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자유 탐구자, 식지 않는 밀란 쿤데라 신화
영원한 자유 탐구자, 식지 않는 밀란 쿤데라 신화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07.14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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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망명 후의 밀란 쿤데라.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체코 출신의 망명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가 지난 12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별세했다. 향년 94세. 밀리언셀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Nesnesitelná lehkost bytí, 1984), 장편 ‘농담’(Žert, 1967), ‘이별의 왈츠’(Valčík na rozloučenou, 1972) 등으로 유명한 그는 필자에게는 아주 특별한 작가이기도 하다. 

격변기이던 1988년 대학에 입학했던 내가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읽었던 책이 바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출판사의 카피들은 문학도였던 내게 작지 않은 자극제가 되었는데 ‘성과 정치 함께 다뤄 재미 만점’, ‘문체 독특 문학 지망생에 인기’ 같은 문구들이어서 자연스럽게 누구보다 먼저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던 터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학부 전공이 ‘신학’이었고 신의 영역을 탐구하는 것 외에도 피조물인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학문이었기 때문에 그의 책은 당시 캠퍼스에서도 논쟁의 대상이기도 했다. ‘영원회귀’의 개념(우주와 그 사건들이 이미 발생했고 무한히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에 도전하는 것이 작가의 철학이라고들 했다. 존재의 ‘가벼움’은 곧 ‘자유’를 의미한다고도 했으며 당시 동구권에서 탈공산주의 및 민주화 바람이 거셀 때였기 때문에 ‘반체제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의 소설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톨스토이(Leo Tolstoy)의 ‘전쟁과 평화’(Voina i mir)에서 제목의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안드레이 왕자의 죽음을 설명하는 동안 ‘이상한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서 기인한다(Constance Garnett)고. 당시 신학생들의 최고 논쟁거리가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였고 그가 영원회귀의 개념이 ‘무거움’으로 부과되어 개인의 관점에 따라 엄청난 부담이 될 수도 있고 큰 이익이 될 수도 있다고 했으니 그 반대인 ‘가벼움’에 대한 궁금증은 컸다고 볼 수 있다.

1968년 체코의 민주화를 상징하던 '프라하의 봄' 물결.

물론 갓 대학에 입학한 내가 소화하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책이기도 했다. 다만 첫사랑의 열병이 시작되던 때였기에 명문대학을 다니고 있지 않다는 자격지심에 뭔가 그녀 앞에서 ‘지적허영’이라도 배설해야 하는 처지였으므로 진지하게 두 번이나 읽어야 했던 소설이었다. 제목에서 말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소설의 주제인 사랑과 섹스의 가벼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쿤데라는 인간에게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덧없고, 무계획적이며, 끝없는 우연의 연속에 기반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무거운’ 존재감을 뿜어내는 이 세상에서 그것을 살아내는 우리네 인간들의 ‘가벼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1987년’이라는 뜨거웠던 시절을 눈으로 목격했던 때여서 그런지 ‘프라하의 봄’을 겪었던 작가와 묘하게 오버랩되기도 했다. 처음 읽을 때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지만 이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책으로 두 번째 읽으면서는 조금씩 이해가 되면서 특별히 작가의 독특한 필체(소설기법)에 끌렸다. 무엇보다도 그가 프랑스로 망명하여 ‘불어’로 된 원서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당시 ‘프랑스 문화원’을 들락달락 거리던 내게 그는 ‘체코’의 작가가 아니라 ‘프랑스’의 작가이기도 했다.

1968년 프라하 봄 기간 동안 두 명의 여성, 두 명의 남성, 한 마리의 개, 그리고 그들의 뒤엉킨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체코의 외과의사이자 지식인이며 자유주의자인 ‘토마스’(Tomáš)가 주인공으로 그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화가 사비나가 애인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다. 그는 여성들의 자아가 각각 숨기고 있는 독특성을 성교 시 보이는 상이한 반응 태도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급기야 급한 수술 왕진으로 시골에 다녀오다 한 카페에서 알게 된 테레자와 동거에 들어가더니 결혼까지 한다. 그럼에도 화가 사비나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는커녕 에로틱한 우정 관계를 지속하고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토마스의 행동을 보는 테레자의 심경은 복잡하지만 그의 주변 지식인 사회에 동화되면서 그녀는 차츰 사진 찍는 일에 몰입하게 된다. 이들 자유주의자들의 삶은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프라하의 봄’은 짧았고 68년 소련군의 침공으로 뿌리체 흔들리고 만 것이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체코판

이때부터 이들의 삶은 자유를 얻으려는 ‘가벼움’에의 열망만 남는다. 이 세 사람은 공산 치하의 프라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제네바로 건너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테레자는 소련군의 침공을 사진으로 알린다. 사비나는 프란츠라는 대학교수를 만나 잠시나마 사랑에 빠지지만 이혼도 불사하고 결혼을 하겠다는 그와의 고정 관계를 거부하게 된다. 이 현실만으로도 무거운 삶인데 여전히 방만하고 가벼운 토마스의 삶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 자체다. 

테레자가 결국 토마스를 견디지 못하고 프라하로 돌아가고 사비나는 화가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후 토마스 역시 테레자가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프라하로 돌아가지만 그 동안의 행적과 ‘자유주의적 논문’을 문제 삼아 유리창 청소부라는 직업을 배당 받는데 이 같은 인생의 전락 속에서도 여전히 여성 편력은 내려놓지 못한다. 

이에 반발하여 테레자 역시 괴로워하며 낯선 남자들과 의미 없는 성관계를 이어간다. 결국 이 두 사람은 프라하의 삶을 포기하고 지방의 집단농장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비로서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에서 화가의 생활을 이어가던 사비나에게 집단농장 대표로부터 토마스와 테레자가 죽었다(교통사고)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밀란 쿤데라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짐이 무겁고 우리의 삶이 지상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현실적이고 진실해진다. 그 반대로 짐이 전혀 없다면 인간은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고, 지구와 그의 지상 존재를 떠나 절반만 실재가 되고, 그의 움직임은 무의미한 만큼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어쩌면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원조이기도 했다. 그는 또 인간의 삶에 대해서 ‘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몽상가’이면서 무겁게 짓눌리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들이며 그들 모두는 각자의 ‘가벼움’ 속에서 그것을 겨우 이겨내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소설을 각색하여 1988년에 영화화(한국 개봉명 ‘프라하의 봄’) 되었는데 필립 카우프먼(Philip Kaufman)이 감독하고 토마스역에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Daniel Day-Lewis), 테레자 역에는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 사비나 역에는 레나 올린(Lena Olin)이 맡아 열연했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토마스와 테레자가 사고 직전에 비를 맞으며 시골길을 달리는 짧은 장면으로 끝난다. 그러나 사고 직전의 순간 감독은 그들이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한지 묘사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한국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극장에서 개봉돼됐다.

▲1980년대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
그가 1980년대 한국의 서점가를 강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시대상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을 터이다. ‘권위주의’ 시대를 마무리 하면서 무엇보다도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게다가 그는 보기 드물게 동구권 출신 작가였다. 체코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던 1948년 18살의 나이에 공산당에 가입하여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낭만적 동경을 품었다가 공산주의에 회의를 품었던 이력에 1956년 후루시초프 등장 이후 해빙기에 시인에서 소설가로 전향하여 쓴 소설 ‘농담’은 파격적이었다. 

한 마디의 사소한 농담 때문에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한 지식인의 인생 여정을 그린 이 소설로 인해 그는 ‘프라하의 봄’ 이후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망명길을 떠나야 했지만 동시에 당시 공산주의를 막연하게 동경하던 유럽의 지식인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당시 대학가도 이와 다르지 않았고 뉴스에서 전해오는 소식들은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이 자유를 갈망하는 민주화 시위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저지른 야만적인 ‘천안문 사태’였던 것이기에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실제로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붕괴 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세상은 가볍다’는 작가의 인식과 독특한 문체, ‘체코의 솔제니친’이라는 수식어 등등은 당시 대학가를 달구고도 남았다. 세상은 일회적이고 인간은 그 속을 이런 저런 모습으로 떠돌아다니는 존재일 뿐이라는 인식이 그의 모든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변형되어 나타난 까닭에 그저 세상을 진지하게만 바라보려던 청춘들은 오히려 인생을 우습고 가볍게 보라는 그의 메시지 속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8)

▲정체되지 않는 인기
이외에도 한국에서는 그의 전집이 나와 있으며 앞서 소개한 책들 외에도 ‘웃음과 망각의 책’ ( Kniha smíchu a zapomnění, 1979), 불멸 (Nesmrtelnost, 1988), 느림 (La Lenteur, 1995), 정체성 (L'Identité, 1998), 무지 (L'Ignorance, 2000), 무의미의 축제 ( La fête de l'insignifiance, 2014)등 저서들이 번역, 출판되어있다. 

그는 한때 ‘20세기적 아이러니’로 불렸다. 1975년 이후 프랑스 망명 생활로 인하여 ‘반체제 작가’로서의 명성은 쌓였지만 정작 조국인 체코에서는 불편해했던 것이다. 때문에 ‘조국에서는 침을 뱉고 바깥에서는 떠받들여진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를 단련시켰던 공산주의가 무너져 버린 오늘날 그리고 지난 2019년에 다시 체코 국적을 회복한 이상 이러한 논쟁 역시 무의미해져 버렸다. 

또한 문학사적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전혀 색다른 접근법과 이를 위해 그가 고안한 새로운 문체 및 화법, 마치 산보하듯 다가오는 가벼운 필치 등 현대문학에서 가장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그의 현대문학에 대한 공로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작법은 무엇보다도 시나리오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종종 3인칭 내러티브에서 캐릭터에 대해 언급하는 1인칭 내레이터를 사용하고 외모를 묘사하기보다 캐릭터를 묘사하는 이른바 ‘캐릭터 중심의 작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 시나리오작법 역시 ‘캐릭터 중심으로’ 쓰기를 권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종종 자신들의 완전한 인간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전반부에 하나의 캐릭터로 끌고 가다가 갑자기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여 줄거리를 끌고 가기도 한다. 

그의 초기 소설이 전체주의의 이중적 측면인 비극적 측면과 희극적 측면을 탐구하는 이른바 ‘어두운 유머’를 탐구하는 것이었다면 이후로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도덕적 상황의 모호함’을 유지해 포스트모더니즘 계열로 분류됐다. ‘낙태의 반대’ 메시지를 분명히 하는가 하면 지난 2009년에는 1977년 13세 소녀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항문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스위스에서 체포된 후 석방을 요구하는 프랑스-폴란드 영화 감독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를 지지하는 탄원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을 프랑스 작가로 여겼고 그의 작품은 프랑스 문학으로 연구되어야 하며 서점에서 프랑스 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1998년에는 한국에서 일부 언론이 그의 소설 ‘정체성’이 소설가 ‘안정효’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문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익명의 편지가 불러온 오해’라는 모티브가 동일한데서 비롯되었고 결말까지 달라 헤프닝으로 끝난 바 있었다. 안정효 역시 ‘우연의 일치’가 아니겠느냐고 그 주장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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