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리포트/ 멀어져 가고 잊혀져 가는 미국의 ‘ESG’
생생 미국리포트/ 멀어져 가고 잊혀져 가는 미국의 ‘ESG’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3.10.29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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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의 개념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지난 3월, 미국의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첫 거부권 행사를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2년여 만에 처음으로 미 의회의 안티 ESG 결의안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 결의안은 지난해 11월 미 노동부가 연기금의 투자 결정 시 재무적인 면만을 고려하도록 규정한 규칙을 개정하는 것이 주요 골자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ESG 고려사항을 ‘ERISA’(근로자퇴직연금보장법)의 투자 과정에 포함할 수 있도록 허용한 미 노동부(DOL) 규칙을 수정하려는 것이었다. 

ERISA는 근로자퇴직연금보장법으로 민간 산업에서 수립된 퇴직 및 건강보험연금 계획에 대한 최소 기준을 정하는 미 연방법이다. 한편으로는 미국 근로자들의 저축연금으로 투자할 때 ESG에 대해서 고려하도록 한 규정이 담겨 있어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킨 법안이기도 하다. 실제 상원에서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에서조차 반란표가 나올 만큼 민감한 사안이기도 했다. 비록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도 ‘반 ESG’정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첫 거부권 행사를 공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캡처

▲공화당 만이 아닌 미국 내 안티 ESG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트위터에 글을 올려 거부권을 행사했다면서 “이 결의안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도널드 트럼프 전대통령의 선거 슬로건) 공화당 의원들이 싫어하는 위험 요소를 고려하는 것을 불법으로 만들어 은퇴 저축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힘들게 번 돈은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속내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현재 미국 내 여론은 결코 ESG에 우호적이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유럽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국처럼 요란스럽게 ESG가 세계적 흐름이고 대세인 것 처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미국은 원조 ‘자본주의’국가이다. 기업친화적인 것은 물론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에 주마다 연방법 외에도 ‘주법’이 있다. 따라서 ESG를 강하게 추진하고 규제하는 주에서 기업을 운영하다 가도 그렇지 않은 주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누가 손해를 볼지는 뻔한 일이다. 

공화당이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안티 ESG 흐름을 이어간 동력도 결국은 현재 미국 내 국민 여론이 반영된 것이어서 비록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향후 대선에 미칠 영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미국 내 8개 주가 ESG를 공식적으로 폐기했고 다수의 주정부들이 이를 검토하고 있어 이번 거부권 행사가 미칠 영향력은 미비하다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Anti-ESG 움직임이 미국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미 50개 주 중 37개 주와 미국 연방 의회가 올 상반기에만 156건에 달하는 Anti- ESG 법안(bill)을 발의하였으며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14개 주의 22건의 법안이 법률 (law)로 승인되었을 정도다.

미국 내 반(ANTI)ESG 지도

▲ESG란 무엇인가?
ESG는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환경·사회·지배구조)를 뜻하는 말로, 각 단어의 머릿 글자인 E, S, G를 따서 결합한 합성어이자 조어이다. 지난 2004년 UN 글로벌 컴팩트(UNGC)가 발표한 ‘Who Cares Win’이라는 보고서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후, 2006년 국제 투자기관 연합인 UN PRI가 금융 투자 원칙으로 ESG를 강조하면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마치 ESG를 실천하면 가장 선진적 기업이 되는 것처럼 여겨졌고 이에 더하여 자본주의 4.0 및 이해관계인 자본주의 담론이 등장하였으며,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기후변화, 공중보건, 환경보호 등 ESG 이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도 했다. 

기업 또는 기업에 대한 투자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영향을 측정하는 요소를 의미하며 기업의 비재무적 평가 기준이라고도 볼 수 있다. 최근 한국 기업들의 경우에는 투자 의사 결정 시 '사회책임투자'(SRI) 혹은 '지속가능투자'의 관점에서 기업의 재무적 요소들과 함께 고려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ESG를 적용하면 기업의 지출은 늘어나게 되어 경영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미국 내 국민들의 여론은 ‘ESG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투자를 정치화 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19 사태 후 장기화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각국의 기록적인 자연재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삼중고(고금리·고유가·강달러) 악재를 만나 극복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더해 유럽연합(EU) 발 그린 딜과 탄소 중립 정책, 각종 환경 규제, 탄소 무역장벽 및 금융 규제, 그리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의무화가 경제에 직·간접적인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코로나 19를 통과한 지난 2년간 한국의 산업계가 자의 및 타의에 의해 거의 맹목적으로 쫓아가고 있는 ESG·탄소 중립·기후 대응 기조가 자칫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크게 잃을수도 있다는 우려가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또 국가 경제의 기본인 산업·서민경제 모두 쇠퇴하지 않을지 우려하기도 한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앞서는 문제는 없는데 기업이 아무리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당장은 불필요한 지출까지 늘려나간다면 부담이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미뤄 볼 때 ‘ESG’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진영논리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ANTI)ESG의 선두주자이자 유력한 공화당 대선후보인 디 샌티스 주지사

▲친환경 사업의 과부하
앞서 밝혔듯이 미국 내 ‘반 ESG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과 민주당 내부에서 조차 ‘탈 ESG’가 가속화 되고 있어 정책적 후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Anti) ESG 법안의 첫번째 사례는 은행·보험회사 등이 금융상품 및 서비스 제공 시 ESG와 관련된 사유로 기업에 불이익을 주지 못하게 한 법안이다. ESG 등급이 낮은 기업이라는 이유로 대출을 해주지 않거나 ‘ESG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 혹은 상대적으로 높은 보험료를 책정하는 것도 전면 금지된다.  

두번째 사례로는 금융회사 등이 ESG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기업 또는 산업(예: 채굴, 석유화학, 무기 제조 등)에 대하여 불이익을 가할 경우 정부기관과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정부기관이 해당 금융회사 등과의 기존 거래관계를 중단할 수도 있다. 이 또한 지금의 미국 상황과 다르지 않은데 건국 이래 최대의 ‘개스비’로 인해 민심이 폭발직전에 있는 것이 그 원인으로 지목 된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 채굴하던 ‘셰일개스’ 등을 전면 금지하면서 수입에만 의존하게 되자 하루 하루 개스비가 갱신 되었다. 원래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개스비 보다 생수값이 더 비싼’나라였는데 당장 ESG 적용 강화와 현실을 고려 하지 않은 탄소중립 정책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전기차로 바꾸자고 한들 그 전기를 생산하는 원가가 오르게 되면 결국 그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녹색당등과 집권 연정을 구성한 독일 역시 전기가 부족하여 강력한 원전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하는 현실로 볼 때 미국의 고민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세번째 사례로 연기금·펀드 등이 비재무적 목적 또는 ESG에 연계된 가치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ESG 요인을 고려한 투자 의사결정을 제한하면서 기업의 재무적·금전적 이익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 대해서는 공화, 민주 양당이 대체적으로 의기투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하기 어려운 캘리포니아의 많은 기업들이 ‘기업 친화적’인 텍사스로 옮겨가고 있는데 결국 수입 감소와 실리콘밸리의 침체까지 동시에 일어나자 주경제가 휘청거리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하여 민주당에서조차 반란표가 나오는  것이 그 예이다. 

네번째 사례로는 ESG와 관련된 사유로 개인이나 기업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과 함께 ESG 관련 금융상품 운용 시 구체적인 기준과 지침을 공시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 등을  들 수 있다. 반(Anti) ESG 법안을 가장 많이 발의한 상위 3개 주는 오클라호마(Oklahoma), 텍사스(Texas), 미주리(Missouri)로 나타났는데 공통점이라면 글러벌 기업들이 대다수 본사를 이들 주로 이전하는 러쉬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미국의 흔한 주유소

▲취지는 좋지만...
ESG의 처음 취지는 좋았다. 따라서 큰 호응이 뒤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ESG의 세퇴는 각 기업·산업·지역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인 원인이면서 기업들의 로비가 활발한 미국의 경우에는 더더욱 ESG에 대한 거부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총기규제가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석유화학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출을 거절 당하거나 연기금의 투자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그 기업은 이를 금지하는 법안을 도입하고자 정치자금을 지원하고 로비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기업들이 속도조절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ESG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나쁜’ 유형으로 분류되어 투자 대상에서도 줄곧 제외되는 기업과 업종들이 적극적으로 반발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자 나선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미 미국의 8개주가 공식적으로 ESG를 폐기했으며 더 많은 주가 폐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PC’(정치적 올바름)가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선동해도 결국 현실 앞에서는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매우 현실적인 나라다. 실용주의가 저변에 깔려 있는 미국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늘 극복되기 마련이다. 또한 정치인들 역시 임기 내 당장 현실 유지와 경제문제가 시급한 상황에서 ESG같은 거대 담론을 앞장서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일각에서도 ESG 관련 입법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ESG공시 도입은 시기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에서 조차 아직 ESG 의무공시 등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게다가 ESG 지표가 모범적인 기업이 반드시 튼튼한 기업은 아니라는 인식도 있다. 물론 펀드들의 투자시 고려사항은 될 수 있겟지만 지속 가능한 경영에는 여러갈래의 방법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의 가치는 ‘수익’이라는 점에서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ESG는 어쩌면 각 주의 재량에 맡길 공산이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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