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9)/ 아니메의 우연과 행운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69)/ 아니메의 우연과 행운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09.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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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의 선구자 데즈카 오사무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1917년부터 100년 동안 일본에서 제작하고 발표된 ‘아니메’(anime, アニメ, 애니메이션, 이하 아니메)의 작품 수는 무려 1만 1723개에 달한다. 아니메는 ‘애니메이션(アニメ―ション)’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저패니메이션’(혹은 재패니메이션, Japanimation)이라고도 한다. 만화영화(漫まん画)라는 말도 일본에서는 사라지는 추세이고 ‘아니메’(Anime)하면 전 세계가 알 정도로 유명하다. 

심지어 1960-70년대를 살았던 지구촌 사람들이라면 그때의 추억을 기억해 낼 정도다. 특히 ‘철완 아톰’(鉄腕アトム, Mighty Atom, Astro Boy)은 현재까지도 대를 이어 인기를 이어가고 있을 정도다. 원래 ‘아니메’는 ‘안티 디즈니’(Anti Disney)를 모토로 한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의 무시프로덕션(虫プロダクション)의 출범이 시작이다. 

이들에게 처음 주어졌던 조건은 그때까지 TV 방영 전용 작품으로 만화영화가 검증된 바 없었기 때문에 ▲매주 1회 ▲1화에 30분 ▲연속방영 형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데즈카 오사무는 그림을 충분히 움직이는 디즈니의 방법이 아니라 움직임을 최소한도로 맞춰 간소화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당시 동양의 ‘월트 디즈니’를 표방하던 도에이동화(東映動画)가 TV 방영에 제공되는 CM용 애니메이션을 대량으로 제작해야 수지를 겨우 맞추는 상황이었기에 데즈카 오사무의 시도는 판도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다만 1960년대와 달리 1970년대가 들어서면서 해외 시장 중 아시아 시장의 비중이 커지고 내수가 확대되었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었다.

철완 아톰

▲NBC 사원의 한마디
아니메가 미국에 소개된 것은 분명 ‘우연과 행운’이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NBC 사원이 도쿄 체류 중에 ‘철완(무쇠 팔의 한자)아톰’을 보게 되는 ‘우연’이 있었고 그에 의해 미국에 수출되는 ‘행운’도 뒤따랐다. 일본 국내에서는 이미 34%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둔 후였다. 이어 세계 각국에 수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일본 사회는 아톰을 ‘부흥하는 일본’의 투혼과 재생의 아이콘으로 해석하며 열광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열기는 1970년대 들어 다소 수그러들고 있었다. 심지어 미국 등에서는 원본 그대로 방영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폭력적인 장면’이 문제 시 되어 검열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데즈카 오사무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 바로 그 NBC 사원과 나눈 대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데즈카 오사무에게 “우리들(미국인)은 아침에 교회에 가서 깨끗한 기분이 되어 TV를 보는 어린이들에게 ‘어린이 방송’을 편성하고 있지만 거기에 때리고, 차고, 괴롭히다 죽이는 화면이 나오면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요? ‘아스트로 보이’에는 그런 장면이 적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데즈카 오사무는 “그러면 뽀빠이는 어떤가?”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사원은 다시 “저희들은 뽀빠이를 삼류만화라고 하여 상대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작가가 ‘뽀빠이’를 본보기로 만화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유감입니다.”라고 되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역설이 일어난다. 미국을 비롯, 모든 수입국들이 자국의 애니메이션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초반 수출은 감소하기 시작했지만 1975년을 계기로 이른바 ‘일본 아니메’에 대한 매니아들이 생겨났다. 1977년 5월에 이르러서는 로스앤젤레스에 ‘Cartoon Fantasy Organization’이라는 팬 조직까지 생겨나는 등으로 인해 다시 수출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꾸준히 극장판으로 제작되는 '우주전함 야마토'

▲내수의 폭발적 반격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내수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덩달아서 수출을 염두에 두지 않는 제작이 일어났는데 이 애니메이션들은 훗날 ‘저패니메이션’의 세계화를 향한 돌격대와도 같았다.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우주전함 야마토’(宇宙 戦艦 ヤマト, 1974)가 요미우리 TV에서 방영되고 곧이어 극장판 ‘우주전함 야마토’(宇宙 戦艦 ヤマト, 1977), ‘안녕, 우주전함 야마토 ― 사랑의 전사들’(さらば 宇宙戰艦ヤマト·愛の戰士たち, 1978)이 연달아 흥행하였다. 

마츠모토 레이지 감독

마츠모토 레이지 감독은 우리들에게 ‘은하철도 999’(銀河鉄道 999, 1979), ‘우주해적 캡틴 하록’(宇宙海賊キャプテンハーロック, 1978)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토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감독의 ‘기동전사 건담’(機動戦士ガンダム, 1979)은 지금까지도 폭발적 인기를 전 세계적으로 누리고 있으며 이시구로 노보루(石黒昇)감독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超時空要塞マクロス, 1982)까지 이어지는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의 효시다. 타츠노코 프로덕션(タツノコプロ)의 ‘과학닌자대 갓차맨’(科学忍者隊ガッチャマン, 한국 제목 : 독수리 오형제)등은 영어덜트(young adult)대상 TV 아니메로 기획되어 미국에 수출되어 인기를 누렸다. 

은하철도999

처음에는 폭력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여 초기 ‘우주 전함 야마토’나 ‘우주해적 캡틴 하록’의 경우 견본 필름조차 보려고 하지 않고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물론 이 시기에 ‘밀림의 왕자 레오’(ジャングル大帝, 원제 : 정글 대제), 들장미 소녀 캔디(キャンディ♥キャンディ), ‘마하 고고고’(マッハGoGoGo, Speed Racer, 한국 제목 : 달려라 번개호)같은 작품들은 내수는 물론 수출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내용을 문제 삼지도 않았다. 

특히 요시다 타츠오(吉田龍夫)감독의 ‘마하 고고고’의 경우에는 할리웃 영화에도 영향을 주고받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영화에 빈번하게 똑같이 생긴 자동차나 헬멧 등이 등장하는가 하면 처음부터 ‘007 – 골드핑거’(Goldfinger, 1959)에 등장하는 자동차를 카피한 흔적도 보인다. ‘내일의 죠’(あしたのジョ-·도전자 허리케인) 시리즈는 물론 일본 3대 국민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도라에몽(ドラえもん)’ ‘사자에상(サザエさん)’ ‘치비마루코짱(ちびまる子ちゃん, 한국 제목 : 마루코는 아홉 살)’등이 이때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요시다 타츠오 감독 

그리고 전 세계인들에게 가장 오래 동안 사랑을 받은 나가이고(永井豪)감독의 ‘마징가 Z’(マジンガーZ, 영어 : Mazinger Z, 미국에서는 Tranzor Z)와 ‘UFO 로보 그렌다이저’(UFOロボ グレンダイザー), 요코야마 미츠테루(横山光輝)감독의 ‘철인 28호’(鉄人28号)등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제1세대 ‘오타쿠’(オタク)들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

▲오타쿠들의 탄생과 멀티 전략
일본의 아니메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맞물려 수출의 부진을 잠깐 겪지만 다시 반격에 성공한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전략을 일찌감치 실현했기 때문이다. 코단샤(講談社)같은 만화 전문 출판사가 찍어내는 단행본과 잡지들을 통해 1차 바람몰이를 한 후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인기를 얻으면 극장판이 나오는 패턴을 반복했다. 

또한 프라모델과 기타 상품들을 만들어 오타쿠들과 매니아들을 열광케 했는데 이들은 동일한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을 수집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종의 ‘팬덤’을 형성해 나갔다. 또한 같은 감독의 작품일 경우에는 ‘UFO로보 그렌다이저 대 그레이트 마징가’처럼 서로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로봇들이 힘을 합쳐서 강대한 적을 쓰러트린다는 전개 방식을 가지고 시리즈화 했다. 이른바 ‘쇼와(昭和) 30년대’로 명칭 되던 1960년대 후반부터 고도성장기를 맞아 새로운 오락거리로서 텔레비전이 급속도로 보급되더니 도쿄 올림픽 이후로는 흑백이냐 칼러냐 하는 문제일 뿐 거의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 되어 있었다. 

데즈카 오사무가 1963년 1월 영화관 손님이 대부분이었던 애니메이션을 텔레비전으로 끌어들인 것은 가히 혁명적 발상이었다. 아니메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많은 인재와 그들의 창의적 연구에 의해 수많은 기술적 진보도 이뤄내는 계기가 된 것이다. 월트 디즈니가 판타지나 쇼트 개그에 국한되었다면 아니메는 영어덜트까지 그 시청 범위를 확대 시켜 나갔다. 

‘철완 아톰’의 성공 이후 아니메는 작품 그 자체와 함께 관련 캐릭터 상품의 매상까지 수익으로 잡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 비즈니스’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로 빠르게 보급되면서 제작사의 조직적 마케팅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정적인 현지 팬들의 착실한 팬덤 활동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할 수 있으며 많은 할리웃 영화들에 영감을 준 것도 사실이다. 

마징가 Z의 아버지 카츠마타 토모하루 감독

▲소년만화의 붐
‘소년만화’(少年漫画/Shonen manga)의 붐이 일어난 것도 내수시장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단행본은 물론이고 코단샤의 ‘주간 소년 매거진’(週刊少年マガジン), 쇼가쿠간(小学館)의 ‘주간 소년 선데이’(週刊少年サンデー), 슈에이샤(集英社)의 ‘주간 소년 점프’(週刊少年ジャンプ), 아키타 쇼텐(秋田書店)의 ‘주간 소년 챔피언’(週刊少年チャンピオン) 등을 통해 데즈카 오사무는 물론 유명 만화가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내일의 죠’를 연재하여 ‘주간소년매거진’이 1위 자리를 지키는가 싶더니 데즈카 오사무, 요코야마 미츠테루 등을 내세우며 ‘주간소년선데이’가 만화잡지 매상 1인자의 자리를 굳혔다. 

일본 3대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도라에몽'
일본 3대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사자에상'
일본 3대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치비 마루코 짱'

이들 잡지들은 경쟁을 하면서 오늘날 수많은 ‘아니메’를 배출해 냈다. 이들 잡지들은 21세기에 들어 ‘폐간설’이 나돌 만큼 부침이 있었지만 튼튼한 독자층과 팬레터 보내기 등의 전통 그리고 단행본 시리즈의 출간과 해외판권 수출 등으로 다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굿즈’사업을 통해 소녀팬들까지 끌어들이고 수많은 작품들을 에니메이션화 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기도 하다. 

비교적 애니메이션화를 하지 않는 ‘주간소년챔피언’을 제외하고 최근에는 ‘주간소년점프’의 독주가 두드러지는 것도 특징이다. ‘드래곤볼’(ドラゴンボール), ‘슬램덩크’(スラムダンク), ‘유유백서’(幽☆遊☆白書), ‘원피스’(ワンピース), ‘나루토’(ナルト), ‘블리치’(ブリーチ)에 ‘귀멸의 칼날’(鬼滅の刃)까지 화수분처럼 애니메이션화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마징가 Z'

▲휴머노이드 로봇과 거대로봇 
일본 아니메가 1970년대 세계 애니메이션계에 끼친 센세이션은 최초로 ‘로봇’(robot)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 상업화 시켰다는 점이다. 비록 애니메이션 제작 문법은 월트디즈니의 그것이 출발점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탄생했지만 소재(素材) 만큼은 일본의 독창성이 있었고 때문에 세계를 매혹시킬 수 있었다. 우선 ‘철완 아톰’부터가 ‘인간의 마음을 가진 로봇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이었다. 캐릭터 설정이 주는 깊은 인상은 당시 서정적인 월트 디즈니나 사냥꾼들을 골탕 먹이는 워너 브라더스의 애니메이션들과는 결이 달랐다. 

우주해적 '캡틴 하록'

실제로 인류의 테크날러지가 발달하여 결국에는 이상적인 인공지능을 탑재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이지만 그 이면에는 ‘로봇’으로서 겪는 차별의 문제를 통해 과학 발전이 인류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제기를 던져주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철완 아톰’을 보고 자라나 과학자나 기술자의 꿈을 꾸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실현 시켰다. ‘혼다기켄공업’(本田技硏工業)이 1996년에 발표한 이족보행(二足步行)로봇 아시모(ASHIMO)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개발팀 구성원들이 아톰을 만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회사측으로부터 아톰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회상하고 있다. 

아니메 속 휴머노이드가 결국 세계 1위 로봇 기술을 가진 나라를 이뤄낸 셈이며 휴머노이드와 인간이 친하게 생활하는 시츄에이션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비록 휴머노이드는 아니지만 고양이 로봇 ‘도라에몽’의 존재도 영향이 컸다. 로봇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간 생활과 아주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또한 거대로봇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 있었다. 디자인의 아름다움은 물론 로봇을 조종하는 등장 캐릭터들이 거대로봇을 단순히 병기로 보이게 하지 않게 했다는 점이다. 

비록 ‘건담’에 등장하는 모빌수트(거대로봇)는 병기이지만 전투 중에 이를 조종하는 것은 평범한 소년이다. 아주 평범하며 때로 자신의 마음에 갈등을 느끼는 히어로와는 거리가 먼 소년이었던 것이다. 팬들은 병기로서의 메카니즘이나 아름다움, 멋짐에 주목하기 보다는 인간군상을 느끼려고 하는 ‘감상법’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이를 통해 무엇을 목적으로 싸우려 하는가 하는 전쟁의 본질을 묻는 주제를 깊게 파고들었으며 지구의 평화(平和) 실현을 통해 미래를 응시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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