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흑인들만의 스포츠가 있다?
생생 미국 리포트/ 흑인들만의 스포츠가 있다?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08.17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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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 나잇 스탠드'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에 흑인들의 운동신경은 매우 우월해 보인다. 올림픽 같은 스포츠 체전에서도 그들의 존재는 두드러진다. 그런데 수영이나 펜싱, 양궁, 테니스, 체조, 하키 등의 경기 등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특히 동계 올림픽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기란 더더욱 힘들다. 물론 어떤 분들은 자메이카 밥슬레이 선수단의 고군분부를 그렸던 영화 ‘쿨러닝’(Cool Runnings, 1994)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카리브 해안에서 눈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고 먹을 얼음도 없는데 무슨 동계 스포츠냐고 반문할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 내륙 지역에서는 사막이 대세인데 수영이 이들에게 어울리는 스포츠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흑인들의 스포츠에 대한 어떤 ‘인종적 편견’이 끊임없이 있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인용하는 ‘흑형’이라는 은어가 대표적이다. 이번 주제 역시 흑인들에 대한 편견을 깨자는 취지로 다루는 글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1970년대 뉴욕 할렘가의 길거리 농구 코트 풍경

▲영화 ‘원 나잇 스탠드’
흑인 남성들이 가진 ‘정력’에 대한 컴플렉스는 백인들이나 아시안계에게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지난 1998년 개봉한 영화 ‘원 나잇 스탠드’(One Night Stand)가 바로 그것이다. 마이크 피기스(Mike Figgis)가 감독하고 웨슬리 스나입스(Wesley Snipes)와 나스타샤 킨스키(Nastassja Nakszynski) 그리고 밍나 웬(Ming a Wen)이 주연했다.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어 웨슬리 스나입스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화제의 작품인데 극 중 잘 나가는 광고 연출가였던 흑인 남성이 미모의 동양인 아내가 있음에도 묘령의 백인 여성과 밀애를 나눈다는 소제 자체만으로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작품이었다. 당시만 해도 흑인 남편에 동양인 부인 그리고 백인 애인은 드문 시대였다. 

흑인 최초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

실제로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들의 대다수가 흑인 남성들이 자신들보다 ‘정력’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아시안계 남성들 역시 동의하고 있다. 많은 의사들조차 이 부분에 대해 공감하고 있으며 흑인 남성들의 성기가 다른 인종들보다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에 놀라며 위기감을 토로하고는 한다. 따라서 백인 여성이나 아시안계 여성이 흑인 남성과 결혼을 한 경우 대뜸 ‘흑인 남성의 우월감’을 연상하는 분위기가 있다. 단골로 제시하는 역사적 근거도 있는데 8세기 압바스 왕조가 중동의 패권을 장악할 무렵 이미 동아프리카 일대를 거점으로 한 대규모의 ‘노예무역’이 성행하였는데 이때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 흑인 남성들의 강인한 성적 능력이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귀부인들을 비롯한 아랍 사회가 크게 동요하자 이슬람들이 흑인들의 유전자를 남기지 않기 위해 거의 대부분 ‘거세’를 했다는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 있다. 미국 역시 1960~70년대까지 남부 16개 주에서는 백인과 흑인 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운동기능 발달’이 발달했고, 지구력이 더 높으며 그냥 신체적 특징이 그렇다라는 설명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흑인 최초 프로테니스 선수였던 알테어 깁슨

▲인종별 운동기능 발달
미국에서 인종별 운동기능 발달(Motor development)의 차이를 실험한 한 연구에서 신생아부터 3세까지의 ‘운동기능 발달’ 차이를 백인과 흑인을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인종차별 정책이 존재했던 미국에서 흑인들에 대한 연구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 결과는 흑인이 백인보다 평균적으로 더 우수한 근조절 능력과 협응성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인종차별 정책이 존재하던 시절, 숱한 편견들이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자행된 실험이기는 했는데 결과가 그랬다. 실제 초등학교 4, 5, 6학년의 흑인과 백인 남녀학생을 대상으로 한 32m(35yard) 전력 달리기에서 흑인 남녀 학생들이 백인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사춘기의 흑인과 백인의 서전트 점프(Sargentjump) 실험에서도 흑인이 백인보다 더 높은 능력을 보였다. 

‘서전트 점프’ 라는 종목은 본인이 뛸 수 있는 최대한 높이를 뛰어서 기록을 내는 종목이다. 도약력을 측정하기 위해 미국의 서전트(Sargent, D.)가 고안한 검사 종목으로 무릎을 약 90도로 굽히고 팔을 크게 전후로 흔들면서 수직으로 뛰어오른 뒤, 직립 상태일 때의 머리 높이와 도약하여 도달한 머리 높이의 거리를 재서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운동 소질(신경)을 알아보는 방법으로 활용한다. 

따라서 흑인들조차 이 결과를 보고는 자신들이 압도적으로 농구의 덩크 슛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로버트 말리나(Robert Malina)가 올린 보고서에서 그는 1938년에서 1976년까지 흑인과 백인 남자들의 운동기능 발달과 관련된 연구들을 정리하였는데 흑인 남성들이 전력 달리기에서 더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이유가 평균적으로 체지방(body-fat) 비율이 백인 선수들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흑인 74명과 백인 62명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더 나아가 흑인, 백인, 아시아계의 신체 구조도 살펴보았다. 아시아계는 흑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팔과 다리가 짧으며 백인은 그 중간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1939년에 조사된 인종 간의 신체 구조 연구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백인과 비교하여 흑인은 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팔과 다리를 갖고 있으며 엉덩이가 좁고 종아리가 더 가늘다는 통계가 나타났다. 엉덩이 뼈가 작고 아킬레스건이 길며 체지방율이 낮고, 근육들이 크며 다리가 긴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달리고 점프가 많은 스포츠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트레이닝 강도를 높여도 회복 능력이 빠르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호르몬’ 때문이라고 했다. 

흑인 최초 PGA 프로골퍼 찰리 시포드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일부 스포츠 종목에 대한 특정 인종의 인프라 등 신체 능력의 우월함에 대한 증명을 단순히 ‘흑인의 우월성’으로 한정하기에는 변수들이 많고 또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맞는 이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 미국에서 ‘인종차별’이란 특정 인종의 열등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타 인종 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흑인이 우월하다...’는 말도 결국은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는 것이다. 흑인들 스스로도 이 오류를 잘 알고 있다. 한때 흑인 민권운동가들은 자신들이 스포츠와 노래, 춤 등 백인들보다 우월한 것이 많다는 점을 부각 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 그렇게 주장하다가는 “너는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왜?”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자제한다. 한때 백인들의 스포츠였던 ‘미식축구’(football)에 지금은 많은 흑인 선수들이 뛰고 있지만 스스로 자신들의 ‘신체적 우월감’만을 주장하다가 뛰어난 운동능력을 요구하는 와이드 리시버나 러닝백 등은 흑인이 대체적으로 많은데 반하여 복잡한 전술 수행 능력이 요구되는 쿼터백은 백인이 많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우사인 볼트(Usain St. Leo Bolt)의 경우처럼 특정 종목에서 유난히 흑인들이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는 있다. 미국 프로농구의 경우 원래 유태계 선수들 혹은 백인들의 스포츠였으나 현재는 선수들의 80%가량이 흑인 선수들이다. 흑인이 세계 60억 인구의 12%밖에 되지 않는데도 달리고, 뛰어오르고 참을성(지구력)이 요구되는 운동경기에서 세계적인 선수를 다수 배출하는 현상은 스포츠 과학의 주요 연구 주제이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흑인들이 키에 비해 길고 홀쭉한 다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에서 탁월하다고 주장한다. 체지방의 비율이 낮고 특수 근육이 발달해 단거리 달리기도 잘하며 큰 키와 서전트 점프 능력 덕분에 농구에서 유리하다고 말이다. 흑인들이 이러한 운동에 적합한 능력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물론 신체적으로 타고난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하지만 흑인들이 특정한 스포츠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특별한’ 이유는 알고 보면 매우 서글픈 이야기이다.

미국 수영 영웅 시몬 애슐리 매뉴얼

▲경제적 투자가 작은 경기에 강하다
그렇다. 바로 ‘돈’의 문제다! 흑인들의 신체적 조건을 그들 과학자들의 주장대로 받아들이면 ‘수영’도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수영선수로 성공한 사례가 있다. 시몬 애슐리 매뉴얼(Simone Ashley Manuel)은 미국의 여자 수영선수이다. 2016년 리우 올림픽 자유형 부문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씩을 땄고, 이로써 올림픽 여자 수영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최초의 흑인 선수’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녀는 ‘흑인’인데도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인종차별정책이 시행되던 시절, 모든 수영장과 해변에는 백인과 비백인들이 서로 다른 구역에서 수영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나 지금이나 흑인들의 경제 사정은 좋지 않다. 가뜩이나 인종차별이 심한데 민권운동가들의 눈에는 ‘수영’하면 백인들의 전유물로 비춰졌고 하루 벌어  먹고 살기도 힘든 마당에 사치로 보였다. 

그 대신에 흑인들의 밀집 지역에서는 일하러 나간 부모들이 방치하는 사이 곳곳에서 ‘돈 안 들어가는’ 스포츠들로 시간을 보내는 풍경이 연출됐다. 곳곳에 농구 골대가 세워지고 공터에서 축구공들을 찼으며 이따금 야구나 미식축구 같은 스포츠도 접할 수 있었다. 심지어 육상의 경우에는 아예 돈이 들어가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인종차별 속에서 그들이 학문적으로 박사가 되어 성공하거나 그 밖의 비즈니스 영역에서 다른 인종들을 따 돌리기란 쉽지 않았지만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일부 스포츠 경기는 달랐다. 

또한 그들이 갈망하는 가난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부의 획득뿐만 아니라 신분 상승의 기회까지 되었으니 스포츠 편중현상은 갈수록 심화되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흑인들은 자신들의 장기도 살리고 돈도 벌 수 있는 종목들로 몰리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도 ‘특정 종목 편중’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그들이 특정 스포츠만 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흑인들을 만나보면 이구동성으로 ‘빨리 출세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스포츠’를 더 선호한다는 답변을 한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와 실존 인물 '마이크 오어'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가 주는 메시지
존 리 행콕(John Lee Hancock)감독의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The Blind Side, 2010)는 실화다. 샌드라 불럭(Sandra Bullock)과 퀸튼 아론(Quinton Aaron)이 주연한 이 영화는 오늘의 주제와 너무 걸 맞는다. 어린 시절 미국 법에 의하여 마약 중독에 걸린 엄마와 강제로 헤어진 후 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커가던 ‘마이클 오어’(퀸튼 아론). 건장한 체격과 남다른 운동 신경을 눈여겨 본 미식축구 코치에 의해 상류 사립학교로 전학하게 되지만 이전 학교에서의 성적 미달로 운동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내성적 성격에 어린 시절의 상처로 그를 돌봐주던 집마다 쫓겨나기 일수라 마지막 집에서도 머물지 못하게 되자 학교, 수업, 운동보다 하루하루 잘 곳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다. 그런데 주변의 흑인 친구들은 온통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 과거 운동에 촉망받던 또래들조차도 경제적 이유로 범죄 조직에 연관되어 있으며 신체조건이 좋은 그는 날마다 합류를 하라는 협박을 받기 일수다. 게다가 마약을 끊지 못한 엄마는 돈 몇푼에 아들을 조직(마약 운반책)에 팔아넘기려고까지 한다.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 밤, 차가운 날씨에 반팔 셔츠만을 걸친 채 체육관으로 향하던 ‘마이클’을 발견한 백인 상류층 여인 ‘리 앤’(샌드라 불럭). 평소 불의를 참지 못하는 확고한 성격의 리 앤은 마이클의 순수한 심성에 빠져들며 그의 법적 보호자가 되면서까지 ‘진짜 가족’이 되고자 한다. 

주변의 의심 어린 편견과 여러 장애를 극복하고 결국 대학 진학과 미식축구팀의 지명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데 영화는 내내 ‘오늘의 주제’를 상기시킨다. 바로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다. 사실 개인의 재능과 노력은 환경과 인종을 초월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제력도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도 동의한다. 누구나 평등하게 스포츠를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좋겠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부강하다는 이곳 미국에서도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를 깨부수려는 흑인들이 드문 것도 안타깝기만 하다. 그들은 분명 신체적으로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며 그 한계를 깨부술수록 ‘인종차별’과 편견은 더 줄어들 것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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