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한줄 어록/ 승부는 '칼집'에서 결정된다
CEO 한줄 어록/ 승부는 '칼집'에서 결정된다
  • 에디터 이재우
  • 승인 2022.03.15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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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다카하라 게이이치로(高原慶一朗)
▶경력: 유니참(ユニ・チャーム, UniCharm) 창업주
▶태생: 에히메현
▶생몰년도: 1931~2018년(87세로 사망)

거합도(居合道), 칼을 칼집에 꽂은 채 적을 제압
<에디터 이재우> 검을 사용하는 일본 무도 중에 ‘거합도’(居合道: 이아이도우)라는 것이 있다. 거합(居合)은 두 사람이 칼을 뽑아들고 서로 마주한 상태에서 대결을 벌이는 입합(立合)과는 그 형식이 다르다. 칼을 뽑는 발도술(拔刀術)에서도 차이가 난다. 

거합은 칼을 칼집에 넣은 상태에서 적의 기습공격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방식이다. 거합은 때론 앉은 자세에서 상대보다 먼저 베어야 한다. 그렇다고 상대보다 먼저 칼을 빼서는 안된다. 칼을 칼집에 꽂은 채 상대를 마음으로 제압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고도 상대가 먼저 동작을 취한다면, 틈을 주지 않고 일거에 승부를 결정짓는다. 그래서 ‘승부는 칼집에서 결정된다’(鞘のうちで勝負が決まる)는 말이 나왔다. 

거합도의 시조는 하야시자키 진스케(林崎基助)라는 검객으로 알려져 있다. 거합도는 에도 초기에 창설돼 수많은 유파가 생겨났다. 일본 위생용품 기업인 ‘유니참’(UniCharm) 창업자 다카하라 게이이치로(高原慶一朗)는 경영을 거합도에 비유한 사람이다.  

“거합도(居合道: 이아이도)에서는 ‘칼집에서 승부가 난다’고 말합니다. 저는 경영도 같다고 생각합니다.”(居合道では「鞘のうちで勝負が決まる」って言うでしょう。私は経営も同じだと思います) 

게이이치로는 라이벌 기업과 서로 칼을 뽑아 드는 전통적인 대결 방식은 하수(下手)들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대 기업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의 전략을 미리 간파하고, 그들보다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거합도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은 사업 아이템 탄생과 진화에 그대로 적용됐다. 

유니참은 마스크, 생리대, 기저귀 등 위생용품을 생산하는 소비재 기업이다. 유니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 기업은 ‘가오’(花王)이다. 가오가 일찍이 일본 국내시장을 확고하게 장악하면서 유니참은 사업 초창기부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현재는 해외 현지 법인을 거점으로 80여개 국에서 위생용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건축용품에서 생리용품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다카하라 게이이치로는 1931년 전통화지(和紙)로 유명한 에히메현 가와노에시(川之江市)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학교 졸업 후 종이 도매상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국광제지(国光製紙)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아버지의 일을 보고 기업가를 꿈꾼 게이이치로는 오사카 시립대학 상학부에 입학했다. 

그런 게이이치로가 유니참의 전신인 ‘다이세카코(大成化工) 주식회사’를 설립한 건 1961년, 그의 나이 29세 때였다. 이 회사는 건축자재를 주로 만들었다. 하지만 건축 자재는 다카하라 게이이치로가 꿈꾸던 품목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전환을 하게 된다. 건축 자재에서 여성용품으로 품목을 바꾼 것이다. 

여성용품 중에서도 궁리 끝에 택한 것이 생리용품이었다. 중소기업 시찰단으로 미국을 방문하면서다. 당시 미국 슈퍼마켓에서는 생리용품이 다른 상품과 다를 바 없이 오픈된 장소에 진열되어 스스럼없이 팔리고 있었다. 여성 고객들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선뜻 상품을 집어들어 바구니 안에 던져 넣고 있었다. 마치 포테이토칩을 사는 것처럼. 그 모습을 지켜보며 게이이치로는 소리쳤다. “맞다 바로 이거다.”

당시 일본의 생리대 시장은 안네(アンネ)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었다. 시장을 뚫기 위해 게이이치로가 선택한 방법은 긍정적 의미의 ‘뻔뻔함’이었다. 그는 “뻔뻔하게도 경쟁 회사에 찾아가 생산현장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며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몇 번이나 부탁한 끝에 결국은 직접 공장을 견학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생리용품은 회사의 중심사업이 됐다. 건축 자재 사업도 순조로웠지만, 회사 이름이 생리용품과 어울리지 않아 1965년 생리용품 전문회사 ‘참’(チャーム)을 만들었다. 현재의 회사 이름인 ‘유니참’(ユニ・チャーム)이 된 것은 1974년이다. 유니는 ‘Universal, Unique, United 3가지 의미를, 참(チャーム)은 매력적(Charm)이라는 뜻이다.

‘유니참’(UniCharm) 창업자 다카하라 게이이치로(高原慶一朗)

유니참, 적(라이벌)을 베지 않고 새 영역서 자신들 보호막
변수가 등장한 건 1978년이다. 생활용품 제조업체 가오(花王)가 생리용품 시장에 진입하면서 유니참은 처음으로 이익 감소를 맛봤다. 게이이치로는 재빨리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시장 포화를 예상한 그는 생리용품 개발로 축적된 기술을 살려 일회용 기저귀 제조, 판매에 착수했다. 당시 일회용 기저귀 시장의 90%를 P&G가 차지하고 있었다.

유니참은 P&G 기저귀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1981년 ‘천 기저귀’에서 힌트를 얻어 ‘유아용 입체 기저귀’를 생산했다. 예상 밖의 호평이 쏟아졌고, 2년 뒤에는 P&G의 점유율을 능가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자 또 다른 변수가 생겨났다. 이번에는 P&G가 생리용품 시장에, 가오(花王)가 기저귀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또 다시 수익 감소에 처한 유니참은 1987년 성인용 기저귀 시장으로 또 다시 눈을 돌렸다. 개호(介護:환자나 노약자를 돌보는 것)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게이이치로는 성인용 기저귀에 ‘재활팬티’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렇듯, 게이이치로는 라이벌 기업들과 직접적인 전쟁을 벌이지 않고, 발빠르게 다른 영역으로 전환해 보호막을 치는 전력을 구사했다. '상대를 베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거합도 취지의 변용이라 할 수 있다.  

게이이치로는 2001년 사장직을 장남 다카하라 다카히사에게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06년 뇌경색으로 신체가 자유롭지 못했지만, 의사도 놀랄 정도로 회복해 만년까지 의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런 그는 2018년 10월 3일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게이이치로는 생전에 “말에는 의식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도 강조했었다. “‘이제’라고 말하고 싶을 때, ‘아직’이라고 말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긍정적 기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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