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SriLanka Talk/ 마하(maha)와 얄라(yala) 즐기는 법
김성진의 SriLanka Talk/ 마하(maha)와 얄라(yala) 즐기는 법
  • 김성진 작가
  • 승인 2022.01.19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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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길을 달리는 자전거 아저씨.

<스리랑카=김성진 작가> 이곳 저곳 기웃대며 빈둥빈둥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는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하늘은 마치 코발트색 물감으로 칠한 듯 선명하게 맑았고 이리저리 흩어져 놀던 구름은 슬금슬금 모여들어 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 오늘 밤에 한바탕 쏟아질 모양이다. 

아! 허공을 가로질러 나풀나풀 내리는 햇빛을 보라. 길바닥에 내려앉은 햇빛은 자동차가 휑하게 지나가자 물결치듯 양쪽으로 갈라진다. 과일 파는 가게의 차양에는 햇빛이 소복이 쌓여있고, 버스를 기다리는 아가씨의 얼굴에도 햇빛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내 등짝에도, 달리는 자전거에도 햇빛이 은박지 가루처럼 묻어있다. 쉬어가는 나무 그늘에 들어서면 눈이 녹듯 햇빛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기분 좋은 따끈한 열기만 남긴 채.  

기웃기웃하고 싶은 골목길

독일 기상학자 쾨펜의 기후분류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날씨는 ‘열대 몬순 기후’(tropical mon-soon climate)라고 한다. 열대 몬순 날씨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건기와 가끔 홍수를 유발하기도 하는 우기로 나누어지는데, 건기라고 해서 한국의 가뭄처럼 지독하여 땅이 갈라지는 지경은 아니며 우기라해서 길고 지리한 장마를 맞이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물을 많이 머금은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불 때는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이고, 물이 상대적으로 적은 육지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는 건기라고 한다. 

아랍어 ‘마우심’(mausim)에서 유래한 몬순
몬순(mon-soon)이라는 말은 남아시아와 인도양에 부는 바람의 변화를 가리키는 아랍어 ‘마우심’(mausim)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후에 말은 굳어져 몬순 계절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 기후는 아마존 하구, 말레이와 동남아, 미얀마 서부, 필리핀 북서부, 인도 서해안, 스리랑카 등에 분포하며 대부분 개발도상국으로, 지구상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며 열대지방이다.   

번잡한 길도 여기선 나름 '나이스~'

여기서 우리는 자기 나라 날씨에 대한 스리랑카 사람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 필요가 있다. 스리랑카 콜롬보대학교의 교수이며 역사, 사회,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JB Disanayaka 박사가 발간한 ‘신할라 언어와 문화 백과사전’은 “스리랑카에는 한 해에 두 번의 비 오는 절기가 있다. 4월부터 9월까지 남서 몬순, 10월부터 3월까지 북동 몬순”이라며 독일 기상학자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큰 우기 '마하'(maha)와 작은 우기 '얄랴'(yala)
예로부터 주식인 쌀을 재배하기 위하여 논농사를 중요시 여기던 스리랑카는 농사의 흥망을 좌우하는 강수량에 민감하여, 계절을 말할 때 비가 내리는 양에 따라 큰 우기와 작은 우기로 구분하였다. 이 계절은 마하(maha)와 얄라(yala)로 불렀는데, 문자 그대로 신할라어로 마하는 크다는 뜻이고 얄라는 작다는 뜻이다. 마하 계절은 북동 몬순 기간인 10월부터 3월까지, 얄라 계절은 4월부터 9월까지이다.

녹슨 철길을 따라가 본다.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스리랑카 사람들은 강우량에 따라 지혜롭게 농사를 지어왔는데 마하(10월~3월) 계절은 큰비가 내리는 시절이므로 대규모 논농사를 위한 파종을 하였고, 적은 양의 비가 내라는 얄라(4월~9월) 시절은 때마침 열매 맺은 과일을 수확하고, 쌀과 곡식을 추수하였다. 

스리랑카의 기후와는 맞지 않는 ‘몬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그것을 폭우와 홍수, 천둥과 번개, 벼락 등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뜻으로 재해석한 것은 영국 식민 지배자였다고 한다. 인도의 많은 지역에서 남서 몬순은 폭우와 사이클론을 동반한 빈번한 자연재해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리랑카에는 인도처럼 기후로 인하여 생기는 자연재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슬리퍼 차림으로 터벅터벅 걷고 싶은 흙길

스리랑카에 잘못 전해진 ‘몬순’의 의미
JB Disanayaka 박사는 스리랑카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기원 100년 전부터 지켜온 아름답고 고유한 계절의 체계를, 건기와 우기로만 분류되는 서양식 언어로 굳어진 몬순(mon-soon)이라는 단어로 규정하여, 그 의미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인식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스리랑카의 문학 작품에서부터 정부의 웹사이트, 관광 가이드북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육지에만 길이 있는 건 아니다. 바다에도 어부의 길이 있다. 

‘몬순’에 대한 오해는 관광 산업뿐만 아니라 많은 남아시아 최대의 흥행 스포츠인 크리켓 경기 일정에도 영향을 미쳐 일부러 우기를 피한다고 하였으나 오히려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시기에 너무 자주 일정이 잡혔고, 이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고, 팬들이 실망하여 경기장을 떠나는 등 재정적인 손실이 발생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지금은 1월 중순이 넘었으니 비가 많이 내린다는 마하 계절의 끝자락이다. 자연의 섭리는 신비하여 얄라 계절을 준비할 수 있게 함인지 비 내리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과연 그렇다. 낮에는 넘치도록 많은 함박 햇살이 하늘에서 하염없이 내렸고, 밤에는 낮에 모았던 비구름을 별들 사이로 시원하게 한줄기 쏟아 내린다.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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