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미국 리포트/ 산토리, 하이볼 앞세워 아메리카 공략
생생 미국 리포트/ 산토리, 하이볼 앞세워 아메리카 공략
  • 이훈구 작가
  • 승인 2022.07.10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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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위스키들과 함께 한 산토리 위스키 라인업

<미국 LA=이훈구 작가(재팬올 미국대표)> ‘야마자키(山崎) 네 글자에 꽃과 꿀 향기를 품은 호박색 액체’. 바로 ‘산토리’(サントリー, SUNTORY)의 위스키를 상징적으로 이야기할 때 표현하는 말이다. ‘산토리’라는 단어는 1907년 출시돼 호평을 받았던 단맛의 포도주 '아카타마 포트와인'의 라벨마크인 선(SUN)과 창업자의 성 ‘토리이’를 합쳐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위스키 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맥주 그리고 펩시콜라의 지분을 공격적으로 인수하여 이른바 ‘괴작’(怪作) 펩시 시리즈로 미국에서도 유명한 ‘산토리’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시장을 공략하여 순항중이다. 그렇다면 산토리는 어떻게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게 되었을까? 이 비결은 바로 일본 특유의 ‘콜라보레이션’ 지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본 최초의 위스키는 다케쓰루 마사타카(왼쪽)와 토리이 신지로가 힘을 합치면서 탄생했다.

▲2023년 창업 100주년 맞아
야마자키 증류소는 1923년 세워졌는데 일본에서 최초라는 기록을 세운 위스키 증류소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산토리·히비키(響, HIBIKI)등 위스키가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높은 습도와 온도 변화 그리고 습한 여름 동안 일본산 목재로 만들어진 통이 팽창하며 위스키를 흡수하고 겨울이 되면 나무통이 마르며 나무의 향이 위스키에 배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다른 나라의 증류소보다 높은 고도에 자리 잡고 있어 훨씬 우수한 증류 제어가 가능하다. 고품질의 증류주를 생산하는 데 있어 온도가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위스키 역사는 ‘맥주’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다. 

맥주의 경우에는 도쿠가와 막부 시절, 유일하게 교류를 했던 네덜란드 상인들이 최초로 전례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위스키의 경우 역사적으로는 1870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상업적 생산은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인 ‘다케쓰루 마사타카’(竹鶴正孝)가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와 증류 기술을 연구한 1920년 이후에서야 시작되었다. 

이때 생겨난 것이 ‘야마자키 증류소’(サントリー 山崎蒸溜所)이며 오늘날 세계 위스키 매니아들에게 ‘성지(聖地)’로 불리며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양조장 아들로 태어나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1918년 24세의 나이로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간다.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틈틈이 양조장에서 일하며 제조기법 등을 꼼꼼히 메모한 그는 자신의 위스키 증류소 건설을 꿈꾸며 귀국하게 되는데 이때 토리이 신지로(鳥井信治朗)와 역사적 만남을 갖게 된다. 

산토리 야마자키 증류소

▲“일단 한번 부딪쳐서 해 봐”
토리이 신지로는 원래 유통업자였다. 그는 와인을 수입하며 해외 주류시장을 탐색했고 이어 일본식 와인과 위스키를 해석해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품는다. “일단 한번 부딪쳐서 해 봐”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오사카 사투리, ‘얏테미나하레!’(やってみなはれ!, Go for it!)가 트레이드마크인 그는 비록 와인 수입과 판매로 큰돈을 벌었지만 ‘일본산 위스키’를 제조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때 마침 때맞춰 등장한 인물이 바로 다케쓰루 마사타카로, 그 역시 귀국은 했지만 독자적으로 증류소 건립 등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그때 토리이가 그에게 파격 연봉을 제시하며 영입을 하게 되는데 당시 일반 회사원의 월급에 10배에 달하는 큰 금액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세운 것이 바로 야마자키 증류소인 것이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원래 계약기간인 10년이 지나게 되면서 틀어지게 된다. 대중적인 위스키를 원하는 토리이 신지로와 정통 스카치 스타일을 원하는 다케쓰루 마사타카의 의견차 때문이다. 1929년 첫 싱글몰트 위스키 출시에 성공하지만 다케쓰루는 산토리를 퇴사하고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대일본과즙 회사를 창업하고 닛카(ニッカ) 증류소를 세우며 자신의 길을 걷게 된다. 이것이 닛카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가 홋카이도로 가게 된 건 순전히 기후가 ‘스코틀랜드’와 흡사하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미국 코스트코 매장의 흔한 산토리 위스키들

▲도제 시스템 그리고 장인정신
일본 위스키는 2003년 야마자키 12년산이 ICS(International Spirits Challenge, 국제주류선발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할 때까지만 해도 주로 일본 내에서만 소비되던 술에 불과했다. 이러한 현상은 산토리의 야마자키(YAMAZAKI) 위스키가 짐 머레이(Jim Murray)의 위스키 바이블(Whiskey Bible)에서 올해의 세계 최고 위스키 타이틀(Alberta Premium Cask Strength)을 획득한 2015년 이후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새로운 위스키 문화가 비로서 탄생한 것이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목 넘김과 향이 돋보이며, 일반적인 위스키보다 피트 특유의 향이 적은 것이 그 특징이었다. 로우랜드 스카치와 흡사한 맛이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일본 정치인들 역시 자국 위스키에 대한 공공연히 애정을 드러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부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현 총리에까지, 야마자키 위스키 컬렉션을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서도 자랑할 정도였다. 특히 옛 장인들의 도제 시스템이 고스란히 유지되는 일본의 기업 문화가 적어도 위스키 산업에서 만큼은 큰 위력을 발휘해서 고집스럽게 히비키, 야마자키, 치타, 하쿠슈 이 네 개의 산토리 라인업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산토리 하이볼

▲하이볼(HighBall, ハイボール)로 승부
그렇다면 일본 위스키는 어떻게 미국시장을 공략하여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건 일본의 주류문화를 국제주류선발대회 수상을 계기로 발 빠르게 미국에 전파했기 때문이다. 원래 미국에서 일본의 ‘스시’는 큰 인기를 끌고 있고 이에 대한 응용인 ‘캘리포니아 롤’ 역시 대중적 음식으로 자리 잡은바 있다. 

미국 어느 곳에 가나 ‘요시노야’(野家, YOSHINOYA)체인점을 찾아 볼 수 있고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도 저렴한 라인업으로 사랑 받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 음식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고 여기에 일본식 주류문화를 접목한 것이 주효했다. 그중 가장 인기를 끈 것은 ‘하이볼’이다. 

심지어 캔으로도 출시되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이볼에 들어가는 ‘가쿠빈’(角瓶)위스키는 ‘히비키’에 들어가는 동일한 원액을 사용했다. 따라서 한정된 생산량에 비해 위스키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많아진 지난 2018년에는 급기야 히비키의 생산을 중단하고 하이볼에 위스키원액을 사용하기도 했다. 숙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 여파가 있었고 덕분에 ‘산토리’가 세계 위스키 대란의 주범이 되기도 했다. 

일본의 대표적 주류문화로는 선술집 이자카야(いざかや)가 있다. ‘이자카야’라고 하면 보통 안주 요리와 생맥주부터 떠올리지만, 하이볼 칵테일과 미즈와리(水割り)도 빼놓을 수 없다. 독한 술을 선호하지 않는 미국에서 과거 ‘하이볼’ 칵테일이 주일미군 출신들로부터 전파 되면서 일본 위스키도 덩달아서 화제가 된 바 있었다. 하이볼은 위스키 혹은 도수가 높은 술에 탄산수를 섞어 만든 칵테일이다. 종전 후 일본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위스키를 저렴하게 마시게 되면서 유래된 방법의 하나였다. 

진 빔 위스키를 인수한 산토리(2014년)

또한 이 돌풍의 비결에는 ‘진 빔’(JIN BEAM) 인수도 한 몫을 했다. 모험을 각오한 인수·합병(M&A)으로 2014년 5월 160억 달러에 사들이면서 진 빔과 합쳐 탄생한 ‘빔산토리’가 단숨에 디아지오(DIAGEO)·페르노리카(Pernod Ricard)에 이은 세계 3위 위스키 업체로 도약한 것이다. 맛으로도 승부를 봤다. 

미국 뉴욕 유명 술집에선 산토리 야마자키 25년산 더블샷(60ml) 한 잔에 500달러까지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즈음 뉴욕타임즈는 일본 위스키의 돌풍을 기사로 개재하기도 했는데 제목이 “Highball’s are back, with twists from Japan.”(하이볼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오다, Robert Simonson기자)였을 정도다.

일본 NHK 드라마 '맛상'은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타케츠루와 그의 부인과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과대 확장’(overextension)전략
산토리는 인지도가 높은 해외 브랜드를 인수한 다음, 현지 공장을 통해 산토리 위스키와 음료를 생산·공급하면서 해외 시장을 우회 공략하는 전략을 종종 구사한다. 이를 ‘과대확장’ 전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기업이 현재 능력 범위에서 벗어나는 활동을 추진하면서 내부 구성원들을 창조적 긴장 상태로 몰아넣어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한다는 내용이다. 

산토리는 위스키에서 맥주, 차, 칵테일, 과즙 탄산까지 핵심 제품이 침체에 빠질 무렵, 과감하게 신개념 제품을 밀어붙여 내놓으면서 위기를 극복해왔고 해외 브랜드를 공격적으로 인수하여 위기를 타개해 왔다. 이번에도 세계 120여 곳에 진출해있는 진 빔 판매망을 활용, 미국·유럽 시장에서 산토리 위스키 인지도를 높여가는 전략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이볼의 원재료인 가쿠빈

이에 발 맞춰 ‘빔 산토리’(Beam Suntory, Inc)는 지난 2019년 3월 미국 뉴욕에서 합작 버번 위스키 ‘레전드’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이볼의 인기는 비단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높다. 특히 일본 특유의 콜라보레이션은 미디어와 접목하여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마법이 있다. 

인기 드라마 ‘심야식당’(深夜食堂)에서 가라아게와 하이볼 세트로 나왔던 것이 바로 이 산토리 가쿠빈 하이볼이다. 후속조치도 꼼꼼해서 가쿠빈의 프로덕션 페이지에 자사의 탄산수인 산토리 소다를 같이 소개하고 있으며, 하이볼 용도에 맞춰 강탄산+경수 배합으로 리뉴얼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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