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74) – 일본경제의 ‘리즈 시절’
이훈구의 일본영화경제학(74) – 일본경제의 ‘리즈 시절’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4.02.0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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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일본 경제의 리즈시절을 상징하는 '코카콜라' 광고

<미국 LA 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1980년대 일본은 그야말로 ‘리즈시절’이었다. 미국의 비판적 지성인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 2010년 작고)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명예교수조차 ‘일본의 기적’이라는 말로 칭송했고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MITI and the Japanese Miracle)이라는 그의 대표작을 통해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한 배경을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을 따른 것이 아니라 특유의 국가 주도 발전주의 모델에 의한 것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발전국가'의 롤모델이기도 했던 일본. 이후 이른바 ‘버블 경제’의 후유증을 겪어야 했지만 당시만 해도 일본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내용은 1980년 일본은 약 8만7천명의 공학도를 배출시켰는데 그중 46%는 전기공학도였다. 이에비해 미국은 일본보다 인구가 두배나 많은데도 6만3천명의 공학도를 배출했을 따름이었으니 세계 경제를 선도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계 100대 기업 중 무려 53개가 일본기업이었는데 ‘소니’(SONY)와 ‘도시바’(TOSHIBA)는 그중 가장 잘 나가는 글로벌 기업들이었다. 이중 소니가 전자사업 뿐만 아니라 컨텐츠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되는데 급기야 1989년 9월 28일 코카콜라 컴퍼니가 40억달러에 컬럼비아 픽처스를 매각하기에 이른다. ‘소니 픽처스’의 시작이다. 

1982년 도쿄 우에노역 쇼치쿠 백화점. 당시 인근의 '우에노 백화점'과 함께 '오락의 전당'이라고 불렸다.
소니에 합병된 컬럼비아 픽처스는 2024년을 맞아 100주년이 되었다.

▲새영상(映像) 질서시대
1980년대 일본의 영화계는 1970년대 산업의 재편을 경험했고 메이저 영화사들의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 독립영화 프로덕션들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새영상(映像) 질서시대’를 맞이했다는 평가를 받은 일본문화계는 영화, TV, 비디오가 공존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당시 대중들이 ‘영화는 멈춰 서서 보는 미디어, TV는 걸으면서 보는 미디어, 비디오는 앉아서 보는 미디어’라는 정의를 내리면서 각각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감독의 ‘카게무샤’(影武者, 1980)로 포문을 연 1980년대 일본영화계는 ‘TV는 TV 다운, 영화는 영화 다운 컨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TV의 도전에 대한 맷집이 생기기도 했지만 관객들 스스로가 “TV는 영화처럼 짜릿한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가족끼리 관람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 되기도 했다. 

영화 '남극 이야기'(1983)

대표적 작품으로는 ‘남극 이야기’(南極物語, 1983)로 지난 2011년 기무라 타쿠야, 아야세 하루카 주연에 ‘남극대륙’(南極大陸)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리메이크 된바 있다. 후지 TV(フジテレビジョン)가 처음 제작한 영화로 카게무샤의 흥행 기록을 뛰어 넘었고 1997년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개봉 전까지 일본 영화 역대 순위 1위를 기록했다. 1956년부터 58년까지 일본의 남극 월동대 활동 중 쇼와 기지에 방치 될 수 밖에 없었던 사할린 허스키 15마리들의 이야기를 실화를 바탕으로 3년간에 걸쳐 제작한 대작이다. 

타카쿠라 켄(高倉健)과 와타세 츠네히코(渡瀬恒彦)가 주연했으며 “왜 버린 겁니까? 왜 개들을 데리고 돌아오지 않은겁니까?”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대 유행하면서 장기흥행 했다. 사실 일본인들을 다시 극장으로 이끈 것은 외화 ‘E.T’의 흥행 때문이었다. 그 이전까지 일본은 명절이나 연휴 방학 특수 등에 관객들이 집중 되었었는데 E.T의 폭발적 흥행으로 인해 초여름부터 극장가에 관객들이 몰려들어 성수기와 비수기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남극 이야기가 개봉한 1983년에 이르러서는 관객수가 전년대비 129%가 늘어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고)모리타 요시미츠 감독 탄생 70주년 기념 상영제 포스터

게다가 ‘ATG’(아트 시어터 길드, Art Theatre Guild)의 선전과 함께 오구리 고헤이(小栗康平), 이타미 주조(伊丹十三), 모리타 요시미츠(森田芳光), 하야시 가이조(林海象),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이치가와 준(市川準), 오사베 히데오(長部日出雄) 등 신예 감독들이 등장하여 화제작들을 쏟아 냈다. 이들 덕택에 일본영화인들의 저변이 확대되었고 다양한 직종의 인물들이 영화계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애니메이션 부문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가 등장하여 어린이들만이 아닌 어른들도 공유할 수 있는 장르로 발전되었다. 

영화 '가족게임'(家族ゲ-ム, 1983)의 가로 줄지어 있는 식탁 장면

▲구로사와 아키라
1980년대 가장 반가운 것은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귀환이었다. 1980년 미국 20세기 폭스와 일본 도호(東宝)가 공동제작 한 ‘카게무샤’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이다. 일본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였고 배급 수익에서도 흥행 신기록을 수립한 ‘카게무샤’는 전국시대 영웅인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대역을 맡은 도둑의 이야기다. 카게무샤의 영어 해석인 ‘Shadow Warrior’ 가 상징하듯 다이묘 등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가짜 주군'으로서 일종의 위장용 대역역할을 하는 무사를 통해 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정체성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걸작이다. 

조지 루카스, 구로사와 아키라, 스티븐 스필버그(아카데미 시상식)

구로사와 아키라는 완벽하게 재기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베니스영화제 역대 황금사자상 수상작 중 최고의 작품('사자 중의 사자')으로 선출되어 특별 표창을 받았다. 또 한편의 영화로는 스스로 ‘필생의 역작’이라고 꼽았다는 ‘란’(乱, 1985)이다. 자식과 가신들에게 배신당하고 광기에 사로잡히는 늙은 성주를 다뤘는데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영화화 한 것이다. 화려한 색채와 완벽한 구도, 파워풀한 전투장면 등을 통해 전세계 영화인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카게무샤'(影武者, 1980)

대표적으로 5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수상하였고 40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였다. 이에 우디 앨런(Woody Allen)이 "셰익스피어를 찍을 수 있는 감독은 구로사와 밖에 없다"며 찬사를 보냈다. 또한 그의 열광적인 지지자였던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와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화인인 구로사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돕는 것은 영광" 이라며 판타지 영화 ‘꿈’(夢, 1990)의 제작비를 펀딩해 줄 정도였다.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는 아시아인 최초로 1990년 제62회 아카데미 시상식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영화 '란'(乱, 1985)

▲TV 방송사의 원소스 멀티 유스
TV 방송사의 영화 진출도 1980대의 한 특징이다. 드라마를 영화화 하거나 영화를 드라마화 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다. 일본 영화계 특징 중 하나가 드라마가 성공을 하면 하이라이트만 모아서 ‘스페셜’ 형식으로 방영하고 ‘극장판’이 나오는 바로 그 시스템이 1980년대부터 정착되었다. 키네마준보(キネマ旬報) ‘1980년대 베스트  10 영화’의 1위를 차지한 ‘가족게임’(家族ゲ-ム, 1983)이 대표적 예이다. 

먼 훗날 한국의 영화 ‘기생충’의 원조격인 영화로 ‘혼마 요헤이’(本間洋平)의 소설이 원작인데 다만 그 가족을 관찰하는 시선이 ‘6번째 가정교사’(그 이전 가정교사들은 자발적으로 그만둠)라는 것이 다르다. ‘문제 있는 가족갱생 프로젝트’가 주요 모티브로 여러 매체에서 극찬한 이유는 BG(배경음악)없이 주변의 밥먹는 소리와 배우들의 대사만을 담아 공포분위기를 극대화 한다는 점이다.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다다미 샷을 차용하여 일렬로 밥을 먹는 장면(가로 줄지어 있는 식탁)이 상징적 장면으로 유명한데 이지메(イジメ), 핵가족, 장남선호사상 등을 유머러스하고 시니컬 하게 그려내 화제가 된 작품이다. 감독은 ‘모리타 요시미츠’(森田芳光)로 일본대학 예술학부 방송학과 출신으로 이른바 ‘자주제작영화’(自主映画製作)노선을 끝까지 지킨 영화인이다. 시리어스 한 드라마로부터 희극, 블랙 코미디, 아이돌영화, 연애 영화, 공포 영화, 미스터리영화와 폭넓은 테마를 의욕적으로 취급해 화제작을 많이 발표했다. 

자주제작영화를 해왔다는 것은 독립영화 계열에 속한다는 것이다. 메이저 제작사처럼 간섭을 받지 않고 창작을 하는 이점은 있지만 제작비 마련 등 여러가지 외부적 요인은 어려웠지만 ‘전공투’ 출신의 반골답게 끝까지 자주제작영화를 고수했다. 그에게는 독특한 이력이 있었는데 ‘경마에세이’를 연재하는 일이었다. 한때 경마평론가로서 활동을 할 것을 고민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1997년의 영화 ‘실락원’(失楽園)으로 더 유명하다. 

일본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役所広司)와 지성파 여배우 ‘구로키 히토미’(黑木瞳) 주연의 이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실락원 한다(失楽園(する)”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가족게임’의 후일담이 전해져 오는데 조감독 가네코 슈스케( 金子修介)에 따르면 영화의 배경음악이 들어가지 않은 이유로 ‘제작비 절감’이 컸다고 한다. 이 영화는 공전의 히트로 1982년 테레비 아사히판, 1983년 TBS 테레비판, 2013년 후지TV판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미니 시어터 시네마테크 타카사키(ミニシアターのシネマテークたかさき)

▲시네마테크 운동이 활성화 된 1980년대
1980년대는 경제의 리즈시절이었던 반면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간간이 명맥을 유지하듯 히트작들을 내놓는 상황이었다. 주목할만한 것은 1980년대 유럽 예술영화에 대한 선호 현상과 함께 '미니 시어터’( ミニシアター)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아트 시어터 길드의 선전과 함께 예술영화에 대한 일본영화 관객들의 수요가 커지면서 상영관 역시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다변화 되면서 소극장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일본의 사단법인 ‘커뮤니티 시네마센터’가 매년 발행하는 '영화상영활동연감'의 통계에 의하면 2022년 기준으로 멀티 플렉스 영화관은 359곳, 미니 시어터는 136곳에 달한다고 한다. 2019년만 해도 상영영화의 약 40-70%가 미니 시어터에서 상영됐으며 영화계의 다양성을 지키는 창작의 보루가 되고 있다. 일본 나름의 시네마테크(Cinémathèque )운동이며 현재는 각 지역마다 영화 문화를 보호하고 키우는 협의체 형식의 ‘커뮤니티 시네마’(コミュニティシネマ)가 활발하다. 

일본 영화계는 ‘미니 시어터’운동이 활성화 되면서 독일과 같은 관민공동운영 시스템이나 프랑스의 CNC(프랑스 국립 영화영상센터), 한국의 KOFIC(영화진흥위원회)같은 공적지원을 통한 독립행정기구를 두기 보다는 ‘상영자 네트워크’회의가 지역마다 활발하여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시네마’라는 이름으로 발전하게 된다. 현재 일본에는 영화업계에 대한 꾸준한 공적 지원은 거의 없고, 문화예술 기본법에도 지원에 관한 규정은 없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지난 2001년부터 영화를 ‘예술’의 하나라고 인정하였고 이에 각 커뮤니티 시네마마다 ‘운영자 회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운영방안과 상영 프로그램 및 라인업을 체크하고 공유하고 있다. 미니시어터는 다양한 타이틀이 상영되어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문화가 지역과 함께 키워가는 예술이라는 개념이 정착 되었다. 운영자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상영 작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신뢰감이 형성되는게 커뮤니티 시네마의 특징 중 하나다. 

일체의 정부 지원 없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본 미니 시어터 운동’은 다른 나라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최근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장과 OTT의 약진으로 많은 도전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점 현상 심화와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상업영화에만 올인하는 한국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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