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류현진과 구로다 히로키
생생 미국 리포트/ 류현진과 구로다 히로키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4.02.21 16: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A 다저스 시절의 류현진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코리언 몬스터’ 류현진의 KBO리그로 복귀한다. 한화이글스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의 복귀는 지난해 11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한화이글스와 교감을 나눈 것도 아니었지만 “메이저리그(MLB)에서 몇 년 더 뛰려고 팔꿈치 수술을 한 게 아닙니다. 한화에서 잘하고 싶어서 수술했어요."라는 말로 희망을 안겨 주었다. 

사실 한화이글스는 강팀이 아니다. 필자가 응원하는 팀이고 나름 골수팬이라고 자부하지만 1999년 우승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20세기 팀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화이글스는 꼴찌를 밥 먹듯 하는 팀이다. 지난해 수 년 만에 처음으로 탈 꼴찌를 하고 9위를 차지했을 때 팬들은 어느 해 보다 기뻐했다. 순위보다는 한 경기, 한 경기의 결과에 웃고 우는 그래서 때로는 ‘보살팬’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팀이 바로 한화이글스다. 

감독들의 무덤이라 하여 한국의 명감독들인 김인식, 김응룡, 김성근 모두가 성공하지 못했던 팀. 한화이글스는 류현진이 존재하던 시절과 그렇지 못한 때로 역사가 나뉠 수 있다. 어느 해에는 류현진만 이기고 다른 투수들은 패전을 하는 바람에 상대투수의 기피현상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코리아타운을 장식했던 류현진의 광고

▲코리아 타운의 상징
2013년으로 기억한다.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한인회관’쪽이나 여러 방면에 메이저리거 류현진과 추신수의 사진들 혹은 대형 벽화가 장식되어 있었다. 그 중 류현진은 미국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한다는 이곳 로스앤젤레스 연고 ‘LA 다저스’ 소속이었고 1990년대 박찬호 이후 가장 잘 던지는 코리언 메이저리거이기도 했다. 교포 사회에서 코리언 메이저리거의 경기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지난한 이민 생활에서 고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연대감 속에서 응원을 하노라면 어느새 교포들이 ‘하나가’ 되고는 했다. 류현진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모두들 생업을 잠시 접고라도 다저스타디엄으로 달려갔다. 류현진은 처음부터 완벽한 적응을 하며 마침내 리그를 호령하는 투수가 되었다. 

2012 KBO 리그 시즌이 끝난 후 그는 LA 다저스와 연봉 포함 6년, 6.173만 달러에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다. 이는 최초의 기록이다. 대부분 마이너리그나 트리플 A를 거친 후 메이저리거가 되는 수순을 밟는데 비하여 류현진은 ‘직행’한 사례였다. 2012-13 겨울, 오프시즌마다 발표되는 여러 유망주 전문가들의 유망주 순위에서 팀 내 상위에 랭크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랭킹인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다저스 팀 내 랭킹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르기도 했다. 

LA 한미은행 광고모델 조약식

류현진의 성공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생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리그 내 대표 투수로서 자리매김 했기 때문이다. 쏠쏠한 타격은 덤. 10시즌 동안 1055와 1/3이닝을 던지고 평균자책 3.27(조정방어율 122+)을 기록하여 명실공히 ‘코리언 몬스터’(Korean Monster)라는 별명에 걸 맞는 활약을 펼쳤으며 평균자책 1위(2019시즌 2.32), 사이영상 투표에서 2위(2019)와 3위(2020)를 기록하면서 KBO 리그 출신도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류현진이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15년 커리어 초반부터 이어온 혹사의 여파로 데드암 선고를 받고 복귀 가능성 7%의 어깨수술을 감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류현진은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닐 엘리트라체 박사와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렵다는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때도 팬들과의 약속인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하게 해 드리고 싶다’를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고 한다. 

힘든 재활과정에서 까다로운 재활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으며 ‘언행일치’로 의료진 및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팬들은 열광했다. 타인과의 약속뿐 아니라 ‘자신과의 약속을 행동으로 지켜낸’것으로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류현진의 롤모델인 히로시마 카프의 투수 '구로다 히로키'

▲구로다 히로키(黒田博樹)
이번 류현진의 KBO리그 복귀를 바라 보면서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바로 구로다 히로키다. 히로시마 도요카프스의 전설적 투수다. 구로다 히로키는 ‘의리’를 상징하는 선수다. 히로시마 도요카프(広島東洋カープ)는 일본프로야구(NPB) 센트럴 리그의 프로야구단이다. 12개 구단 중 시민구단의 성격이 강하다. 명목상의 모기업으로는 마즈다(MAZDA)이지만 구단 경영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당연히 타구단과의 연봉싸움에서 밀리는 구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충성도는 일본 최고인 명문구단이기도 하다. 구로다 히로키는 카프와의 의리를 지킨 선수로 유명하다. 물론 고교시절 내내 후보였고 대학시절에도 존재감이 없던 그를 불러준 게 바로 ‘카프’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카프를 통해 투수로서 만개했다. 이러한 때문인지 FA선언 이후에도 팬들의 성원을 뿌리칠 수 없어 잔류를 선택할 정도였다. 

이때 일화가 전해져 오는데 바로2006년 시즌 카프의 마지막 경기에서 FA를 앞두고 있는 구로다 히로키에게 보낸 팬들의 현수막 문구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싸웠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미래에 빛나는 그날까지 네가 눈물을 흘린다면 너의 눈물이 되어 줄게. 카프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我々は共に闘って来た 今までもこれからも… 未来へ輝くその日まで 君が涙を流すなら 君の涙になってやる)였다. 여기에 감동하여 잔류를 선언한 구로다 히로키는 이후 의리와 보은의 선수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가 33세가 되던 해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LA 다저스’에 입단하게 되는데 팬들에게 “꼭 힘이 남아있을 때 다시 돌아와 던지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약속한다.”고 한 그의 말은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사실 그의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다년계약이 아닌 ‘1년짜리 계약’만을 고집했다. 

그 이유를 그는 "더 이상 내년을 위해서 야구하는 나이는 아니다. 내가 왜 지금 야구를 하는지 생각하면서 늘 완전하게 불사르고 싶다. 다년계약을 하면 아무래도 2년째의 일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여력을 남기며 시즌을 치르고 싶지는 않다. 팀에 리스크를 떠안기지 않고, 매년 결과로 내 가치를 어필해야 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의 공포,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은 언제나 짊어야 할 몫이다."라고 담담히 밝혔다. 

그리고 2014년 말 뉴욕 양키스와의 계약이 끝난 그에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1년 18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제시했으나 미련 없이 카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5의 연봉을 받고 NPB에 복귀했다. 이때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멋진 멘트로 카프의 팬들을 설레이게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간다.”라고. 마침내 2016년 9월 10일, 카프로서는 25년 만의 리그 우승이 결정된 경기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후 그는 히로시마 카프의 15번 영구 결번이 되었다.

메이저리그의 두 전설 '코리언특급' 박찬호와 '코리언몬스터' 류현진

▲다시 류현진
사실 한화이글스는 류현진에게 빚이 있다. 류현진의 포스팅 건으로 인해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 팀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야구부장에서 류현진 포스팅 비용으로 인한 온갖 수혜를 누렸음에도 팀 성적이 늘 최하위에 머물자 “류현진 판돈으로 차라리 부동산 샀으면 지금 그 돈으로 두산 베어스 샀겠다.”라는 팬의 저격이 공개적으로 있을 정도였다. 사실 류현진의 포스팅 비용으로 한화이글스는 대전구장을 증·개축하고 서산구장(퓨처스리그)을 짓는 등 여러 가지 투자가 이어졌다. 

그 동안 한화이글스는 류현진 영입에 공을 들였다. 2020년 시즌을 앞두고 한 토론토와 4년 8000만 달러 계약은 지난해로 끝났다. FA 자격을 얻었고 메이저리그 계약을 우선순위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류현진의 말도 그랬고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 역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마지막 선택은 역시 구로다 히로키처럼 친정 팀 한화이글스였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MLB)에서 몇 년 더 뛰려고 팔꿈치 수술을 한 게 아닙니다. 한화 이글스에서 잘하고 싶어서 수술했어요."라는 말로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됐을 때 이미 마음은 이미 한화이글스로 기울어져 있었다고 한다. 우선 "늦어도 2025시즌 전에는 무조건 돌아온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LA다저스 시절 류현진 카드

이유 역시 구로다 히로키의 그것이었다. "내게 힘이 남아있을 때 한화이글스에 돌아와야 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류현진은 거취를 고민하면서 한 투수의 이름을 언급했는데 바로 구로다 히로키였다. "구로다 처럼 내 힘으로 한화이글스의 우승을 이끄는 게 오랜 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를 앞둔 시기에 힘이 다 떨어진 채로 돌아와 한화 팬들 앞에 다시 서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한화이글스의 전력에 보탬이 될 때, 여전히 강한 모습으로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12년만의 귀환이다. 이제 코리아타운의 한인 커뮤니티는 류현진을 직관하며 응원할 기회가 멀어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LA 다저스의 에이스이자 대표 선수로서 교포들에게 시원한 청량감을 안겨주는 피칭과 삼진쇼 그리고 2019년에는 담장을 넘기는 홈런까지 모든 퍼포먼스를 보여준 류현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코리아타운의 자존심이었던 류현진. 어쩌면 류현진의 마법으로 한화이글스도 21세기에 깜짝 놀랄 우승이 그의 손에서 이뤄지지는 않을까? 벌써부터 시즌이 궁금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