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루트 66’(U.S. Route 66) 체험기
생생 미국 리포트/ ‘루트 66’(U.S. Route 66) 체험기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1.12.12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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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그 집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필자가 미국을 처음 방문했던 때는 1990년 11월 말이었다. 88학번이었던 필자에게 미국은 무한한 동경의 나라이기도 했다. 물론 반미감정이 있던 시기에 대학을 다녔지만 지금보다 더 영화를 사랑했던 필자에게 ‘미국’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바로 ‘그 장소’들을 답사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인지 동조하지 않았다. 

대학의 허락을 받아 어학실습실을 빌려 일주일에 한번씩 최신 비디오 상영을 했던 이력이 있었다. 호응도 좋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도 거기에 가 봤으면...”하는 소원이 있었고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교수님들의 경험담을 들을 때면 “나는 언제 가보나...”하는 푸념도 있었다. 그렇게 미국을 방문하여 영화 ‘Pretty Woman’(귀여운 여인)의 배경이 된 베버리힐즈(Beverly Hills)에 가서 무모하게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심지어 제1차 걸프전이 터져 미국인들은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는데 서부 일주여행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정착하여 이민 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그토록) 원하던 미국에 와 있는데도 정작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을) 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몰라서 못 가기도 하고 때로는 생계를 위해 뛰어야 하니 ‘그림의 떡’이 아니던가? 

서론이 너무 길었다. 평소 가장 존경하는 대학 선배의 제안으로 그토록 가보고 싶던 ‘U.S. Route 66’를 방문하게 되었다. 펜데믹 때문에 갇혀 있었던 세월을 보상 받기라도 하듯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찬사와 냇 킹 콜(Nat King Cole)의 전설적 노래 그리고 텔레비전 시리즈로 유명한 그곳, 무엇보다도 최애 영화 중 하나인 ‘바그다드 카페’(Bagdad Cafe)를 종착지로 하여 당일치기 여행을 감행 하였던 것이다. 

루트 66 도로에 앉아서.

▲미국 메인 스트리트
“만약 서부로 드라이브 한다면, 내가 권하는 이 하이웨이를 지나가 보세요. 최고예요. 66번 국도를 달려가세요.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곧장 뚫렸지요.” 

1946년 냇 킹 콜 트리오가 발표한 밀리언셀러 ‘Route 66’의 첫 소절이다. 1926년 11월 26일에 완공되었으며, 미국의 고속도로로 지정되었으나 1985년 6월 27일 지정 해제되었다가 2003년 ‘66번 국도’로 복원이 마무리되었다. 미국 최초의 동서 대륙간 횡단 도로로 경기불황에 따라 서부로 이주해 오던 이들이 주로 이용하였고 따라서 곳곳에 상점과 모텔 그리고 주유소 등이 생겨나면서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현재 주로 관광객들이 이용하거나 옛 추억을 떠올리는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로이지만 펜데믹 이후 황폐해진 까닭에 이곳 서부 루트 66 주변의 박물관들은 주로 주말에만 문을 열고 홈 리스들로 넘쳐나 어떤 곳은 관광객들조차 사진을 찍기 위해 하차하려다가 다시 차를 돌리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루트66의 벽화 앞에서.

66번 도로는 8개 주(일리노이주-미주리주-캔자스주-오클라호마주-텍사스주-뉴멕시코주-애리조나주-캘리포니아주)를 통과한다. 필자는 종착지나 다름없는 캘리포니아주의 도로를 달렸다. 사실 21세기의 발명품 ‘네비게이션’은 ‘프리웨이’를 이용하도록 알려주기 때문에 번거롭지만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도를 참조하는 것이 더 낫다. 드문드문 기차역과 동선이 겹친다. 

루트 66지도

우선 서부개척시대를 연상케 하는 마을들이 등장하는 게 그 특징이다. 게다가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기념품 가게도 많고 무엇보다도 도로변 건물들의 벽마다 루트 66을 상징하는 벽화들을 특색있게 그려 놓아 사진을 찍고 가도록 유혹하고 있었다. 그러나 함정은 ‘그 벽화가 그 벽화’라서 곧 사진찍기를 중단하게 되었다. 물론 옛날에는 도로에도 루트66의 로고가 새겨 있었으나 교통사고로 인해 지금은 거의 지워져 도로변의 표지판을 통해서만 이곳이 루트 66임을 알 수 있기도 하다. 

루트 66의 흔한 기념품가게

▲미국 ‘MC DONALD’ 제1호점
영화 ‘파운더’(The Founder, 2016)를 기억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MC DONALD’ 햄버거의 탄생 배경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곳 캘리포니아의 루트 66에는 바로 ‘제1호점’이 박물관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레이 크락’(Ray Kroc, MC DONALD 이사회 의장)과 관련된 가게가 아닌 최초로 버거를 개발한 ‘MC DONALD’형제의 햄버거 가게를 박물관으로 개조하였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화려하지는 않았다. 펜데믹으로 인하여 입장이 주말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었기 때문에 겉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벽면에 ‘맥도널드 형제’의 얼굴이 그려져 있어 그곳이 ‘원조 1호점’이었음을 상기시켜 준다. 이쯤 되면 과거 루트 66이 얼마나 명성이 높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맥도널드 1호점 간판 앞에선 필자
미국 내 맥도널드 제1호점, 원조 맥도널드 형제의 햄버거 가게

당시 웬만한 패스트푸드점들은 다운 타운에 위치하지 않고 주로 도로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문화에 익숙한 미국이기에 가능하다. 아쉽게도 박물관을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블로거들의 포스팅을 보면 실내에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기념물들을 많이 전시해 놓았다고 한다. 또한 코카콜라(COCA COLA)와 최초의 스폰서쉽을 체결한 것이 ‘맥도널드’인 만큼 이와 관련된 각종 기념물들도 많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간판이 매우 낡아 보였는데 이는 기후의 문제라고 한다. 태양 볕이 가장 따갑기로 소문난 샌버나디노(San Bernardino)의 특성상 쉽게 간판이 망가져 버린다고 한다. 

▲서부 아메리카 철도 박물관
이름(Western American Rail Museum)은 매우 거창하지만 볼거리는 많지 않다. 다만 과거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인 ‘SANTAFE’열차들이 서 있다. 주의할 점은 캘리포니아 주 철도 박물관(California State Railroad Museum)과는 다른 곳이라는 점이다. 산타페(Santa Fe)는 뉴멕시코 주의 주도이면서 스페인어인데 영어로 번역하면 ‘Holy Faith’, 즉 ‘거룩한 믿음’ 이라고 한다. 

산타페 열차(서부열차박물관

산타페는 미국의 열차 서비스 회사였으며 이들은 가장 럭셔리 운영서비스였던 ‘수퍼 치프’(Super Chief)를 운행했다고 한다. 지금도 레고(LEGO)매니아들이 2002년도에 단종되어 부르는 게 값이라는 바로 그 산타페 열차들의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산타페’인가? 그건 황금광 시대의 마차길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산타페에서 출발한 황금마차들이 캔사스와 토페카 등 미국 서부를 횡단했다.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동부와의 무역을 위해 개척된 역마차 길이 바로 ‘산타페 트레일’(Santa Fe Trail)이었다고 한다.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승리 한 후 미국에 편입되어 1880년 철도로 완성되었다. 

데쓰밸리의 표지판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 데쓰밸리

참고로 이 박물관을 가는 길목에는 ‘데스밸리’(Death Valley)가 있다. 골드러쉬(Gold Rush)를 쫓아 출발한 마차들이 눈 덮힌 시에라(Sierra) 사막의 험로를 피해 지름길로 알고 접어들었거나 금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정착했다가 숱하게 죽어 나갔다는 전설의 ‘데스밸리’(Death Valley)는 네바다주까지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데스밸리는 특히 영화 스타워즈(Star Wars)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때문에 스타워즈 덕후들의 ‘성지’로 불린다. 루트 66과 연관이 매우 깊은 곳 중 하나다.

영화 속 '바그다드 카페'는 황량하기만 했다. 

▲바그다드 카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했다. 물론 1987년도의 영화이니 보존 상태를 확인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카페’이니 그래도 영화 속처럼 힐링하며 커피 한잔의 여유라도 부릴 줄 알았는데 그냥 ‘박물관화’ 되어 있었다. 

영화 속 물탱크와 모텔도 없고 덩그라니 카페는 남아 있었지만 그곳 여사장님은 연로하셔서 더 이상 뭔가를 만드실 여력은 안 남아있었고 백발의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다만 영화속에서 처럼 바텐더의 모습으로 셀카를 찍는 것은 허락되었는데 세월만큼이나 쌓인 먼지나 그동안 다녀간 사람들의 숱한 낙서와 사진들로 인해 사양했다. 허접한 기념품(정체불명의 티셔츠 등)도 판매했다. 

'바그다드 카페' 그집 앞에서.

그러나 영화의 인기만큼이나 방문객들도 많았고 그들은 다양한 형태의 흔적으로 벽에 남기고 떠나갔으며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영화 속에서는 그래도 이웃이 있을 법한 곳으로 나오는데 지금은 이 카페 외에는 주변의 황량한 사막과 66번 도로가 어우러져 매우 쓸쓸했다. “희망은 번져 나간다”는 영화의 주제와 달리 우울한 감정이 머리 속에서 번져 나갔다. 

그러나 루트 66이 존재하고 있기에 ‘바그다드 카페’를 찾아갈 수 있었다는 생각에 “그래도 길은 계속 된다”는 글을 카페에 몰래 쓰고 나왔다. 필자는 갑자기 허탈함과 쓸쓸함 때문에 돌아오는 내내 주제가인 ‘Calling You’를 들었다. 그러나 바그다드 카페에서 뭔가를 먹어 보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비워진 배는 돌아오는 길에 루트 66의 유명 버거인 ‘해빗버거’(Habit Burgur)를 통해 채워 졌고 ‘인생 버거’의 충만함은 위로가 되었으며 집으로 간다는 ‘희망’이 서서히 번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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