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편집 집단 조 지무쇼(浩事務所)의 ‘정리의 힘’
기획·편집 집단 조 지무쇼(浩事務所)의 ‘정리의 힘’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2.02.0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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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지무쇼(浩事務所)는 평범한 구슬을 꿰어 보배로운 책을 내놓고 있다. 1985년 창립한 조 지무쇼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일본의 기획·편집 집단이다. 그런 조 지무쇼의 힘은 ‘정리’에서 나온다. 전문 분야의 지식을 핵심만 골라 단순명쾌하게 정리한다. 지금까지 ‘30대 도시로 읽는 세계사’,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3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 등이 한국에 번역 출간돼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30개 도시로 읽는 일본사’(다산초당)라는 책도 흥미롭다. 삿포로에서 도쿄, 오사카, 교토를 거쳐 가고시마까지 일본의 30개 주요 도시의 탄생 과정과 성장사를 담았다. 도시마다 정해진 분량 탓에 ‘깊이’는 덜 하지만 두루두루 읽기엔 더 없이 좋다. 

일본의 기획·편집 집단 조 지무쇼(浩事務所)
감수를 맡은 긴다 아키히로(金田章裕) 교토대 명예교수는 “일본은 의도적으로 계획된 도시, 항구를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가 있고, 근세에는 성(城) 밑에 건설된 조카마치(城下町)가 많았다”며 “특히 조카마치는 건설자인 성주의 의도가 도시의 성격에 크게 반영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에도의 경우는 갈대밭과 늪지대를 매립해 만든 계획도시에 해당한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 전쟁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을 물리치고 천하의 패권을 잡았다.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고민은 ‘새 도읍지를 어디로 하느냐’였다. 최종 선택지는 원래 수도였던 교토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오사카도, 도쿠가와 자신의 근거지인 슨푸(駿府: 현재의 시즈오카현)도 아니었다. 새 수도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땅, 지금의 도쿄인 에도(江戶)였다. 

당시 에도는 바다쪽과 접한 저지대는 갈대가 무성했고,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서쪽 고지대는 물이 없는 척박한 땅이었다. 그럼, 도쿠가와는 왜 에도를 낙점했을까. 일본 역사가들은 ‘에도가 수로를 통한 운송에 유리한 교통의 요충지라는 점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도쿄를 건설할 때 가장 먼저 시행한 일은 이 수운 시설과 상수도 시설이었다. 당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친환경 도시를 구상하고, 건설했다고 볼 수 있다. 책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에도는 풍수도시였다. 

도쿄는 액운을 막는 풍수도시로 건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부를 열면서 도시 설계에 풍수를 도입했다. 이 작업을 지휘한 사람은 이에야스도, 부하 무장들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아마미(天海)라는 천태종의 승려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으로 에도 막부 초기 주요 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풍수학 지식을 가졌던 아마미는 에도성 귀문(鬼門)과 이귀문(裏鬼門)에 사찰을 세워 재앙으로부터 보호하려 했다. 귀문은 일본어로 ‘기몬’, 이귀문은 ‘우라기몬’이라 읽는다. 일본 풍수에서는 동북쪽을 나쁜 기운이 들어간다고 하여 기몬, 기몬의 반대편인 서남쪽은 나쁜 기운이 통하는 길이라 하여 우라기몬이라 부른다. 

일본에서는 기몬, 우라기몬이 도시설계에 강한 영향을 줬다.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기몬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풍수가 아니더라도, 일본은 예부터 기몬을 극도로 꺼리는 풍속이 있다. 고온 다습 기후의 일본은 북동쪽은 볕이 잘 들지 않고 습기가 많다. 풍수에서는 습기를 나쁜 기운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동북방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고 믿었고, 귀문인 동북방을 여덟 방위에서 가장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풍수에 바탕을 둔 에도 설계는 3대 쇼군(도쿠가와 이에미쓰, 徳川家光)에 이르서 그 모양새를 갖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개인적으로 풍수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자신의 본거지였던 슨푸의 동북방에는 영산인 후지산이 있었다. 후지산이 바로 기몬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서남쪽에는 후지산처럼 기몬을 막아주는 것이 없다. 그런 탓에 도쿠가와는 슨푸의 서남쪽에 귀신을 쫓는 복숭아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상인의 자치로 발전한 ‘동양의 베네치아’ 사카이
‘30개 도시로 읽는 일본사’는 이처럼 도시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생활이고, 역사다. △사카이는 ‘상인의 자치로 발전한 동양의 베니치아’, △마쓰야마는 ‘나쓰메 소세키가 사랑한 시코쿠의 온천마을’, △가고시마는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고향’, △도모노우라는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영감을 준 작은 어촌’ 등. 각 도시마다 배우는 상식공부도 재밌다. <에디터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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