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나성’에 가면 시어머니들이 많다
생생 미국 리포트/ ‘나성’에 가면 시어머니들이 많다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2.03.17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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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국 로고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다. 나성(羅城)은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의 음역어이다. 한때 로스앤젤레스나 L.A라는 단어보다 ‘나성’이라는 단어가 더 유행했었다. 그때 나성 하면 떠오르는 건 할리우드 혹은 스테이크 같은 단어들이었다. 그런데 미국생활이 업력을 얻어 갈수록 로스앤젤레스에 가장 많은 게 뭐냐고 물으신다면 ‘시어머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고부간 갈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인가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시어머니가 절대 아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민생활의 조언자들을 일컬어 우리는 ‘시어머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민생활의 첫걸음
이민생활의 첫걸음은 공항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이야 펜데믹으로 인해 없어진 문화이지만 한때 공항에는 미국의 한인교회들 차량과 사역자들이 입국장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막 이민을 온 가정들의 ‘미국생활 길잡이’를 자처했다. 집을 얻는 과정에서 자동차 구입과 직장 알아보기 등의 편의를 제공해주고 이민자들은 교회에 출석하는 ‘선순환’ 구조가 한동안 조성되어 있었다. 경쟁도 치열해서 한때 과열현상으로 인해 이민자들은 교회들이 주는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한인들에게 미국생활의 이모저모를 안내해주는 KYCC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이민자들에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격언이 떠오르게 된다. “이민생활 초기 친절한 사람을 의심하라!”고. 대부분 이민자들은 이민생활 초기 이런 저런 아픔을 먼저 이민 온 분들에게서 경험한다. 심지어 가장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나중에 큰 상처를 안긴다고도 이야기한다. 

낯선 나라에 와서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초창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의존을 하게 되고 따라서 이후 상처를 받고 나서야 태평양 바다를 보면서 울며 후회를 하게 되고 비로써 본격적인 이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선의를 베푼 분들이 더 많겠지만 이민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안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참 많다.

▲유리할 때는 미국인 불리할 때는 한국인
이건 아마도 한국에서 조선족들과 대화 할 때도 경험하게 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 나성에서도 한국계 미국인들이 대다수이므로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특히 2세들의 경우 이 부분이 도드라진다. 이를테면 직장문화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인데 이곳 미국은 자발적인 경우가 아니고서는 ‘야근’이 없다. 그야말로 ‘9 TO 5’. 오랜 전통으로 인해 ‘칼퇴’가 기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인간적으로 친한 사원이라고 해도 자발적이지 않은 야근은 없다고 봐야 한다. 행여나 부탁이라도 하면 여지없이 “여기는 미국인데요”하는 말이 돌아온다. 그러나 본인들이 아파서 조퇴라도 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9 TO 5’룰을 이야기 하거나 별로 아파 보이지 않는데 바쁘니까 웬만하면 참으라고 하면 오히려 “같은 한국계끼리 그거 하나 못 봐주냐”는 핀잔을 듣게 된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입국한 시기에 따라 한국계 미국인들의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은 빈번히 일어난다. 심지어 “말이 안 통한다”며 미국에서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 라든지 하는 폭풍 잔소리를 듣게 된다. 가장 황당한 것은 하루라도 먼저 미국에 온 사람이 결국에는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점이다. 말다툼이 일어나도 결국은 하루라도 먼저 온 사람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서로 분쟁이나 논란 그리고 오해가 될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게 된다. 

코리아 타운

▲미국판 "라떼는 말이지..."
미국에 온 입국 시기에 따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서도 “라떼는 말이지...”가 적용된다. 때문에 시어머니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에 가입을 할 경우나 기타 복지혜택, 간병인 서비스 신청 등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많은 초보 이민자들은 대개 이러한 정보들을 교회나 지역의 한인커뮤니티센터들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법이 바뀌거나 룰이 바뀌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기 때문에 입국 시기에 따라 각각 다른 방법으로 가입을 한 경우들이 많다. 이때부터 “라떼는 말이지...”가 시작된다. 이건 초보 이민자를 혼란에 빠트리게 하며 조언을 무시하면 당장 야단을 친다. 

“이민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선배들의 말을 무시 하냐”는 게 핵심인데 이때 줄다리기를 잘 해야 하고 기술적으로 거절을 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러한 조언들이 실제로 맞느냐 하면 대부분 ‘카더라’가 많다. 따라서 초보 이민자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센터들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가장 좋은 것은 대화상에서 조언을 들을 만한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다. 논란거리를 만드는 순간 피곤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

LA 한인시니어센터

▲대화법이 다르다?
한국 본토와 미국계 한국인들의 대화법은 전혀 다르다. 비즈니스 방식도 완전히 다르고 이민 초보자들이 이에 적응하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서로 ‘말이 통한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으나 그냥 일상적 대화만 했다면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새 사고방식과 문화가 미국식으로 변화된 분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비즈니스를 공유하다 보면 장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요사이는 한국에서 신랑이나 신부감을 데려오는 것을 꺼린다. 문화도 다르고 대화법도 다르고 심지어 한국의 정치상황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다르다. 미국계 한국인들은 거의 7-80% 가량이 보수 성향을 갖고 있다. 유럽 이민자들이 비교적 진보적이라면 미국 이민자들은 보수성향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3-40대 한국에서 건너 온 여자 분들의 성향과 많이 다르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여자분들 중 한국의 진보세력을 옹호하며 일방적인 정보를 흘린다면 그건 십중팔구 주재원들의 가족이거나 이민 초보자 혹은 결혼을 통해 건너 온 한국계 여성들이다. 

오히려 이곳 토박이들은 그들을 경계한다. 순진한 2세나 3세들을 세뇌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미국인처럼 행동하다가도 한국의 선거철이 되면 심각한 분열을 겪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사관 앞에서 교민을 대표하며 데모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 이민 초보자이거나 아니면 골수 진보 내지는 주재원, 유학생들인 경우가 많다.

LA 한인회관 전경. 무려 50년의 업력을 자랑한다!

▲모래알 같은 한인사회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한국계 미국인들은 ‘단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단합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미국 사회의 문화가 ‘단체’ 보다는 ‘개인’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데 여기에 한국인 특유의 문화가 결합하여 생긴 일이다. 여기서는 서로 친한 것 같지만 뒤 돌아서면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기 일쑤다. 

또한 어떤 사람에 대하여 물으면 대부분 좋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속된 말로 ‘한 다리 건너면 다 사기꾼’으로 매도한다. 서로 원수지간으로 마주치면 으르렁 거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렇다면 왜 코리아타운에 사느냐고 묻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시니어 분들에게는 특히 한국 마트와 병원들이 즐비하고 하루 종일 영어 한마디를 안 해도 살 수 있는 코리아타운을 떠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민 초보자들의 경우에는 기존 미국인들의 텃새와 함께 기존 이민자 한국인들의 텃새라는 이중고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이민을 꿈꾸고 있는 분들에게 냉정한 조언을 하자면 기왕 이민 오는 거 한국인들이 없는 지역에 가서 한번 제대로 부딪혀 볼 것을 권해주고 싶다. 타향살이에서 오는 아쉬움은 있겠지만 적어도 같은 동포에게서 받는 서운함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마 그럴 리가 있냐고? 그럼 직접 이민을 오셔서 살아보길 권면한다. 아마도 필자는 지면을 빌었기 때문에 매우 순화된 표현을 썼음을 대번에 알게 될 것이다. 솔직히 한국에서 먹고 살만 한데 이민을 올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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