가.

<에디터 이재우> 한글날인 9일 오후 2시, 인천시 동구 송현동 미림극장. 영화관에 속속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영화 관객들이 아니라 특별한 행사 때문이다. 1957년 천막극장에서 무성영화 상영을 시작으로 오픈한 미림극장은 지방극장의 침체 속에서도 살아남아 실버전용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인천 영화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미림극장에선 ‘다시 극장, 在: 미림전-낭만의 시대’라는 테마로 영화 포스터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정종화 영화연구가 겸 영화평론가가 평생 수집한 포스터 일부가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것.

‘충무로 영화박사’, ‘움직이는 영화 사전’으로 불리는 정 연구가는 충무로 영화계의 산증인이다. 자신의 책 이름이기도 한 그야말로 ‘영화에 미친 남자’다. 한국과 세계 영화 포스터 시리즈집 등 저작이 수십 종이다. 

자신이 출연하기도 했던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포스터 앞에 선 정종화 영화연구가.

정 연구가는 1953년 부산 피난 시절부터 포스터를 모았다. 영화 ‘역마차’가 그 시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 강대진 감독의 ‘마부’ 포스터를 가장 좋아한다. 그런 수집벽은 포스터 전시회로 이어졌다. 

“1986년 서울 퇴계로 3가 충무로 지하철역 로비에서 영화포스터 전시회를 처음 열었죠. 우리나라에서 최초였어요. 지금 여기 인천 미림극장까지 합친다면, 글쎄요 120~130회가 넘겠죠.”

정 연구가는 매달 한 차례 미림극장에서 영화팬들을 대상으로 영화강의(시네마 데카메론)를 하고 있다. 서울에서 전철로 1시간 반 넘게 걸리는 거리지만,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미림극장의 최현준 대표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정 연구가의 글을 보고 연락한 그 인연이 벌써 만 4년이다. 

관객들에게 포스터와 관련된 영화 이야기를 풀어놓는 정종화 영화연구가.

영화 강의 참석자들은 중장년층부터 20대 대학생들까지 다양하다. 코로나 방역차원에서 참가 인원은 한정적 일 수밖에 없다. 영화강의에 자주 참석한다는 한 관객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놀랐어요. 영화 개봉연도와 날짜, 심지어 관객수까지 묻자마자 바로 답이 술술 나오는데 말이죠. 게다가 캐스팅 비화, 배우(조연 등) 뒷얘기 등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차고 넘칩니다.” 

정종화 연구가의 영화강의는 극장측에서 유튜브로 제작해 온라인에 올린다. 극장을 찾지 못하는 영화팬들이라면, 유튜브를 이용해도 재밌는 전 세계 영화사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정 연구가가 1시간 가량 전시회 포스터 설명의 시간을 갖는 동안, 극장측 스태프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곤, 전시회 한쪽에 작은 자리가 마련됐다. 정 연구가의 팔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관객들과 축하객들이 공간을 빙 둘러싸고, 정 연구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포스터 전시회 도중 극장측에서 정종화 영화연구가의 팔순 생일 자리를 마련했다. 

“전시회에 이어 팔순 생일까지 극장측(최현준 대표)이 마련해 줘 너무 고맙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과 함께 얼굴을 마주하니 더 젊어지는 기분입니다. 되돌아보면, 남들에겐 그저 영화 홍보 종잇조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제게 영화 포스터는 ‘목숨’과도 같았습니다. 심한 말로 ‘충무로의 넝마주이’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한 장 한 장 모았습니다. 그 한 장 한 장이 모여 한국영화의 역사로 남았습니다. 이렇게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는 것이죠.” 

단성사 영화 역사관, 예술의전당 한국영화 100주년 포스터전 등 크고 작은 전시회에서 포스터를 선보였지만, 정 연구가는 오히려 작은 공간이 더 애착이 간다고 했다.

“어렵게 영화공간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미림극장의 경우,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영화팬 한 사람 한 사람과 직접 만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거리가 얼마나 멀든, 장소가 어디든 영화를 사랑하는 참가자 단 한 사람만 오더라도 영화강의를 이어갈 겁니다.”

주인공이나, 참석자들이나 꼬리에 꼬리를 문 영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모두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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