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끊임없이 답 안 주는 사랑 같은 것”... 강수연을 추모하며
“영화란... 끊임없이 답 안 주는 사랑 같은 것”... 강수연을 추모하며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2.05.08 13: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네마천국으로 떠난 배우 강수연

<미국 LA=이훈구 작가(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인)>한국 영화계의 ‘원조 월드스타’ 배우인 강수연이 뇌출혈로 인한 의식 불명 속에 결국 천국으로 떠났다. 7일 한국의 문화·예술계에 따르면 강수연은 이날 오후 3시쯤 별세했다. 향년 55세. 한국 영화계의 보석이자 큰 별이 떠났다.

나의 고교시절 강수연 은 전 세계 책받침 스타들과도 바꿀 수 없는 스타였다. 난생 처음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영화 시사회라는 걸 참석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그날 나는 영화대사 재미에 푹 빠졌고 오늘날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인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최우수여자배우상 수상 직후. 왼쪽은 임권택 감독. 오른쪽은 정일성 촬영감독. 사진=단성사 영화역사관, 정종화 영화연구가 제공

군 생활 시절 휴가를 나왔다가 입대 직전 연락이 두절 되었던 첫사랑이 그리워 찾았던 극장에서 본 ‘그대와의 블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훗날 부대에 복귀 한 어느 겨울 일요일에 대대장님께 허락 받고 군교회에서 예배 후 비디오 상영회를 한 적이 있다. 텔레비전 스피커에 교회 마이크를 대고 튼 영화였지만 나는 행복했었다.

씨받이’도 훌륭한 영화였지만 대학 시절 인생과 사랑 때문에 방황하며 본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국 본질로 돌아와 생의 깨달음을 알게 되는 주인공 역의 강수연의 연기는 매우 인상 깊었다.

영화 '깊은 슬픔'(1997)

이후 오랫동안 내가 생각하는 한국영화는 “강수연이 출연한 영화와 그렇지 못한 영화”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 신 트로이카 체제의 몰락 이후 여배우 중 그 누가 그녀 만큼의 아우라가 있을까? 하지만 너무 이른 작별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뒤 사흘째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장례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른다.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배창호·임상수·정지영 감독, 배우 박중훈·안성기·김지미·박정자·신영균·손숙 등이 고문을 맡았다. 

1966년 서울 출생. 네 살 때 아역으로 데뷔한 강수연은 거의 모든 생애를 한국 영화계와 함께 했다. 아역 시절 ‘똘똘이의 모험’ 등에 출연하며 동양방송(TBC) 전속 배우로 연기했고 이후 KBS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 등으로 ‘하이틴 스타’로 등극했다. 고교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에 출연해 ‘고래 사냥 2’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등에 출연하며 스크린 스타이면서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스물 한 살 때인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월드스타 칭호를 얻었다. 당시 수상은 한국 배우 최초의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이었다. 1989년에는 공산권 최고 권위 영화제인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다.

강수연은 문화행정가로도 활약하며 영화계 선배 역할을 자임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2015년에는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또한 강수연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말로도 유명하다.

돈에 휘둘리지 말고 영화인으로서 자긍심을 지키자는 뜻. 류승완 감독은 한 영화인 모임에서 강수연이 한 이 말을 흘려 듣지 않고 영화 ‘베테랑’에서 사용했다. ‘베테랑’에서 서도철(황정민)은 돈을 받고 청탁을 하는 동료 형사를 향해 이 대사를 날린 바 있다. 

한 드라마의 대사처럼 배우 강수연을 줄곧 '추앙'해 왔다.  깊은 슬픔으로 추모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