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양심’으로 평가받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일본 출판사 고단샤는 “3월 3일 이른 시간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13일 밝혔다. 장례는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른 것으로 전해졌다.
◇ 전방위 작가
실천적 지식인 오에 겐자부로는 그야말로 전방위 작가였다. 장편소설, 논픽션, 에세이, 평론, 극본 등 다양한 장르를 다뤘다. 주제 역시 깊고 폭넓었다. 인권, 평화, 원폭 고발, 헌법 9조 수정 반대와 같은 굵직한 이슈부터 장애아에서 비롯된 인간의 구원, 상처, 종교 등의 현실적 문제도 심도있게 묘사했다.
◇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수상
에히메현 태생(1935년생)인 겐자부로는 도쿄대 불문과에 재학 중이던 1958년 ‘사육’으로 제39회 아쿠타가와상(최고 권위 신인문학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다. 단편 소설 ‘사육’은 패전 이후 불안한 일본 사회상을 담았다.
◇ 장애아들
1960년 결혼해 3년 뒤인 1963년 장애인 아들을(히카리, 빛이라는 뜻)을 낳았다. 장애 아들을 기른 경험은 1964년 장편 ‘개인적인 체험’을 나오게 했다. 이 작품으로 신초샤 문학상을 받았다.
겐자부로는 생전에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가로서 나는 아들의 삶을 통해 보는 세상을 묘사했다. 나한테는 히카리가 현실을 여과하는 렌즈였던 셈”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벨상 수상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에 이어 일본 작가로는 두 번째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 1994년이다. 노벨문학상을 안긴 대표작이 장편 ‘만엔 원년의 풋볼’(1967년작)과 ‘절규’(1962년작)이다. 노벨상 수상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시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현실과 신화가 섞인 세계를 창조하고, 상상의 세계로 현대인의 당혹스러운 모습을 잘 표현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일왕 문화훈장 거부
겐자부로는 노벨상을 받은 뒤 아키히토 일왕(천황)이 문화훈장을 수여하려고 했으나 이를 거부했다. “전후 민주주의자로서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사실상의 천황제 거부 의사였다. 그는 이 일로 우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실천적 지식인
겐자부로는 일본의 과거사 행위에 대한 책임을 촉구했던 실천적 지식이었다. 생전엔 한국의 전두환 군부 쿠데타 비판에도 나섰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듬해인 1995년 한국을 찾기도 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헌법 개정 움직임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일본의 이런 움직임에 ‘절대 반대’한다. 일본은 인류 전체가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 명백한 책임이 있다.”<에디터 이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