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SriLanka Talk/ 오리엔탈리즘을 곱씹어보며...
김성진의 SriLanka Talk/ 오리엔탈리즘을 곱씹어보며...
  • 김성진 작가
  • 승인 2021.11.0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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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앞모습만 보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정작 중요한 건 우리의 뒷모습이다. 

<스리랑카=김성진 작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말이 있다. 팔레스타인 출신 사회학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가 집필한 책 제목이다. 필자의 대학원 시절 필독서여서 영문판을 더듬더듬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은 서구 유럽에서 제국주의가 발호하여 동양을 침략한 사상적 동기와 그들이 무자비하게 행했던 수탈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써 형성된 담론이다. 

서양 제국의 침략이 그래도 순기능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사이드의 이론에 대해 여러 가지 반대의 궤변을 늘어놓지만, 필자는 사이드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반론을 펴는 학자들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여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고 했던 정책은 나쁘지만, 도로와 철도, 공항 등 국가 기간 산업을 건설한 것은 대단하다는 것. 그러므로 한국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것. 최근 한국 정가에 논쟁거리가 되는 ‘518’ 빼고는 그래도 잘했다고 평가하는 어떤 정치인의 흰소리와 같은.

스리랑카는 여전히 어둠 속, 저편 미지의 세계다. 

‘오리엔탈리즘’은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세계, 즉 생소하고 이질적인 문화에 대하여 타자화(他者化)하는 태도를 보인다. 타자화라고 하는 말은 특정 대상을 자기와는 다른 존재로 보이게 만들어 분리하려는 모든 말과 행동, 사상, 결정 등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상대(他者)를 업신여겨 낮잡아 깔보는 총체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스리랑카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정신
한국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세계의 원조를 받던 수혜자의 위치에서 정부와 NGO를 통하여 세계 각국의 가난한 나라를 지원하고 후원하는 공여자로 자리바꿈한 지 오래다. 스리랑카에서도 우리 정부의 공식 해외 공여 기관인 KOICA와 세종학당 그리고 다수의 NGO, 종교단체 등이 공여자의 위치에서 각종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비좁은 레일 사이가 일터이자 삶터인 사람들.

스리랑카에는 식민지 시절 인도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라는 정신이 있다. 비폭력, 비협조 운동인데 식민지배자 영국에게 당하는 굴욕적인 모든 것에 비협조하자는 것이다. 자기 나라에 와서 자원을 수탈하며 자기들을 업신여기는 외국인 침략자들에게 동조하지 않겠다는 운동이다. ‘사티아그라하’ 운동에 영향을 받은 원주민 싱할러족들은 영국인들이 경영하는 홍차 농장에 일군으로서 일을 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홍차를 재배하여 유럽지역으로 실어 나르려 했던 침략자 영국은 이로 인해 막대한 차질을 빚었음은 물론이다.

최고의 선은 흐르는 물 같다고 했던가. 

이 지점에서 꼭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한국 사람은, 한국은 과연 어떤 태도로 스리랑카 사람들을 만나서 공여자로서의 역할을 할까? 혹시 이들을 낮추어보고 타자화(他者化)하려는 ‘우월과 열등’을 견지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지지는 않을까? 과거 400여 년 동안 겪었던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그림자를 한국인들에게서 느끼지 않을까? 오리엔탈리즘이 재생산된 모양으로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보이지는 않을까? 
세계적인 BTS의 명성, 영화 ‘기생충’의 성공 그리고 요즘 세상에서 제일 핫하다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같은 한류 무드에 젖어 거주국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오만방자하지는 않은지.

부자와 빈자를 가르고, 서양과 동양을 나누는 '경계'라는 이분법 

해외 우리 교민들의 여러 모습들을 바라보며...
2020년 봄 무렵 한국에 갑자기 밀어닥친 코로나 때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 와서 돈 잘 벌고 잘 지내던 외국인들은 한국 사회가 코로나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조짐을 보이자 조롱하며 떠나지 않았던가? 베트남에서 온 근로자, 유학생이 그랬고 중국에서 왔던 그토록 끈끈한 핏줄인 줄 알았던 우리 동포 조선족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다투어 한국을 떠나갔다. 여기 스리랑카 사람들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산업의 근간이 되는 부존자원이 빈약하고 아직 남과 북으로 분단된, 그러면서 욕심 많고 덩치 큰 중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이 잘되는 것을 못마땅히 여겨 사사건건 시비 거는 일본 사이에 끼여 사는 나라, 온 세계를 주도하고 싶은 강대국 미국까지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자칫 잘못하면 언제라도 중남미의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처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늘 여유가 있고, 늘 너그럽다. 그럼 우리는?

스리랑카에는 한국인이 대략 1천 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인근 서남아시아나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서 많은 숫자가 아니다. 많지 않은 숫자이지만 우리 교민들은 따로따로 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업 주재원 따로, 코이카와 같은 정부 파견기관 따로, 일부 단체들 따로. 거주국의 공관마저도 스리랑카에서 성공한 소위 잘나가는 인사들과 자주 어울리는 모습을 본다. 

한국에 일하러 와서 살던 외국인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도와주던 일을 하였던 필자는 여기에서도 한인사회를 이끄는 주류 멤버들보다 끼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추레하며 자신 없는 모습을 가진 교민이 더 눈에 들어온다. 스리랑카의 힘과 세력을 가진 정치인들보다 도시 외곽의 빈민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언제든,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싶은 우체통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는 “한민족의 인적자본의 네트워크화라는 차원에서 한인 이주민의 역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즉, 이주민이 단순히 해외에 머무는 동포가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화된 한민족의 유용한 자산으로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했다. 

인생살이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였다.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은 비록 자신 없이 추레한 모습으로 기웃대는 우리 교민이, 나중에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드높이는 큰 역할을 하며 나타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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