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SriLanka Talk/ 불가촉 천민 로디야(Rodiya)
김성진의 SriLanka Talk/ 불가촉 천민 로디야(Rodiya)
  • 김성진 작가
  • 승인 2022.03.07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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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독과 로디야 댄서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Mount Lavinia 전경.

<스리랑카=김성진 작가> 온 세상을 뒤덮은 거역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는 그 사람이 취한 재력의 크기와 학벌에 따라 사람을 특정하고 재단하는 것이 상식화되고 말았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고 말하며 태어난 가정과 환경을 원망 혹은 자랑하며 형편을 가늠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스리랑카 주류 민족인 싱할라인은 예로부터 전해오던 카스트(Caste)의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도 신분이 다른 사람끼리는 혼인을 피하는 현상이 있다. 궁금한 나머지 스리랑카의 카스트제도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최하위 카스트인 불가촉 천민 계급(untouchability)인 로디야(Rodiya)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심취하여 글을 준비하는 동안 내내 가슴 위에 돌덩이를 하나 올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답답하고 무거워 불편했다. 

이 사람은 어디에? 로얄 귀족인 라달라(Radala)부터 시작되는 스리랑카 카스트 계급.

스리랑카 카스트 제도 속에 사는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 마주치는 사람, 뒤통수만 쳐다보게 되는 사람조차도 “저 아저씨 카스트는 무엇일까. 로디야였을까. 매부리코 모양을 보니 영국계일걸. 아니야 메스티조 혼혈일 거야. 수염을 보니 무어 이슬람교도네. 매끈한 검은 피부를 보니 타밀족이구나. 아니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온 사람의 후손일 수도 있어. 마음이 아팠던 추억이 있을까. 고개를 숙이고 걷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차림새를 보며 별의별 상상을 했다. 이제 글을 쓰게 되므로 아리게 아팠던 우울한 감정에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어떻게 태어나다 보니 로디야라는 신분으로 태어나 차별과 배척을 받았듯이, 스리랑카의 왕족과 귀족 여자들은 정치적인 패권 다툼에 휘말린 집안 남자들의 실패와 상실로 말미암아 강에 뛰어드는 죽음을 강요받거나 로디야 카스트 사회로 신분을 이동하는 처참한 상태에 내몰린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어리둥절하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알고는 절망하고 만다.

스리랑카의 바다
바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대부분 여성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관습에 저항하지 못하고 강에 몸을 던졌으나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는 여성도 있었다. 당시 여성은 가부장제에 얽매인 하찮은 존재로 여겼던 사회 풍조에서 드물게 자신의 선택을 통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존재 가치를 찾았던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들은 로디야 사회의 문화 예술의 토대와 후손들의 귀족적인 기품의 바탕이 되었는데, 외국 사람들이 보았던 잘생긴 남자 거지, 로디야 여자의 매력적인 품격이 그것이다.

로디야는 사람들의 주거지와 떨어진 정글에 살며, 땅을 소유하여 경작할 수도 없고, 독립적인 주택을 지을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남녀 모두 허리 위에는 어떤 옷도 입을 수 없었고 그들이 아프거나 춥다고 느낄지라도 따뜻하게 옷을 꾸려 입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흙으로 된 벽과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이고 살았다. 집에는 창문이나 문이 없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무서운 관습이 로디야 사람들에게 적용된 것이다. 

연인들의 바다

로디야 카스트의 시초와 랏나발리 공주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로디야는 왕가의 죄 많은 랏나발리 공주(NavaratnaValli)의 후손이라고 한다. 로디야인들 사이에서 자부심을 품으며 좋아하는 전설인 이것은 파라카라마바후(Parakrama Bahu)왕의 예쁜 딸인 실존했던 공주 랏나발리의 이야기로 추정하고 있다. 공주가 인육에 맛을 들이는 것을 발견한 왕은 대로하여 인육을 맛 들이게 한 사냥꾼과 공주를 함께 내쳐 정글로 보내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로디야 카스트의 시초였다고 한다. 

 

귀요미 '차렷 꼬마'

왕의 벌을 받아 정글에 내팽개쳐진 이들은 구걸하며 살아야 했고, 공예품, 악기 등과 함께 왕실에서 쓰는 다양한 물품을 만들게 되었다. 로디야는 무엇보다도 장인(匠人)으로 발전했다. 공예품을 만드는 기술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어머니에서 딸로 전수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스리랑카 공예 특산품의 전통 기술이 되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점치기, 손금보기, 동물 사체 처리, 매년 절에서 행해지는 종교 행사 후 거리 청소가 주된 일이었다. 

로디야 여성들은 왕족 공주로부터 내려온 후손들일 뿐만 아니라, 귀족 혈통을 이어받은 여성들이 조상이었으므로 여자다운 매력과 기품은 남달랐다. 여성들은 왕실과 귀족들의 행사에 불려가 수발을 들기도 했고 식민지 점령군의 파티에 초대되어 여흥을 돋구는 무희가 되기도 했으니 성적인 유희의 대상이 되어 매춘에도 쉽게 노출되었음은 물론이다. 하물며 허리 위에 아무것도 입지 말라는 법이 있었으니 말할 나위가 없다. 소설 ‘엘리펀트 워크’(1948)의 작가인 로버트 스탠디쉬는 ‘로디야 여성들은 동양의 성에 대한 서양의 환상을 대표한다’라고 했다. 

Mount Lavinia 앞에선 필자.

영국 총독과 로디야 댄서의 사랑 이야기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바닷가 언덕에 4성급 호텔로 사용하는 Mount Lavinia라고 하는 멋진 하얀색 건물이 있다. 이 건물에는 47세의 영국 총독 토마스 메이트랜드(Thomas Maitland)경과 16세의 로디야 여자 댄서 로비나 알폰소(Lovinia Aponsuwa)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스리랑카의 원주민들이나 영국 관료들은 총독과 댄서 사이의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총독은 관저에서 로비나 집으로 가는 비밀 터널을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총독은 관저를 그가 사랑하는 로비나의 이름을 따서 Mount Lavinia House 라고 불렀다. 

결혼하지 않은 영국 총독이 로디야 계급의 춤추는 소녀와 어울리는 것이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비밀리에 만났다. 그녀는 총독에게 물질, 부, 권력 등 개인의 욕구에 대해 많은 것들을 원할 수 있었지만, 로디야 사람들이 겪는 부당한 사회 환경에 관한 법을 바꾸어주기를 바랐다. 자기 상체를 가릴 수 없게 하는 법과 집에 창문과 문을 둘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은 부당하며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전혀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필자는 자주 섬의 남쪽으로 여행을 하곤 하는데 무심히 지나쳤던 Mount Lavinia라는 지명을 새삼 쳐다본다. 

아.. 그녀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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