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김성진 작가> 스리랑카는 3,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큰 나라 인도와 가까운 거리에 있으므로 대륙에서 전해오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의 왕래를 거부할 수 없었다. 해상 무역의 길 한가운데, 인도양 중심에 있었기에 바닷길로 다가오는 이방인마저 기꺼이 받아들였다.
고대 스리랑카와 남인도는 국경 구분 없이 교류하는 단일 문화권을 형성했다. 이로 인해 남아시아의 4대 민족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싱할라족, 스리랑카 타밀족, 무슬림, 인도계 타밀족은 두 나라 사이를 오가며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을 누렸던 오래된 역사가 있다.
현재, 스리랑카는 20개 이상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나라이다. 이들 중 일부는 규모가 너무 작아 그 존재감을 느낄 수 없고 스리랑카 사회에 정치적 영향력도 크게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스리랑카 사회의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며 그들 고유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소수민족의 존재는 사회학자나 연구자를 제외하고는 잘 모른다. 시골 마을 카라티부의 마호 (Maho of Karativu) 출신 싱할라 농민은 신디족, 파르시족, 말레이족 (Sindhis, Parsis or even Malays)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들은 주로 수도권 콜롬보지역에 정착하고 있고 대도시 너머에 존재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학교 역사 교과서조차 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
스리랑카의 다양한 종교와 문화 이야기로 넘어가자. 힌두교는 불교와 공존하며 2,000년 동안 왕권과 왕실 문화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일반 민중 생활에도 파고들어 지금은 구분조차 애매한 복식과 음식문화에도 간여하였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이슬람 문화와 식민지 전후 스리랑카에 미친 경제적 사회적 영향도 지나칠 수 없다.
이슬람교 (9.7%)는 불교 (70.2%)와 힌두교 (12.6%) 다음으로 섬에서 세 번째로 큰 종교이다. 스리랑카 무슬림 공동체의 기원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아랍과 페르시아 후손들을 포함한다. 이 말은 모하메드 이전에 이미 수 세기에 걸쳐 남인도 무슬림 공동체와 교류하며 스리랑카 타밀족과 혼인을 통한 다양한 문화적 관습을 만들어 왔다.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스리랑카에 사는 20개 이상의 다문화 공동체가 민족, 언어, 습관, 음식 등이 서로 같으면서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이들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시기에 스리랑카라는 지리적 실체에 합류해 왔다. 3,000년 이상 된 스리랑카의 흐름에 함께 했고 현 단일 정부 시스템의 일원으로 사회경제 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비록 규모가 작은 소수민족이지만 이들 또한 스리랑카인으로 정체성을 가지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 종교나 언어, 문화적 기반에 따른 다른 모습이 존재할 수 있지만,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수이며 기득권 세력인 불교도 싱할라인들은 이들에게 평화롭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스리랑카는 기원전부터 16세기까지 다양한 공동체들이 자신들의 종교와 언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스리랑카 문명 건설과 발전에 서로 이바지하며 평화와 화합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했다. 그러나 상황은 16세기 이후 서구 제국주의가 출현함으로 국가의 침탈과 복속을 겪으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자들은 '분열과 통치'라는 교묘한 방법으로 서로 다른 민족과 공동체들 사이에 이간질과 불화와 분열을 일으켰다. 스리랑카 사회 전반에 반목과 불신이 초래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시절이 무려 420년이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식민 통치하는 동안 공동체간 분열이 지속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근세에 와서도 못된 것만 답습하는 일부 정치인들은 제국주의자들의 분열과 이간을 거울삼아 국민을 교묘히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곤 했다. 외세를 배격한다는 스리랑카 불교 원리주의자와 소위 보수를 일컫는 자들이다. 결국 지금 스리랑카 사상 초유의 사태인 경제위기와 국가부도 사태를 불러온 장본인들이다.
이런 못 돼먹은 자들은 세계 곳곳에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한국의 극우 보수를 지향한다고 자처하는 보수 유튜버 같은 자들과 자기네 국회의사당을 때려 부순 미국의 트럼프와 그 추종자들과 애꿎고 선량한 사람들만 죽어 나가며 세계 식량난과 원료난을 불러온 우크라이나 전쟁을 방조하는 자들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이제 안다. 나쁜 정치인이 어떻게 나라를 망쳤으며 국민을 이렇게 힘든 나락으로 내몰았는지. 종교가 다르고 옷차림새와 먹는 음식과 말이 달라도 서로 힘을 합치면 못 된 정치인을 몰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아무런 결실 없이 이유도 없이 서로 반목하며 질시하기보다는 평화롭고 조화롭게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이제 깨달아 안다.
“Sri Lankan” - Our Identity
“Diversity” - Our Strength
이글은 지난 2017년 스리랑카 정부 (The Ministry of National Coexistence, Dialogue and Official Languages)에서 발간한 ‘People of Sri Lanka’에서 주로 인용하였다. 앞으로 스리랑카에 사는 20개의 다양한 민족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볼 생각이다.