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오징어 게임’이 한류가 되려면?
생생 미국 리포트/ ‘오징어 게임’이 한류가 되려면?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1.10.12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계 미국인 코미디언 ‘영미 메이어’가 자막 문제 제기
고질적인 엉터리 자막부터 바꿔야 '한류 세계화'로 이어져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며칠 전은 한글날이었다. 미국에서 맞는 한글날은 아무런 감흥이 없기 마련이다. 그건 대한민국의 국경일이기 때문이고 이곳 미국에서는 그냥 평범한 날 중 한 날이다. 그런데 올해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건 바로 넷플릭스(Netflix)의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Squid Game) 때문이다. 

한국 언론들은 지금 이 웹 드라마의 흥행에 고무되어 기사를 쓰기에 바쁘다. 물론 이곳 미국에서도 그 인기는 대단하다. 그러나 기사를 검색해 보면 의외로 ‘번역의 오류’, ‘번역의 난해함’ 같은 기사들이 가장 많다. 드라마가 엄청 재미있지만 ‘영어자막’(subtitle)이 정확하지 않기에 안타깝다(be regrettable)는 반응이 많다.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한국계 미국인 코미디언인 ‘영미 메이어’(Youngmi Mayer)다. 그녀는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인스타그램(Instagram)과 틱톡(Tik Tok)으로 활발한 소통을 하는데 그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국어 고수’들이 자막을 다시 번역하는 서비스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흥행
당초 ‘오징어 게임’은 한국에서였으면 절대로 제작하기 힘든 콘텐츠였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10년간 보류된 이 프로젝트를 선택하여 제작했다. 넷플릭스의 원칙은 투자 후에는 현장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이전 넷플릭스가 투자한 한국 콘텐츠들이 냉정하게 별로 재미를 못 봤다는 사실이다. 

물론 ‘킹덤’ 같은 화제작도 있었지만 현장 간섭을 최대한 하지 않는 넷플릭스의 원칙 때문에 ‘보건교사 안은영’, ‘스위트홈’, ‘차인표’ 같은 최악의 콘텐츠들이 제작되었는가 하면 ‘승리호’의 경우에는 200억 자본이 투입되었으나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펜데믹으로 인한 답답한 상황을 넷플릭스가 어느 정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의 팬 확대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맥주에 뭔가를 타서 마시는 유행 역시 한국 드라마의 영향이다. 

한국계 미국인 코미디언 ‘영미 메이어’(Youngmi Mayer)의 틱톡. '오징어게임' 영어 자막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의 흥행은 분명 ‘준비되지 않은 흥행’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과거 ‘기생충’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 하기 위한 ‘로비전’을 벌였는데 이 결과는 그대로 흥행으로 이어졌다. 결국 ‘준비된 흥행’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정작 한인사회에서는 공감을 얻지 못했다. ‘미나리’ 역시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이라는 화제를 몰고 왔지만 작품성에 있어서는 호불호가 갈렸다. 사실 기획자들에게 있어서 ‘흥행’은 어느 정도 예감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오징어 게임’은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부정확한 자막에 의존
딴지를 걸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정확한 자막’으로 인해 현지인들은 어떤 경우 ‘구글번역기’ 수준 보다 못한 자막으로 인해 그 재미를 반감시켰다고 말한다. 사실 구글번역기의 경우 가장 정확한 번역은 ‘일본어’이다. 19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일본의 ‘로망 포르노’(日活ロマンポルノ)의 인기로 웬만한 외국인들은 비교적 정확한(?) 일본어의 뜻을 알고 있다. 심지어 이 영화들에서 육체파 여배우들이 자주 울면서 반복하는 ‘야다’(嫌[いや]だ, 싫어!), ‘하나시테’(はなす, 놓아줘!), ‘야메테’(やめる, 하지마!) 같은 대사와 ‘가와이’(かわいい, 귀여워)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AI가 정확한 뜻으로 친절하게 번역을 해 준다. 

하지만 한글은 그렇지 못하다. 콘텐츠를 많이 접할수록 번역기 입력이 정확해지는데 이마저도 많이 빈약했던 탓이다. 필자 역시 이번에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성의 없는 자막에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외국인들이 영어자막에 의존할 경우 아주 심각한 ‘한국어 학습’이 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단어인 오빠를 ‘old man’으로 번역했다(최근에 옥스퍼드 사전에도 원어 그대로 기재됨)거나 아주머니를 ‘grandma’로 번역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오징어 게임'을 만든 황동혁 감독

사실 ‘오빠’는 동남아시아에서는 고유명사화 된 지 오래다. 다만 한국 여자들의 대화 속에서 자기 남편에게 ‘오빠’나 ‘oo아빠’가 동시에 쓰이는 경우에 관해서 헷갈려 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부정확한 번역은 때로 몇몇 장면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반면 서로 한편을 뜻하는 깐부의 경우 영어로 ‘partner’, ‘one team’ 같은 익숙한 단어 대신에 ‘Gganbu’라고 한글을 소리 나는 그대로 옮겨 수많은 질문을 낳았는가 하면 게임에서 짝이 안 맞아 생존한 ‘깍뚜기’의 경우에는 ‘remnant’ 같은 단어로도 의미 전달이 충분했음에도 ‘the weakest link(약한 고리)’라는 모호한 자막을 달았다. 

‘달고나’도 마찬가지다. ‘Sugar Honneycomb(설탕 벌집)’라는 모호한 자막이 등장하는데 이건 아마존(AMAZON)에서 ‘추억의 달고나 뽑기 세트’를 구입하려는 외국인들을 대혼란에 빠트린다. 아마존에는 친절하게 ‘Dalgona - Korean Sugar Candy Cookies’ 혹은 ‘Dalgona Korean Squid Game Sugar Candy Cookies’로 검색된다. 그냥 ‘Dalgona’나 ‘Korean Sugar candy’만 입력해도 뜨는데도 말이다. 

▲익숙한 콘텐츠
‘오징어 게임’의 가장 큰 흥행요인 중 하나는 ‘장르’다. 그 이전에도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유행하는 소재는 ‘데스 게임’(death game)이다. 기타노 다케시(北野武)의 베틀로얄(Battle Royal) 시리즈, 토다 에리카(戸田恵梨香)의 ‘라이어 게임’(Liar game)등과 최근에 세계적으로 흥행한 ‘아리스 인 보더랜드’(Alice in Boderland, 2020)까지 일본의 서바이벌 드라마들과 애니메이션 등이 친숙해졌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부담 없이 ‘오징어 게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생존 방식이 한국의 고유 게임들이었고 정작 (극중에서 아이들이 재현한)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은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여졌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역시 곳곳에서 패러디되고 있기도 하다. 익숙한 장르이지만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게임들이 등장하는 까닭이다. 

필자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 많이 오버랩 되었는데 순전히 한국인의 관점이고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하고 신기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도 종종 스마트 폰으로 몰래 ‘오징어 게임’을 보는 경우가 많아서 주로 학교를 중심으로 이슈화되고 있다. 달고나를 ‘아마존’에서 구매하여 만들다가 실패한 경우들이 등장하고 한국계 학생들에게 ‘달고나’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익숙한 장르였지만 너무나도 생소하고 신박한 게임들이 좋은 반응을 얻어낸 것이다.

“Do you know BTS?”
이러한 좋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의 흥행이 곧바로 한류의 확장이 되리라고 예측하기에는 어렵다. 필자가 맨 처음 미국에 왔던 1990년에도 미국인들은 ‘HUNDAI’는 알고 있었지만 정작 ‘KOREA’는 몰랐다. 실제로 지금의 미국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BTS’는 알지만 ‘KOREA’는 여전히 생소하다. 종종 한국에 계약한 외국인 프로야구 선수들이 ‘한국은 전쟁이 날까 두려워 망설여졌다’는 말을 토로하는 것처럼 아직까지 생소한 나라다. 심지어 ‘SOUTH KOREA’와 ‘NORTH KOREA’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치명적인 약점이 한국인들에게 있다. 그것은 바로 ‘영어 울렁증’이다. 코리아타운에 살고 있으면 1년 365일 영어를 몰라도 사는데 불편함이 없다. 여기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그런데 심지어 한국에서 방문하는 이들은 오죽하랴.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한국인들이 하는 가장 불편한 질문은 “Do you know BTS?”이다. 솔직히 한국인들은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외국인과 눈만 마주치면 뜬금없이 “Do you know BTS?”다. 영어는 서툴고 어색하기에 무의식적으로 던지는 질문이겠지만 외국인들은 의아해한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한류로 이어지려면 우선은 고질적인 엉터리 자막부터 바꾸고 국제사회에서 정치, 외교로는 아직도 변방인 ‘KOREA’가 어떤 나라이며 문화적 유산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부터 먼저 알려줄 필요가 있다. ‘한국문화원’이 미국에도 몇 곳 있지만 빈약한 컨텐츠와 K-POP 위주의 홍보, 외국인들은 별로 공감하지 못하는 영화나 드라마들을 일방적으로 상영하면서 ‘한류’의 세계화를 외친다는 그 자체가 모순처럼 느껴지는 것은 필자 한 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글로벌 문화전쟁에서 한국(KOREA)이야말로 본격적으로 ‘오징어 게임’에 초대 받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