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 김종만 “나는 웬만하면 ‘NO’ 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배우 김종만 “나는 웬만하면 ‘NO’ 하지 않는다”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4.01.19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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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배우 김종만의 연기 좌우명은 ‘representation matters’이다. 

[2024년이 기대 되는 할리우드 배우 김종만 인터뷰]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할리우드 배우 김종만(JONG MAN KIM).
그는 늘 바쁘다. 그러나 그는 정작 “바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바쁘다고 하면 나태해질 수 있고 교만해질까 봐, 그냥 하는 일이 많다고만 이야기한단다. 그렇게 이야기해야 계속 일을 찾게 된다고 한다. 한국에서 15년, 미국에서 13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배우로 살아왔다. 

그의 연기 좌우명은 ‘representation matters’. 그가 한 의역으로는 딱 맞는 사람이 그 배역을 해야 한다는 뜻이란다. 아마도 흑인배우들처럼 ‘찬스’도 없는 아시안계 배우들의 생존형 멘트로도 들리는 비장한 말이다. 한때 할리우드에서는 ‘와이트 워싱’(Whitewashing)이라고 하여 모든 유색인종의 배역도 백인들이 했다. 

21세기 들어 흑인들은 그 영역을 넘어섰다. 흑인 인어공주와 백설공주가 등장하는 시대이지만 아직도 배역 하나를 따내기 위해서 아시안계 배우들은 몇 배나 어려운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2023년은 배우 김종만에게 자신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해였다. 모든 배우들이 선망하는 수퍼볼 광고에 등장하여 이전보다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또한 할리우드에서 먼저 연락을 받는 ‘호사’를 누려봤단다.

△BIPOC 그리고 단편영화 ‘사라진’(SARAJIN)
그에게 2023년은 숨 가뿐 한 해였다. 우선 할리우드에서 몇몇 영화인들과 ‘BIPOC’ 운동을 활발히 벌였다. BIPOC이란 ‘Black, Indigenous, People of Color’의 약자로 할리웃 생태계에 모든 인종들이 공평하게 오디션을 받고 출연하자는 운동이다. 그 와중에 계속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기획하며 오디션을 봤다.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틈틈이 한인 커뮤니티를 상대로 ‘영어연기’를 지도 했다. 

그중 가장 큰 성과는 단편 영화 ‘사라진’(SARAJIN)일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코리언 아메리칸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다. 그의 전작 ‘블라인드 스티치’(Blind Stitch)가 의료사고로 실패하고 미국에 이민 온 외과의사가 코리아 타운의 ‘흑인폭동’이라는 격랑 앞에서 낮에는 양복쟁이로 밤에는 부상당한 한인들의 상처들을 꿰매며 더 큰돈을 버는 의사로 변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을 엇나간 ‘아메리칸 드림’으로 풍자했다면 이번 작품은 단지 살기 위해 알래스카까지 이민 온 가족의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알래스카의 대게 농장이 폐쇄되면 더 이상 이민생활을 지탱할 수 없는 생계형 이민의 이면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묻고 있다. 대게가 사라져 버리면 가족의 꿈도 사라지는 탓에 제목도 한글 그대로 읽어 ‘SARAJIN’으로 붙였다고 한다. ‘블라인드 스티치’로 제8회 아시안 월드 필름 페스티벌(Asian World Film Festival)에서 감독상(알렉산더 버그먼, ALEXANDER BERGMAN)을 수상한 덕분인지 아카데미 회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에서 스페셜 스크리닝을 했으며 이 자리에서 비로서 배우 김종만의 연기력도 제대로 인정을 받았다. 비록 아카데미 영화제의 단편부문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사라진’은 극찬을 받으면서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영화 '사라진'(SARAJIN)의 포스터

△메소드 액터(Method Actor)
사실 배우 김종만의 인상은 강렬하다. 실제로 만나보면 그렇지 않지만 그의 첫인상은 강하다. 넷플릭스의 ‘LOVE’에서는 그게 강점으로 작용하여 평소 모습 그대로 나와도 모두가 그의 실감나는 연기에 호응해 주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주어지는 배역들도 절대 거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하기 싫어도 YES를 하면 뭔가 새로운 것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나는 웬만하면 NO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쩌면 아시안계 배우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배우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해서 뉴욕의 액팅 스쿨에서 잊혀진 가는 학생이 되어가고 있을 때도 늘 남들보다 더 웃고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교수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배우이니 간혹 못 알아 듣는 이야기가 있더라도 리액션으로 ‘척’을 하면 되니 적응이 빨랐다. 그러한 노력으로 언어의 장벽도 비교적 빨리 무너뜨리고 지금은 영어연기를 지도하고 있으니 엄청난 발전인 셈이다. 아시안계가 등장하는 영화나 TV쇼들이 많지 않다보니 오디션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하겠다고 덤벼들고 ‘필모그래피’를 늘려나가야 하는 것이 영화의 본고장이라는 이곳 할리우드에서 살아남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영화계는 침체기인데다가 할리웃에서 주로 활동한 그를 반가워 하지 않는다. 그는 누구보다도 연습벌레다. 특히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를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메소드 연기란 극중 인물과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적 연기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한국에서 논문(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도 <배우 훈련에 있어서 ‘감각 기억’의 활용 연구: Lee Strasberg 메소드(Method)’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썼고 뉴욕에서도 대럴 라슨 테크닉(Darrell Larson Technic), 리 스트라스버그 메소드(Lee Strasberg Method), 체홉 테크닉(Chekhov Technic) 등을 두루 거치며 ‘메소드’를 연마했다. 그때의 경험을 고스란히 녹여 내 2023년 영화 ‘Lies Without A Face’(이하 라이즈 위다웃 어 페이스)로 이어졌다.

△라이즈 위다웃 페이스
이 영화는 작년 12월까지 촬영을 마쳤고 현재 후반부 작업이 한창이다. 오는 5월 칸 영화제는 물론 10월에 있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 블라인드 스티치에서 호흡을 맞춘 알렉산더 버그먼이 연출하고 그의 스승인 대럴 라슨(Darrell Larson), 배우 김종만, 케이지 커밍스(Kasey Cummings)가 주연한 영화다. 그가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에 캐스팅까지 관여한 이 영화는 ‘영화 속 영화’이기도 하다. 호러와 스릴러를 섞어 놓았으며 메소드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메소드 액터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에서 더 이상 연기자 생활을 할 수 없는 배우가 미국으로 이민해 독립 리메이크 영화에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는데 연쇄 살인자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를 만드는 도중 실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 속에서 리메이크 되고 있는 영화는 프랑스 영화로 조르주 프랑주(Georges Franju)감독의 ‘얼굴 없는 눈’ (Les Yeux sans visage)이다. 한 외과의사가 사고로 딸의 아름다운 얼굴을 망가뜨린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얼굴을 되돌리기 위해 아름답고 젊은 여성들을 납치하여 이들의 얼굴을 딸에게 이식하려고 하지만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희생자를 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김종만에게 연기란 요리의 ‘레시피’(Recipe)같은 것이라고 한다. 

영화 속 영화인 만큼 리메이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김종만은 백인 배우를 캐스팅 해야 하는 원작과 달리 아시안으로 바꿨다고 한다. 당연히 영화 속 유력 용의자는 ‘Jack Kim’(김종만 분)이다. 원작은 딸이었지만 이번에는 아내로 바꿨다고 한다. 블라인드 스티치의 스텝들이 그대로 참여하는 영화인 만큼 현장 호흡은 최고였다고 한다. 다만 스포일러가 포함될 우려가 있어 스틸 사진은 물론 결말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저는 이 영화의 의미를 제가 먼저기회를 만들었다는데 두고 싶습니다. 비록 독립영화이지만 장편이고 일일이 스텝들을 설득하고 캐스팅하면서 제작비 펀딩까지 하는 일인 다역이었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컨셉을 창조하고 설득하여 이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사실 그는 할리웃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 중 몇 안 되는 프로듀서가 가능한 배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극단을 직접 운영한 경험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곳 미국에서도 몇몇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당연히 그는 영화제 출품이 적합한 컨셉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할리웃 스텝들과의 소통도 원활한 편이다.

△Beyond the horizon
그의 2024년은 또 어떻게 시작하고 있을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는 한번 맺은 인연과는 ‘끝까지 간다’는 장점이 있다. 작년에는 스승인 대럴 라슨을 영화에 캐스팅하더니 올해에는 자신의 액팅 스쿨 동기인 배우 라우디 몽고메리(Rowdy Montgomery)와의 긴 우정으로 할리웃에서 첫 장편 상업영화를 2월부터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제목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Beyond the horizon’(지평선 너머). 유진 오닐 (Eugene Gladstone O'Neill)의 희곡과 밥 딜런(Bob Dylan) 노래 제목이 연상되지만 그냥 제목만 같을 뿐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한국 로케이션 일정도 잡혀 있다. 역시 주제는 ‘깨진 아메리칸 드림’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다. 선댄스 영화제 출품이 목표이며 판타지적 요소도 다분하다. 미국 영화이지만 한국 가정의 장례문화 등 여러 가지가 등장하고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면서 각각 다른 캐릭터로 등장하는 다중적 인물로 그려진다고 한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캐릭터를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마치 자신이 ‘바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타인에게 ‘가치가 있어서 바쁜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처럼 정신이 지배 당하지 않는 건강하고 건전한 자기만의 캐릭터를 자신이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현대인들에게 알리고 싶단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배우 김종만에게 ‘연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대뜸 ‘레시피’(Recipe, 요리법)라는 답이 돌아왔다. 같은 배역을 맡더라도 배우마다 캐릭터 분석을 통해 그 해석이 달라야 한다고 했다. 마치 셰프가 같은 요리를 만들면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레시피를 갖고 있듯이 배우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배우는 당연하지만 연기력이 좋아야 함을 강조했다. 축구선수가 ‘골 결정력’을 갖고 있듯이 배우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도 필요하다고 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한국에서 있었던 모든 연기 경력이 백지상태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기존의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다시 연기를 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고생하여 얻어진 귀중한 경험들을 하나라도 더 알리고자 ‘영어 액팅 클래스’를 미국, 캐나다, 한국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진행 중이다. 

“타인에게 연기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다 보면 스스로의 연기를 되돌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남을 가르친다는 책임감이 생기게 되면 당연히 남들에게 연기력으로 인정 받으려고 갑절의 노력을 하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이에 대한 결실도 나타났다. ‘시니어 모델 USA’를 통해 재능기부로 액팅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는데 고된 이민생활을 겪은 분들이 삶을 되돌아 보고 자기의 꿈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2-30여분들이 ‘라이즈 위다웃 페이스’에 출연하여 현장을 경험하고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들을 듣고 보람도 있었다. 배우 김종만에게 2024년은 어떨까? 그는 오브 더 레코드를 전제로 코리언 이민 1세대 이민자의 이야기로 첫 상업영화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꽃피는 봄이 오면 크랭크 인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줄곧 꼬여버린 아메리칸 드림과 이민 1세대의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연기 좌우명이 ‘representation matters’ 아닙니까? 이걸 내 식대로 번역하자면 1세대 이야기를 1세대가 하자는 뜻입니다.” 그 역시 이민자이기에 나온 말이리라. 그의 2024년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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