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SriLanka Talk/ 홍차에 담긴 눈물과 고난의 200년
김성진의 SriLanka Talk/ 홍차에 담긴 눈물과 고난의 200년
  • 김성진 작가
  • 승인 2023.07.1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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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스리랑카 김성진 작가(스리지나라트나 기술대학교 언어학부 한국어학과 교수)> 스리랑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홍차를 재배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덕분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다양한 맛과 빛깔의 홍차를 즐기고 있다. 찻잔에 어리는 색깔을 보라. 입술에 황금 가루가 곧 묻어날 것 같은 멋지고 찬란한 색을 품고 있다. 세상의 어느 왕이 부러울 쏘냐.  

거기다가 우유를 타고, 비스킷 한 조각만 곁들이면 출출한 공복에 그만한 요깃거리가 없다. 평소처럼 찻잔을 들고 홀짝 홀짝 마시며 즐기는데, ‘데일리 미러’ 카민티(kamanthi Wickramasinghe)기자의 칼럼이 눈에 띤다.   

올해, 2023년이 식민지 시절 영국이 홍차를 재배하기 위해 남인도 타밀족을 계약 노동자로 데려온 지 20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200년이나 되는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비참해 진 노동자의 삶을 보고 기자는 개탄한다.  

기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래 전 60세에 정년 퇴직을 했으나 78세가 된 지금도 차 농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순다람(Sundaram)씨의 사연이다. 조상이 인도로부터 건너 온 타밀 이주 노동자 3세다.

찻잎 20킬로를 따면 1천 루피(한화 4천2백원)를 받는다. 일당이다. 차 농장의 일은 얼마나 힘이 드는지 3일 연달아 일을 하면 죽을 수도 있단다. 그래도 생계를 위해서 20일 정도는 일을 해야 하지만 농장주께서 인건비를 줄인다고 최대 15일만 일하게 한다. 

그러면 한 달에 버는 돈이 얼추 1만 5천루피, 한국 돈 가치로 6만원 조금 넘는다. 요즘은 전기세가 올라 예전에 1천 5백 루피면 넉넉했던 것이 4천 루피(한화 1만 7천원)를 내야한다. 나이 많은 순다람 씨가 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을 하지 않으면 농장에서 제공받은 집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평생을 일했는데 순다람 씨 이름으로 된 재산이 없다는 것이다. 

플랜테이션 차 농장 아이들은 학교를 오가는 차비 1백 루피(한국돈 4백 원)가 부담되어서 학교를 도중에 그만둔다. 이것은 이 나라의 오래된 부끄러운 사실이다. 5년 전 필자의 대학 석사 학위 논문 과정에서 다루었던 내용인데 기자의 칼럼을 통해서 다시 보니 새삼스럽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세계 공통인 것을 실감하는 대목이 있다. 1992년, 1998년, 2001년, 2021년에 걸쳐 토씨 하나 다르지 않는 공약이 계속되고 있다. 플랜테이션 노동자를 위한다는  똑 같은 내용의 주택 공급, 사유지 분배, 공동체 복지, 최저임금 보상 등이다. 

다 아는 거짓말 약속이 거듭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나타났다가 그 일이 끝나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약속을 터무니없는 핑계로 어기는 얼 척 없는 정치인들이 여기도 있다. 

정부와 정치인은 국민의 생계를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처럼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계층에 대해서는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남루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피켓 시위를 하는 그들이 TV를 통해 언뜻 언뜻 보인다. 답답하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우리나라 서울로 치면 강남구처럼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이다. 필자가 부자라는 얘기는 아니다. 부자들은 으레 집안일을 하는 일꾼을 두곤 하는데, 일하는 사람 대부분은 피부색이 유독 까만 플랜테이션 지역 출신 타밀족이다. 

대물림하는 가난을 피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밀려 온 이들이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젊은 타밀 친구를 더러 알고 지낸다. 체구가 작고 눈망울이 커다. 까만 피부색 때문에 하얀 이가 돋보인다. 고향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거기, 차 농장이다. 

교대 근무를 하는 것처럼 보여 저녁 시간에 한국어 공부하고 싶으면 오라고 했더니 배시시 웃는다. 돈이 없다고 한다. 돈이 없어도 된다고 했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거짓말이거나 농담이라고 여기는 눈치다.  

필자는 중세에 유행했던 스콜라 철학의 사회계약론에 일부 동조하는 편이다. 그 중 존 로크 (John Locke) 의 잉여 공유물에 대한 노동 가치에 따른 사유화 이론을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자본과 시장의 기능에 의존하는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요즘, 공유할 자원의 양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거대 자본이 인류의 공유물을 마구 집어 삼키고 있다. 

인류가 사회 계약이라는 정치 시스템에 기꺼이 참여한 것은 만인의 자산인 공유물이 일부 유력한 권력과 자본에 편중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가와 정부의 존재 목적은 국민의 안위와 사유 재산을 보호한다는 순진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무수한 모순과 부정, 탐욕스런, 무도한 지배자와 권력으로부터 살아남아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얼척없는 정치인과 돈이 많은 부자와 필자가 즐겨 마시는 홍차는 같다. 향도 맛도 같다. 

필자는 오늘도 한 잔의 홍차를 손에 든다. 예전과는 다르게 누와라엘리야(Nuwara Eliya)에 계실 순다람(Sundaram) 할아버지와 타밀 아이들의 하얀미소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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