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한줄 어록/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CEO 한줄 어록/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1.11.29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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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후세 다카유키(布施孝之)
▶경력: 기린맥주 사장
▶태생: 지바현
▶생몰년도: 1960~2021

61세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한 기린맥주 사장
<에디터 이재우> 갑작스런 부음이었다. 사망 당일에도 아침부터 출근해 코로나 시대 회사의 장래에 대해서 사원들과 뜨거운 대화를 나눈 그였다. 그의 돌연 사망은 몸 담고 있는 회사는 물론, 라이벌 회사까지도 큰 충격을 줬다. 기린맥주의 후세 다카유키(布施孝之) 사장. 그는 지난 9월 1일 부정맥의 일종인 심실세동(心室細動)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한창 일할 61세였다. 

“겸허하고 상냥한 인품은 높은 자리로 갔어도 변함이 없었고, 일반 사원 사무실 중앙에 있는 사장실의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謙虚で気さくな人柄は立場が上になっても変わらず、一般社員のオフィスの中央にある社長室のドアは常に開いていた。)

마이니치신문은 후세 다카유키 사장의 인간됨을 이렇게 평가했다. NHK는 “명문부활을 완수한 주역”(名門復活を果たした立て役者だった)이라며 경영적 측면을 강조했다. 다카유키 사장은 치열한 맥주 업계의 점유율 싸움에서 실적이 침체했던 기린맥주를 11년 만에 선두로 올려 놓은 경영자였다. 그는 조직의 풍토를 바꾸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CEO였다. 

지난 9월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세 다카유키(布施孝之) 기린맥주 사장.

“쉬운 영업은 없다”...오사카의 기적 일궈내
마이니치신문은 “쉬운 영업은 한번도 경헌한 적이 없다”(楽な営業は一度も経験がない),  NHK는 “본사가 말하는 것은 듣지 말아라. 내가 (모든) 책임을 진다”(本社の言うことは聞くな。私が責任を取る)는 다카유키 사장의 과거 발언을 환기시켰다. 

후세 다카유키는 영업맨 출신 사장이었다. 그는 오사카 지사장 시절 ‘오사카의 기적’이라는 실적을 이뤄 본사가 라이벌 아사히맥주를 제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본사에 반기까지 들면서 아랫사람들을 챙기고 독려했던 그다. 기업 CEO치고 현장을 강조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지만, 영업맨 출신의 후세 다카유키는 유독 현장의 목소리를 중요시 했다. 

잘 되면 내탓, 못되면 남의 탓이라는 풍토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내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다카유키 사장의 말은 사망 이후에도 일본 비즈니스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지바 히가시고교를 나와 와세다대 상학부로 진학한 그가 기린맥주에 입사한 건 1982년이다. 고베 지점에 첫 배속됐다. 당시 기린맥주는 6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사히맥주와 비교하면 압도적이었다. 후세 다카유키가 처음 영업맨으로 나선 건 하치오지(八王子)지점으로 이동한 1989년 가을이었다. 

 

후세 다카유키 사장은 영업맨 출신으로 그 누구보다 현장을 중요시했다. 

기린의 ‘이치방 시보리’vs 아사히 ‘수퍼드라이’
그 이전부터 아사히맥주의 약진이 심상찮았다. 1987년 3월 내놓은 수퍼드라이가 대히트를 치면서다. 수세에 몰린 기린맥주는 1990년 ‘이치방 시보리’(一番搾り) 제품을 출시하면서 수퍼드라이의 기세를 잠시 억눌렀다. 하지만 1994년부터 아사히의 맹공은 다시 시작됐다. 그러다 2001년 기린은 아사히에게 점유율을 역전당하고 만다. 2위 추락은 48년 만이었다. 당시 기린맥주 사장은 “패배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앞으로는 아사히가 아니라 고객을 보자”고 선언한다. 

그런 치열한 전쟁에서 후세 다카유키가 오사카 지사장으로 취임한 건 2008년 3월이다. 오사카는 전통적으로 아사히의 아성이었다. 2008년 그해, 다카유키의 오사카 지사팀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연말, 다카유키 지사장은 직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과를 낼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여러분 모두에게 잘못된 방향으로 지시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하지만 내년 우리 오사카 지사는 전국 톱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본사의 말은 일절 듣지 마라. 본사로부터 내려오는 캠페인 활동은 무시해도 상관없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주간 이코노미스트; 마이니치신문이 발행하는 비즈니스잡지 2021년 9월 15일자)

당시 지사 사원들은 본사의 전략에 문제점을 제기했었다. ‘이치방 시보리’ 리뉴얼 제품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데, 본사에서는 ‘라거’도 강화하라고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다카유키 지사장은 “일선 술집과 식당에 ‘이치방 시보리’ 리뉴얼 제품의 매력을 알리는데 전력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말대로, 2009년 오사카 지사는 크게 약진했다. 이것이 원동력이 되어 기린맥주는 9년 만에 아사히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톱에 복귀했다. 

기린맥주의 간판제품은 이치방 시보리와 혼기린이다.

경영 위기에 몰린 코이와이유업 재건 
큰 성과를 올린 다카유키 지사장에게 또 다른 임무가 맡겨졌다. 관계사인 코이와이유업(小岩井乳業) 사장 취임이다. 다카유키는 “임원도 아닌 내가 왜”라며 자신의 임명을 두고 놀라워 했다고 한다. 이례적인 인사 뒤에는 깊은 사정이 있었다. 2010년 3월 사장에 취임해 보니, 경영은 꽉 막혀 있었고, 구조조정 채비를 하고 있었다.  

취임 두 달 뒤인 5월, 구조조정 설명회 자리. 사원들의 눈에선 한결같이 분노가 흘러넘쳤다. “나쁜 것은 기린이다. 코이와이가 기린에 휘둘려서 경영이 악화됐다”며 입을 모았다. 연말까지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으면 경영 재건은 불가능해 보였고, 자칫 기린그룹 경영에도 영향을 미칠 상황이었다.

구조조정을 당하는 직원들도 힘들었지만, 칼자루를 쥔 다카유키 사장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런 다카유키 사장은 대상자들에게 진심을 담아 일일이 편지를 썼다. 구조조정이 끝나고 나서 몇몇 대상자들이 거꾸로 편지를 보내왔다. “사장이 당신이어서 다행이었다. 편지에 감사했다.”

구조조정 직후인 2012년,  코이와이유업은 ‘생유 100% 요구르트’(生乳100%ヨーグルト)를 간판제품으로 내세워 매출을 크게 늘렸다. 회사도 정상적인 재건 수준에 올랐다. 다카유키 사장은 이런 경영 수완을 평가받아 2014년 3월, 기린의 영업회사였던 '기린맥주 마케팅' 사장에 취임했다. 이윽고 이듬해인 2015년 3월에는 기린맥주의 수장에까지 올랐다. 

후세 다카유키 사장이 실적을 일군 두 제품군. 

사장 취임 이후 11년에 만에 맥주 톱 탈환 
사장에 취임한 다카유키는 ‘고객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회사’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영업맨  출신답게 직접 현장을 돌며 사원들과 대화를 반복했다. 주력 브랜드에 집중 투자하면서 철저하게 고객을 이해하는 전략을 펼쳐 나갔다. 성과가 나오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린맥주는 2020년 상반기(1~6월) 맥주류(맥주, 발포주, 제3맥주) 전쟁에서 시장 점유율 톱에 올랐다. 11년에 만에 아사히맥주로부터 자리를 탈환한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탓으로 가정용 수요가 늘어나고 제3의 맥주 혼기린(本麒麟) 판매가 증가하면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의 주된 시각이다. “다카유키 사장이 패배에 젖어있던 조직을 변혁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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