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크리스마스의 기적
생생 미국 리포트/ 크리스마스의 기적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1.12.23 0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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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인질 중 한명.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성경 속 제자와 같은 12명’. 
잇따른 펜데믹 후유증과 떼강도 그리고 연말연시를 노린 빈집털이와 자동차 털이에 지친 미국에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 전해졌다. 지난 10월 아이티 범죄조직에 납치되었던 선교단체 회원 12명이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생환한 것이다.

사건은 지난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이 10월 17일(현지시간) 아이티(HAITI)에서 미 선교단체 크리스천 에이드 미니스트리스(Christian Aid Ministries : 이하 CAM) 회원 17명이 고아원에서 구호활동을 벌이고 돌아오던 중에 ‘400명의 마오조’(이하 400 Mawozo)라는 범죄조직에 납치되었다고 보도하면서 이 사건이 알려졌다. 

아이티 경찰 당국은 ‘400명의 경험 없는 남자들’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이 조직이 오래 전부터 크루아 데 부케 지역을 무대로 납치와 차량 강도, 상인 갈취 등을 범죄를 저질러 왔다고 전했다. 아이티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의 나라로 이와 같은 조직이 90여개에 달하고 공권력 대신에 조직들이 구역을 나눠 다스릴 만큼 위험한 곳이다.

악명 높은 아이티 갱단

▲17명 몸값 ‘200억원’ 요구
아이티의 치안 상태는 매우 나쁘다. 지난 7월 조베넬 모이즈(Jovenel Moïse's)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경쟁 세력이 고군분투하는 경찰에 맞서 나라를 장악하기 위해 싸우면서 치안은 더욱 악화 되었다. ‘납치’는 이러한 조직들이 손쉽게 자금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400 Mawozo’는 지난 4월에도 사제 5명과 수녀 2명, 사제의 친척 3명을 납치한 바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아이티 전체에 만연되어 있다. 강력한 갱단이 무법적인 상황을 악용하여 몸값 지불로 이익을 내기 때문에 아이티는 세계에서 납치 범죄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올해는 특히 10월 말 이전까지 거의 800건의 납치가 보고될 정도로 상승세를 탔다. 

아이티의 수도 포트프랭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도주의적 단체들이 활발하게 구호활동을 벌이기도 하는 나라이다. 대만(TAIWAN) 수교국 중 하나로 미국 등 국가들이 대중국 견제를 위해서도 아이티를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이번에 납치 대상이 된 CAM 역시 30년째 아이티에서 선교 및 구호활동을 활발하게 벌여 온 비영리구호단체였다. 

이 그룹에는 16명의 미국인과 1명의 캐나다인이 포함되었으며 초기 수백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먼저 5명을 석방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폭력조직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로 이번 사건의 납치 지역으로 알려진 크루와데부케(Croix-des-Bouquets area는)는 많은 주민들이 갱단을 피해 도망치면서 유령도시처럼 변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인도에 즐비했던 노점상들마저 갱단의 협박에 모두 문을 닫았으며 한때 안전지대로 여겨진 교회도 갱단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성직자들도 납치범죄에 희생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영화 '위트니스'

▲Christian Aid Ministries
특별히 CAM은 미국에 기반을 둔 단체로 아미쉬(Amish), 메노나이트(Mennonite), 재세례파 침례교(Anabaptist)를 기반으로 한 단체이다. 아미쉬(Amish)는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야콥 암만(Jakob Ammann)이 창시자이며 특별히 탈무드의 토론 공동체를 모방한 일종의 종교 공동체이다. 

이들은 다른 종교 공동체와 많이 다른데 현대문명의 상징인 전기와 컴퓨터, 자동차, 의료시설과 보험 가입 등을 거부하며 가스와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바기(Buggies)라는 마차를 이용한다. 가구당 평균 일곱 명 이상의 아이를 낳고 공교육을 거부하여 한 교실에서 1학년부터 8학년까지 함께 공부한 뒤 삶에 필요한 농사와 목축 기술을 배운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또한 모든 청년들에게 외부 세계를 경험하게 해보고, 원하면 아미쉬 공동체를 떠날 수 있는 자율선택권을 준다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90%가 아미쉬 공동체에 남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아마도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위트니스’(Witness, 1985)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명과 동떨어져 공동체 생활과 신앙적 규율이 아직도 지켜져 가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종종 활용되고 외부인의 방문 및 관광도 허용된다. 영화에서 소개된 대로 검정색 복장에 남성은 턱수염을 기르고 여성은 땋아 올린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르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들은 펜실베니아(Pennsylvania)와 오하이오(Ohio) 그리고 인디애나주(Indiana)에 주로 모여 사는데 CAM의 본부 역시 오하이오에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문명보다는 아직도 17세기의 전통적 생활방식을 지켜 온 성장 배경이 이번 탈출 과정에서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들은 탈출을 결심 한 후 수많은 감시를 피해 ‘저 멀리 보이는 뿌연 산’을 이정표로 하여 우거진 찔레나무와 가시 덤불을 해쳐 가며 달과 별빛을 보고 10마일을 달려 탈출했다고 전해진다. 21세기에 이러한 전통적 방식으로 탈출한 것도 신기하지만 아미쉬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이들이 비영리 구호단체를 만들어 다른 나라를 돕고 있다는 사실도 매우 이채로웠다.

탈출 후 안전지대로 이동 하고 있는 CAM 멤버들

▲아이티–흑인주도의 근대적 첫 정부
아이티는 사실 1804년에 독립하였으며 흑인이 수반이 된 흑인 주도의 근대적 정부가 구성된 것으로서는 최초의 사례로 미국 독립전쟁에 참가 했던 프랑스군 출신의 자유흑인들이 그 뿌리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이티 하면 무엇보다도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Pirates of the Caribbean)시리즈의 무대였던 토르투가(Tortuga)섬 등으로 유명하다. 

한때 설탕, 커피, 목재 등으로 부강한 나라였으나 ‘파파 독(Papa Doc)’으로 불렸던 독재자이면서 부두교 신봉자였던 프랑수아 뒤발리에(François Duvalier)가 집권하면서 나라를 거덜내더니 1991년, 좌파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 Bertrand Aristide)가 집권한 후 혼란이 거듭 되면서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걸어 왔다. 2021년 7월, 급기야 조베넬 모이즈(Jovenel Moïse's) 대통령이 괴한에게 그것도 집 안에서 암살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2010년과 2021년에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대지진이 일어나 국가 경제가 마비되고 공권력이 사실상 실종된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부두교(Voodoo)와 좀비(Zombie)가 아이티에서 가장 먼저 유래 되었다고 하며 대다수 국민들이 겉으로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속으로는 부두교를 믿는다는 바로 그 나라다. 에이즈가 창궐하여 평균 수명이 41.2세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특이하게도 미국에 120만명이 이주하였는데 아이티계 흑인들의 범죄율이 ‘월등히’ 높은 까닭에 ‘이민제한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최근 텍사스 국경에서 아이티인 8천여명이 노숙하며 난민촌을 형성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이 반기는 것도 아니다. 이미 중남미 국가들도 아이티인들에게는 빗장을 잠궜고 도미니카공화국의 경우 사탕수수밭에서 아직도 아이티계 현대판 노예들이 많아 서로 감정이 매우 좋지 못한 상태다.

탈출직 후 모인 CAM ,멤버들

▲용서를 넘어선 사랑
목숨 건 탈출 후 플로리다에 안착한 이들(CAM)은 앞으로도 계속 아이티에서 구호 활동을 펼쳐 나갈 것을 이야기했다. 이 단체의 한 리더는 “예수님은 사랑을 용서하는 힘이 폭력을 미워하는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말씀과 자신의 모범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아이티의 범죄조직원들을 용서했다고 인터뷰했다. 

또한 “그들의 마음에 진정한 인질은 그들을 (납치해) 데려간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이 인질로 변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용서를 베풀기로 선택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비전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CAM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30년 넘게 아이티에서 일해왔지만 향후 임무를 위해 보안 프로토콜을 재검토할 것을 지시하는 등 후속 조치에 들어갔으며 아직도 잔류하고 있는 아이티의 기독교 활동가들을 염려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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